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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조현아'에게 당하지 않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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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에서 '조현아'에게 당하지 않는 법

[프레시안 books] 니크 브란달 외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으로 온통 시끄러웠다. 사실 낯선 일은 아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봉건 영주처럼 군림하는 기업 총수 일가들의 행태는 흔히 듣는다. 총수 전용기 승무원이 무릎을 꿇고 기어 다니며 시중을 든다는 이야기, 1인 시위를 한 노동자를 야구 방망이로 구타하고 돈을 던져준 '맷값 폭행' 사건 등. 널리 알려진 것만 해도 수두룩하다.

청장년기의 대부분을 일터에서 보낸다. 일터에서 보낸 시간은 폭력과 강제에서 자유롭지 않다. '민주 시민'이라는 말을 스스로 꺼내기가 민망한 건, 그래서 당연하다. 철든 이후 대부분을 머슴으로 살아가는데, 투표소에서 잠깐 누리는 자유로 민주주의를 실감하기란 어려운 일.

우리는 왜 일터에서 머슴 대접을 받아도, 그저 참아야만 할까. 답은 다들 알고 있다. "회사 안은 전쟁터지만, 회사 밖은 지옥이다." 드라마 <미생>의 대사가 잘 묘사했다. 회사 밖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이다. 회사 밖이 지옥으로 방치돼 있는 한, 우리는 회사를 떠날 수 없다. 그가 설령 조현아보다 더 악질이더라도, 그가 기업 총수라면, 우리는 그 앞에서 머슴이 돼야 한다.

지난 대선 직전, 복지국가 담론이 반짝 관심을 받았었다. '회사 밖 사회'도 살 만한 곳이 복지국가다. 개인의 선택 혹은 노력과 관계없이 닥치는 재앙, 예컨대 실직, 질병 등에 대해 혼자 힘으로 대응하는 게 아니다. 공정한 세금으로 재원을 확보하고, 이를 통해 사회가 대응한다.

'회사 밖 사회'도 살 만해진다면, 우린 일터에서 머슴 아닌 시민이 된다. 머슴이 사라지면, 조현아 역시 봉건 영주가 아니다. 그저 시민일 뿐이다. 복지국가를 향한 노력은 조현아를 건강한 시민으로 만든다.

'땅콩 회항'에 분노하고, <미생>에 열광하지만, '회사 밖 사회'를 살 만한 곳으로 만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우린 언제까지 머슴으로 살아야 할까.

"지옥"인 회사 밖을 살 만한 곳으로…복지국가를 향한 꿈

ⓒ책세상
반가운 책이 나왔다. 니크 브란달, 외이빈 브라트베르그, 다그 에이나르 토르센이 쓴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책세상, 2014년 9월 펴냄). 복지국가를 향한 꿈을 모든 이가 잊어버린 건 아니었다.

노르웨이 오슬로대학에서 정치학, 역사학 등을 연구하는 이들이 쓴 책이다. 제목 그대로,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대한 친절한 개론서다. 배경 지식이 깊지 않아도 쉽게 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관심을 둔 지 꽤 됐다.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핀란드 등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국가에 직접 다녀오기도 했다. 관련 서적이 나올 때마다 사서 읽곤 했다. 책을 읽을 때마다,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대해 주변 사람들과 토론할 때마다, 느낀 답답함이 몇 가지 있었다. 이 책은 이런 답답함을 풀어준다. 그래서 반갑다.

첫 번째 답답함, 어떤 이들은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너무 찬양한다. 그때마다 답답했다. 복지국가도 결국 사람 사는 곳이다. 그늘이 있다. 이걸 외면하면, 결국 반작용이 있다. 북유럽 모델에 대한 지나친 미화는, '복지국가 만들기'를 우리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과제, 그래서 실현 불가능한 과제로 여기게 한다. 이는 복지국가 운동을 위해서도 해롭다. 또 북유럽 국가들의 어두운 면이 조금만 드러나도, 복지국가에 대한 열정이 돌아설 수 있다. 역시 위험하다.

두 번째 답답함, '틀린 사실'로 복지국가를 매도하는 이들이 있다. 예컨대 복지국가에선 자살률이 높다는 식이다. 사실과 다르다. 1960년대에 일시적으로 스웨덴 자살률이 높았던 적이 있다. 그러나 이후에는 자살률이 계속 떨어졌다. 복지국가에 가까워지면, 자살률이 낮아지는 게 일반적인 경향이다. 복지가 잘 갖춰져 있으면, 국민이 나태해져서, 창업이나 신기술 연구 등 위험한 도전을 꺼린다는 주장도 있다. 역시 오류다. 복지가 잘 갖춰지면, 실패에 대한 안전판이 확보되므로, 위험한 도전이 활성화된다. 실제로 북유럽 복지국가는 대체로 과학기술 강국이며, 창업이 활발하다.

