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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종북'과 '극단적 민족주의'의 차이는?

[한윤형의 우왕좌왕] '두 개의 민족주의', 그리고 북한인과 일본인의 민주주의

주한 미국 대사 피습 사건에 대한 반향은 그 사건 자체보다 더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우리 사회의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많은 이들은 '부채춤'에 관심을 쏟았겠지만 '극단적 민족주의'에 관한 논란도 눈여겨볼 만하다.

사건 직후 새정치민주연합 유은혜 대변인은 기자 간담회를 자청하고 이 사건을 '극단적 민족주의자의 개인적 돌출행위'라 규정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의원들의 반발이 잇따랐다. 새누리당의 입장에선 새정치민주연합 측의 이러한 대응이 이 끔찍한 사건의 '배후세력'이 '종북'일 수 있음을 미리 부정하는 '꼬리 자르기'였던 것이다.

우리는 이와 같은 논란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 김기종 씨가 모종의 정치의식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그의 현실인식은 '정치적 과대망상증자'라고 불릴 만한 것이었다. 그는 자신이 목표로 한 한반도 평화와 대북관계 개선에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행동을 했다. 북한이 사후에 이 사건을 자신들의 체제정당성의 근거로 선전했다 한들, 그들이 이 사건을 기획할 이유가 있었을까?

혹자는 근자에 '이석기 일당'이 워낙에 황폐한 세계관을 드러냈기에 '종북세력'들은 충분히 그러한 과대망상을 조직적으로 실현했을 수 있다고 주장할 것이다. 물론 그런 일이 결코 일어나지 않았으리라 단정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합정동 회합 발언'과 '김선동 국회 최루탄' 같은 것을 강조하면 보수 성향의 시민들은 그런 가능성에 솔깃하게 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 역시 합리적으로 따져본다면 가능성이 지극히 낮은 일이다. 이석기 전 의원의 회합에서의 발언은 진지한 정세판단이었든 내부단속을 위한 엄포였든 간에 곧 전시가 닥쳐올 거란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그리고 녹취록을 신뢰하더라도 해당 모임에서 참석자들은 이석기 전 의원의 발언의 취지를 잘 따라가지 못하는 것처럼 보였는데, 이는 보수세력에게 '종북'이라 불리는 NL 운동권들 역시 평상시 테러를 전술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다. 키리졸브와 같은 한미군사활동은 거의 매년 있는 일이며, 이에 대한 북한의 항의 역시 그렇다. 이 사건을 구 통합진보당이나 다른 친북단체들이 기획했을 거라고 믿을 근거가 별로 없다.

물론 김기종 씨 본인은 통합진보당의 해산판결 등에 더 자극을 받았을 가능성이 있다. 구 통합진보당 멤버들 역시 최근 키리볼즈 군사훈련에 대한 반대시위를 하고 있었다. 김기종 씨가 경찰에서 '종북'으로 분류되는 인물과 친분 내지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높다고 봐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런 종류의 정황들은 이 사건이 정치적으로 기획되었을 가능성을 높여주지는 못한다. 수사당국은 그의 방북 행적과 이적 문건 소유 여부를 집중 수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심지어 헌법재판소가 해산판결 결정문에서 언급한 많은 문건들도 어떤 시점엔 인터넷에서도 구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여기서부터 상식 수준의 반박을 넘어 좀 더 흥미로운 부분으로 나아가 보자. 새누리당 의원들은 '개인적 돌출행위'란 말뿐만 아니라 '전투적 민족주의'라는 규정에도 분개하는 것처럼 보였다. 단순하게 접근한다면, 그들은 '민족주의'는 긍정적인 것이기에 김기종 씨의 '악한 행위'에는 '극단적'이란 어휘가 붙는다 해도 '민족주의'란 말이 쓰여선 안 된다고 믿는 것 같았다.

