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한국에서 피습된 사건에 충격을 받는다면 한국과 미국 중 어느 쪽이 더 심할까? 거꾸로 주미 한국대사가 미국에서 피습됐다면 어느 쪽이 더 충격을 받을까?
지금 보면 양쪽 다 한국일 것으로 보인다. 빈수레가 요란하다고 한국은 유난히 어떤 사건에 큰 의미를 부여하면서 호들갑스럽다. 특히 종편들이 아주 신났다. 보수신문들도 '종북놀이'에 팔을 걷어부친 모양새다.
6일자 일부 신문들의 1면 톱 기사들 제목들이다. '종북주의자의 사상초유 美대사 백주 테러(매일경제)'라는 기사 제목은 전형적인 예다. '韓美동맹 찌른 從北테러(조선일보)', "從北, 한미동맹을 테러하다(동아일보)도 못지 않다.
가만 보면 보수언론들이 이번 사건을 '종북 테러'로 규정하고 나선 것이 박근혜 대통령의 가이드라인을 받아서인지도 모른다. 박 대통령이 사건을 보고 받은 즉시 "한미동맹에 대한 공격"이라고 규정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미국 주요 언론들의 헤드라인을 살펴봤다. 도대체 '테러(terror)'라는 용어를 제목에 쓴 경우를 찾아볼 수 없다. 모두 '공격(attack)' 당했다는 표현을 쓰고 있다.
본토에 9.11테러 사태를 겪은 나라라서 그런가? 웬만한 사건에 대해 '테러'라는 용어를 함부로 쓰지 않는 것 같다.
만일 미국에서 주미 한국대사가 피습을 당한 사건이 일어나면 미국의 언론들은 어떻게 보도를 할까? 아마 사건을 객관적으로 보도하면서, "도대체 보안당국이 어떻게 일을 했기에, 동맹국의 대사가 공식업무 수행 중에 피습을 당하는 일이 발생하느냐"고 정부를 비판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우리는 어떤가? 경호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는 점을 지적하기는 하는데, "규정에 어긋나게 일한 적 없다. 앞으로 잘하자"는 것으로 끝이다. 경호 실패에 대해서 총력을 기울여 보도하는 모습을 보기 어렵다.
그럼 국내 언론과 치안당국은 이번 사건을 어떤 점에서 중시하며 다루고 있는가? 검찰은 '테러' 사건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공안부에 사건을 배당했다고 한다. 경찰은 국가보안법 위반 여부까지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경찰이 리퍼트 대사를 공격한 김기종 씨에 대해 '살인미수'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사건의 중요성이나 폭력행위의 의도나 결과로 볼 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또한 김기종 씨가 범행 전후로 외친 메시지로 볼 때 북한과의 연계나, 배후세력 여부를 의심할 여지도 있다. 이에 대한 수사도 필요할 것이다.
한국은 미쳐도 '분쟁지역' 고통에서 자유롭지 않은 나라?
하지만 이렇게 언론들이 나서서 '종북 테러' 사건으로 규정하는 것이 과연 그렇게 걱정한다는 '한미동맹' 관계에 도움이 되는 것일까?
리퍼트 대사가 피습을 당한 행사장 현장에 있었던 김성곤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6일 언론 인터뷰를 통해 "이 사건을 지나치게 정치이념적으로 보는 것은, 적어도 현재까지는 너무 나간 것"이라면서 "정치 이념적인 것이 이 사람의 배경에는 분명히 있다. 그렇지만 극단적 성격의 소유자가 벌인 사건으로 이것이 한미관계를 기본적으로 흔든다거나 그런 사건은 아니고, 오히려 그렇게 해석하는 것이 한미관계에 더 부담을 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종북놀이'가 취미생활이 아닌 전문가나 언론이라면, 이렇게 진단하는 것이 이성적일 것이다. 종북 연계 가능성 등은 조용히 추가 수사를 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사건 직후 곧바로 "從北, 한미동맹을 테러하다"는 식의 제목으로 대서특필한 신문이 국내 대표 보수언론이라는 게 우리 현실의 수준이다.
이들 종편과 보수신문들은 입으로는 "가장 중요한 동맹국 대사가 피습을 당한 사건으로 한미동맹 관계에 미칠 영향이 우려된다"고 말한다. 그런데 오히려 사건의 의미를 종북 테러 사건으로 크게 부풀리면서 한국을 '미국의 은혜도 모르고 반미감정이 득세해 언제 미국인들이 테러를 당할 지 모르는 불안한 나라"로 인식을 시키려들고 있다.
아, 사실 맞는 면이 있기는 하다. 한국에서는 미친 사람도 '남북통일', '독도는 우리땅', '미제는 물러가라', '남북관계 망치는 한미군사훈련을 중단하라', '전쟁반대' 등 매우 정치적인 구호와 이념을 내세우며 극단적인 행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점이다.
미국 대사가 해외에서 공식업무 수행 중 피습을 당한 일은 극히 드물며, 모두 분쟁지역이나 치안이 극도로 불안한 후진국에서만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미국 대사가 피습을 당한 게 결코 예외는 아니라는 점은 맞는 것같다. 한국은 미친 사람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오래된 분쟁지역이다. 그러니 '가장 중요한 동맹국 대사'를 상시 경호할 요인으로 선정하지 않는 우리 경호시스템이 이번 사건의 진짜 배후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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