세 번째 답답함, 과거 대학가에서 유행하던 마르크스주의 이론서들을 기억하는 이들 중엔 '사회민주주의 모델'에 냉소적인 경우가 꽤 있다. 초기 사회민주주의 이론가들 중엔 마르크스, 엥겔스, 레닌 등과 날카롭게 대립한 이들이 많다. 마르크스, 레닌 등의 저술을 주로 읽다보면, 사회민주주의 경향은 혁명에 대한 배신으로 여겨진다. 제국주의, 혹은 아류 제국주의 국가가 제3세계를 착취해서 얻은 '개량의 떡고물'로 혁명적인 노동자들을 길들인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이들이 있다. 물론,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제3세계를 착취하는 국가가 모두 수준 높은 복지와 인권, 민주주의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왜 어떤 나라는 똑같은 '개량의 떡고물'로도 극심한 양극화를 막지 못하고, 다른 어떤 나라는 복지국가를 만드는가. 이 차이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래서 답답할 때가 많았다.

네 번째 답답함, 단편적인 사실로 복지국가를 재단하는 경우가 있다. 예컨대 노르웨이는 산유국이라서, 복지국가가 될 수 있었다는 식이다. 석유가 나니까 재정 걱정이 없다는 뜻. 다른 북유럽 국가는 산유국이 아니지만, 복지 수준이 높다. 또 석유가 더 많이 나는데도, 복지와 인권, 민주주의가 열악한 나라도 많다. 다른 선진국에 비해 적은 인구를 복지국가 성공의 이유로 꼽기도 한다. 이는 북유럽 국가들에 비해 인구가 월등히 많은 한국에선 복지국가가 불가능하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그러나 복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인구와 복지 사이의 의미 있는 상관관계는 규명되지 않았다.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보편적이다"

이 가운데, 세 번째와 네 번째 답답함을 풀어주는 데 이 책이 효과적이다.

이 책의 주요 메시지는,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시간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보편적인 것"이라는 주장이다. "시간적으로 보편적"이라는 건, '북유럽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20세기의 어느 특수한 시기에만 가능했던 체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2차 세계대전 직후 고도 성장기'에서 태동한 체제라는 통념에 대한 반박이다. 저자들은 북유럽 역사를 차근차근 되짚는 과정을 통해, 사회민주주의 모델이 세계 경제 상황이 나빴던 1930년대에 나타났다고 설명한다. 충분한 '떡고물'이 없어도 복지국가가 가능하다는 뜻.

"공간적으로 보편적"이라는 건, 사회민주주의 모델은 스웨덴, 덴마크, 노르웨이 등과 다른 문화적, 역사적, 지리적, 인구학적 조건에서도 가능하다는 뜻이다. 앞서 언급한 답답함 가운데 네 번째와 닿아 있다.

그렇다면, 시간과 공간에 관계없이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가능케 하는 핵심 요소는 무엇인가. 앞서 언급한 답답함 가운데 세 번째와 맞물린다. 중요한 건 정치다. 도식적인 경로를 따라가야 닿을 수 있는 '유토피아'는 중요하지 않다. '지금 여기의 맥락에서 급진성'을 띠는 건강한 대중 운동, 시민이 겪는 구체적인 문제를 풀어내는 정치적 리더십이 절실하다. 개인이 누리는 자유의 가치를 인정하고, 이를 보장하도록 사회 전체가 '평등하게 연대'할 것을 목표로 사회를 끊임없이 일관되게 개조해온 사회민주주의 운동이 핵심 요소였다. 초기 사회민주주의 정치가, 이론가들이 주류 마르크스주의와 다른 대목이기도 하다. '온건하게 희석된 마르크스주의', '혁명 대신 개량', '정치에 대한 경제의 우위' 등은 사회민주주의 전통과 거리가 있다.

'정치의 중요성', '개인이 누리는 자유의 가치', '도그마를 거부하는 실용주의' 등이 사회민주주의 전통과 가깝다. 옛 운동권의 관성으로는 놓치기 쉬운 가치들이다. 그러나 새로운 진보 정치를 꿈꾸는 이라면, 곰곰이 생각해볼 만한 내용이다. 사회민주주의를 다룬 책을 함께 읽고 토론하는 모임이 여기저기서 꾸려졌으면 하는 바람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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