▲지난 6일 보수단체 회원들이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리퍼트 대사 쾌유와 함께 종북세력 척결을 주장하며 인공기 화형식을 진행했다. ⓒ연합뉴스

그들의 이러한 태도는 아주 오래 전 김대중 정부 초창기에 <월간 조선>이 정치학자 최장집의 논문을 난도질했던 논리를 떠올리게 한다. 당시 <월간 조선>의 우종창 기자는, 최장집 교수가 김일성을 "사회주의자라기 보다는 민족주의자"라고 진단한 것에 대해 문제제기를 했다.

단순논리를 이해하기 위해 단순해져 보자. 그들에게 '민족주의자'란 말은 '좋은 것'이다. 반면 '사회주의자'란 말은 '나쁜 것'이다. <월간 조선>의 시비는 왜 김일성을 '나쁜 것'이 아니라 '좋은 것'에 빗대느냐는 수준의 것이었다. 내 주변엔 '사회주의자'를 '민족주의자'보다 더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이들도 제법 있지만, 새누리당이나 <월간 조선>이 이와 같은 정치적 소수자들의 처지를 고려할 것 같지는 않다.

아니, 이것은 단순히 '고려'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사실상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들은 거의 모두가 민족주의자다. 그렇기에 그들은 민족주의를 공기와 같이 여기며, 그것이 여러 가지 사상 중 하나이며 누군가는 가지지 않을 수도 있는 이념 내지 정서임을 쉽게 납득하지 못한다. 이는 "한국인이라면 박지성 응원합시다"라는 농담 아닌 농담 안에 들어 있는 사실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 대다수의 민족주의자들이 크게 두 패로 갈린다는 점이다. 그리고 양자는 결코 서로를 '민족주의자'로 지각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극이 생겨난다. 그렇기에, 새누리당이 김기종 씨를 '극단적 민족주의자'가 아닌 '종북'이라 부르고 싶어 하는 심리구조는 어떤 개신교인들이 개신교인의 범죄 행위를 '극단적 개신교인'이라 부르기 싫어하고 차라리 '사탄'이라고 부르고 싶어할 심리구조와 흡사하다고 여겨진다.

이 '두 개의 민족주의'의 논리구조는 실은 매우 유사하다. 기본적으로 '피해자-민족 서사'를 절대적인 판단의 심급으로 끌어들인다. 차이가 있는 것은 다만 '민족'의 범위다. 새누리당이 지지하는 '민족주의'의 서사에서 '피해자-민족'은 남한 사회에 한정된다. 북한은 '민족'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고 거기에서 일탈한 공산주의나 김일성주의를 숭앙하는 외계인들이다. 북한은 명백한 '가해자'이기에 그들을 이해하려는 어떠한 시도도 용납될 수 없다.

앞서 언급한 <월간 조선>의 최장집 교수 논문 검증 사건에서, 그들은 최장집 교수가 '북한에서 6.25 전쟁의 피해자는 북한주민이었으며 수혜자는 북한 정부, 남한에서도 6.25 전쟁의 피해자는 주민이었으며 수혜자는 이승만 정부'라고 분석한 것에 대해 발끈하며 "6.25 전쟁의 피해자는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라고 주장했더랬다.

과거 그들은 북한이 '민족'의 범주에서 이탈했다고 말하기 위해 '공산주의'라는 외래의 사상을 받아들였음을 강조해야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북한이 다른 공산권 국가와도 구별되는 김일성주의자들의 왕조국가라는 사실을 좀 더 강조하는 중이다.

반대 편에 있는 '피해자-민족 서사'는 우리에게 좀더 익숙하고 친숙하다. 여기서는 북한까지 우리 민족의 범위 안에 끌여들여진다. 여기에서 명백한 가해자는 '일본'이 되며, 이 논리를 좀 더 끝까지 밀어붙이는 이들은 '가해자의 최종보스'로 '미국'을 발견하게 된다.

