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민간 자금으로 중산층을 위한 임대주택 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린다는 목표 아래 13일 '기업형 임대주택사업 육성방안'을 내놨다.
기업형 임대가 정착되면 이를 이용하는 중산층 세입자들은 갑작스러운 주택 임차비용 증가나 이에 따른 퇴거위험 없이 최소 8년간 안정적으로 살 수 있다. 또 품질 좋은 브랜드 임대주택으로 수요가 분산돼 고질적인 전월세 시장의 불안을 덜 수 있다고 정부는 기대한다.
하지만 이를 위해 '넘어야 할 산'도 적지 않다. 민간임대 사업성 확보를 위해 제공하는 택지비 할인, 국민주택기금 지원, 세제 완화 등이 건설사나 중산층에 대한 특혜 시비를 불러올 수 있고, 사업자들이 돈 되는 고급 임대만 공급할 가능성도 있다. 내 집 마련 수요를 줄여 매매시장 활기를 떨어뜨리는 부작용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① 국민주택기금 중산층 지원 논란
먼저 중산층의 주거불안을 해결하기 위해 서민 주거복지를 위해 조성한 국민주택기금 재원을 투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냐는 반발이 제기될 수 있다. 기업형 임대의 수요 타깃은 3분위에서 시작해 9분위 초반(4인가족 기준 월소득 177만~531만원)으로 잡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국토교통부는 "중산층의 주거불안을 줄여나가는 것도 정부의 역할 중 하나"라며 "서민주거 안정은 차질없이 추진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한정된 재원이 중산층 지원에 쓰이면 상대적으로 저소득층 지원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특히 국민주택기금을 국민주택 범위에서 벗어난 전용 85㎡ 초과 중대형 건설 및 임대에까지 지원하는 것은 논란의 소지가 있다는 지적이다.
국토부 고위관료 출신 한 학계 인사는 "국민주택 규모가 85㎡이하로 정해져 있는데 서민 주택 마련을 위해 조성한 국민주택기금을 85㎡ 초과 주택에 저리로 지원한다는 것은 명분이 부족해 보인다"고 지적했다.
② 시장 불안 가속..'고급임대' 변질 우려
기업형 임대는 연 5%의 임대료 상한을 두고 운영되지만 최초 입주시 임대료는 제한을 받지 않는다. 이때문에 오히려 주변 전월세시장 불안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규정 NH투자증권 부동산연구위원은 "기업형 임대는 사업 수익률을 고려하면 월세 비중이 높은 반전세(보증금+임대료) 형태로 공급될 것으로 보인다"며 "하지만 최초 계약시 임대료에 대한 규제가 없기 때문에 주변 시세보다 높은 수준에서 보증금과 임대료가 책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했다.
특히 사업자들은 수요자들이 전세 보증금 비율이 높은 것을 선호하는 성향과 전월세시장 변동에 대한 불안감을 이용, 8년 동안 가격 변동이 제한적인 기업형 임대의 초기 보증금과 임대료를 최대한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높은 임대보증금과 임대료를 바탕으로 기업형 임대가 '한남 더 힐'과 같은 고급 호화 임대주택 형태로 변질돼 상속, 증여나 이후 분양전환 과정에서까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2009년 공급된 서울 용산구 '한남 더 힐'은 세무당국이 임대보증금에 대해서는 자금출처를 적극적으로 조사하지 않는다는 점을 노리고 자녀 편법 증여 및 탈세 방편으로 활용한 사례가 다수 발각된 바 있다. 이 고급임대는 분양전환 가격을 두고도 입주자와 사업자측의 마찰이 끊이지 않고 있다.
③'잘 돼도 문제'..매매시장 침체 우려
기업형 임대 시장이 활성화돼 이에 대한 수요가 많아져도 매매시장엔 오히려 걱정거리가 될 수 있다.
국토교통부는 작년까지만해도 소득 5~6분위를 '정부 지원시 자가 가능 계층'으로 분류해 '공유형 모기지', '디딤돌 대출' 등을 통한 매매전환 유도에 집중해 왔다. 소득 7분위 이상은 '자가주택 구입가능 계층'으로 분류해 따로 지원을 하지 않고 시장 기능에 일임하는 방식을 택해왔다.
하지만 기업형 임대의 수요층인 중산층 이상 세입자들이 집을 사지 않고 임대차 시장에 눌러앉게 되면 그만큼 매매 수요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작년 한 해 주택거래량이 100만건까지 늘어난 배경에도 전셋값 상승 압력에 따른 매매수요 전환이 자리잡고 있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중산층 전세입자들에게 '빚 내 집 사라'고 재촉하던 정부가 이번에는 '월세로 옮겨라'라는 메시지를 내놓은 것"이라며 "구매력 있는 중산층이 기업형 임대시장으로 빠져나가면 매매시장이 위축될 수 있다"고 예상했다.
소규모 임대사업자인 '다주택자'들의 임대소득 기반이 상대적으로 위축되는 것도 문제다. 자금력이 있는 중대형 건설사들에게 택지공급·세제 완화·저리자금 지원 등 전방위적인 혜택이 집중되면 상대적으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소규모 임대사업자는 기업형 임대사업자와의 경쟁에서 밀릴 수밖에 없다.
국토부는 현재 소규모 임대업을 포함한 통상적인 임대주택사업 수익률을 3%, 금융비용 및 세금을 뺀 세후수익률은 1% 중반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형 임대는 사업 수익률과 세후수익률이 5%대 초반으로 개선될 것으로 보고 있다. 지원을 받지 못하는 다주택자들은 '역차별'을 받는 셈이다.
비즈니스워치=프레시안 제휴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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