두 개의 사고방식은 너무나도 유사한 선악 이분법의 폐쇄회로이기에 타협할 수 없는 증오의 대상이 된다. 전자의 시선에선 6.25 전쟁을 발발시킨 냉전의 논리와 이승만 정권의 호전적인 행태가 생략된다. 전자의 시선으로도 일본은 '가해자'의 위치에 올라서기도 하지만, 더욱 명백한 가해자인 북한을 배격하기 위해 타협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한편 후자의 시선에선 일본은 타협의 대상이 될 수 없기에 전자를 믿는 이들을 '친일파'라고 비난하게 된다.

두 민족주의 종교의 정치적 환상을 동시에 적용하면 우리 사회는 '북한인과 일본인의 민주주의' 체제가 된다. 새누리당 지지자가 생각하기에, 상대 당파는 대한민국을 북한에 넘기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북한인들이다. 또 야권 지지자가 생각하기에, 상대 당파는 대한민국을 일본에 넘기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일본인들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신봉하는 민족주의 선악이분법의 구조를 조금만 뒤틀면 상대방의 논리가 도출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한다. 그렇기에 상대방을 대한민국이란 정치공동체를 언제든지 가해자 집단에게 넘기려고 발광하는 적대자로밖에 인지하지 못한다. '종북몰이'와 '다카키 마사오 비판'이 과격해질수록 양쪽 지지자가 열광하는 까닭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양쪽 당파가 이 정치적 환상을 넘어서려는 노력을 조금도 기울이지 않는 한, 정치담론의 양극화는 불가피하다고 볼 수밖에 없다. 또한 이러한 양극화 속에서 번번이 좀더 적은 결집으로 패배하는 진보세력의 관점에서는 이러한 대립이 실질적인 사회개혁을 담보하지 못하는 실패의 길임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새누리당이 '종북'을 규정하고 구별하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다. 원래 이 단어는 민주노동당 분당 과정에서 좌파들이 먼저 만들어냈다. 하지만 당시 그 단어는 '북한 체제에 대한 온정주의를 버리지 못하는 이들'이란 의미 정도로 쓰였다. 적어도 상대방이 민족주의자란 점은 인정한 셈이다. 좌파들은 '민족주의자'란 말을 부정적인 의미로 쓰는 경우도 많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종북'을 '북한 체제의 지령을 받아 대한민국의 몰락을 호시탐탐 노리는 이들' 이외의 의미로 해석하지 못한다. 북한을 민족의 범주 안에 넣을 경우 꼭 북한 체제가 남한 체제보다 우월하다고 여기지는 않더라도 이해할 만하거나 배울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든가, 북한 사람들이 너무 순박해서 그 사회에도 배울만한 점이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결코 이해하지 못한다. 이 모든 이들을 모두 '종북'이라고 부르니 그들은 '신은미'에서 '황선'까지의 스펙트럼이 모조리 '종북'이 된다. 새누리당이 '극단적 민족주의'라는 진단을 거부하고 굳이 '종북'이란 표현을 꺼내드는 맥락이 이렇다.

이 '두 개의 민족주의'의 사회에서 일부 좌파들이 "민족주의는 선진 사회에선 진보적 가치가 아니니 이제 그만 넘어서자"라고 말하는 것도 몹시 공허해 보인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환상을 분석할 수 있지만, 나름의 역사성이 있는 그것을 아예 없는 것처럼 취급하고 넘어설 수는 없다. 오히려 우리는 양자의 사고방식과 논리구조 안에 들어가 서로의 접점을 넓히고 그로 인해 그 사유 바깥을 생각하도록 해야만 한다. 진보진영이 상대당파를 쉽사리 '친일파'로 낙인찍는 행위의 위험성을 함께 생각해봐야 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 '한윤형의 우왕좌왕'이 새로 연재됩니다. 필자 한윤형 씨는 혼자 쓴 책으로 <뉴라이트 사용후기>, <안티조선 운동사>, <청춘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있고, 함께 쓴 책으로 <열정은 어떻게 노동이 되는가>와 <속물과 잉여> 등이 있다. 매체비평지 <미디어스>에서 3년 동안 정치부 기자로 일했습니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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