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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영리병원 반대하면 세무사 못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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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영리병원 반대하면 세무사 못 된다?

세무사 1차 시험 문제 정답 논란

영리병원이 '도덕적 해이'를 줄인다? 정답을 놓고 논란이 일 수 있는 질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실시된 세무사 시험은 이 질문에 대해 한 가지 답을 강요한다. 영리병원에 비판적인 수험생은 걸러내는 문제다.

지난해 4월 실시된 51회 세무사 1차 시험 재정학 과목 문제가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낳고 있다. "건강보험(의료보험) 시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을 모두 고른 것은?"이라는 문제다. "ㄱ. 공제제도 ㄴ. 영리병원제도 ㄷ. 공동보험제도 ㄹ. 정보의 확산"이라는 보기가 주어졌다. 그리고 "1) ㄱ, ㄷ 2) ㄴ, ㄹ 3) ㄱ, ㄴ, ㄷ 4) ㄴ, ㄷ, ㄹ 5) ㄱ, ㄴ, ㄷ, ㄹ" 가운데서 하나를 골라야 한다.

ㄱ과 ㄷ, 즉 공제제도와 공동보험제도를 답으로 고르는 데는 이견이 없다. 실제로 수험생들이 보는 재정학 교재 이런 두 가지 제도를 보험의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방안으로 명시했다. 논란이 되는 건 'ㄴ. 영리병원제도'와 'ㄹ. 정보의 확산'이다.

"영리병원과 도덕적 해이 완화는 별개 사안"

대표적인 건강보험 전문가인 이상이 제주대 의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 문제의 정답이 'ㄱ과 ㄷ', 또는 'ㄱ과 ㄷ, ㄹ'이라고 밝혔다. 'ㄱ과 ㄷ'은 명백히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방안인데, 'ㄹ. 정보의 확산'은 답으로 고르기에 좀 모호한 면이 있다는 것. 보험시장의 도덕적 해이는 정보의 비대칭성에서 주로 비롯된다. 정보가 확산되면, 즉 정보의 비대칭성이 누그러지면, 도덕적 해이는 줄어든다. 그러나 다른 보기와 달리, '정보의 확산'은 구체적인 정책 수단이 아니다. '방안'을 고르라는 게 질문인데, '정보의 확산'은 그 자체로 '방안'이 되기 힘들다. 다른 정책수단을 통해 달성한 결과이거나, 정책의 목적에 가깝다. 따라서 'ㄹ.'은 정답이 되기에 애매한 면이 있다.

1~5번의 보기 가운데 'ㄱ과 ㄷ, ㄹ'은 없으므로, 이 교수의 입장대로라면 정답은 1번, 즉 'ㄱ. 공제제도와 ㄷ. 공동보험제도'가 된다.

그런데 발표된 정답은 '5번'이다. "ㄱ, ㄴ, ㄷ, ㄹ"이 모두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방안이라는 것. 영리병원이 '도덕적 해이'를 줄인다는 입장에서만 가능한 정답이다. 과연 그럴까. 이 교수는 영리병원과 건강보험의 도덕적 해이는 완전히 별개의 영역이라고 설명했다. 둘 사이의 인과관계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것.

복지 및 재정 전문가인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도 같은 입장이다. 오 위원장은 "영리병원은 한국에서 시행되지 않은 제도"라며 이 같은 문제가 출제된 것 자체가 황당하다고 밝혔다. 시행되지 않아서 효과가 공식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제도에 대해 특정한 입장만을 정답으로 고르게끔 하는 건 부당하다는 지적이다. (관련 기사 : 영리병원 1호 '싼얼병원' 불승인…국제 망신)

신현영 대한의사협회 대변인도 비슷한 입장이다. 신 대변인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건강보험(의료보험) 시행과정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해이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라는 문제 자체가 모호하다며 말문을 열었다. 도덕적 해이를 일으키는 주체가 건강보험관리공단인지, 의료인인지 등이 모호하다는 설명이다. 이어 그는 "영리병원은 의료를 경제 관점에서 접근하는 제도인데, 이 경우 '과잉진료' 등 도덕적 해이가 생길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영리병원이 도덕적 해이를 줄이는 방안이 되기 어렵다는 입장에 가깝다.

"시장원리 따라 과도한 의료 소비 막는다"과연?

▲ ⓒ프레시안(김윤나영)
의료인이 아니어도 병원에 투자할 수 있고, 수익을 병원 밖 투자자에게 되돌려 줄 수 있게끔 하는 게 영리병원 제도다. 또 세무사 시험에서 언급한 '도덕적 해이'란, 정보의 비대칭 상황에서 대리인이 자신의 효용을 극대화하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다. 예컨대 자신의 질병 기록을 숨기고 보험에 가입한다면, '도덕적 해이'에 해당한다.

정답 논란이 일자, 수험생들은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찬반이 명확히 갈리는 사안에 대해 특정 입장을 지닌 수험생을 배제하는 문제가 출제됐다는 것이다.

출제를 담당한 한국산업인력공단 측은 행정심판 과정에서 영리병원이 정답에 포함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영리병원제도는 시장경제 원리에 따라 과도한 의료 소비를 막아 도덕적 해이를 방지할 수 있는 방안"이라는 것. 가격이 오르면 의료 소비가 줄고, 가격이 떨어지면 의료 소비가 늘어난다는 논리다.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의료 소비는 가격의 영향을 덜 받는 대표적인 분야라는 게다. 실제로 이진석 서울대 의대 교수는 과거 <프레시안> 기고에서 "무상의료 실시로 인해 의료 이용이 크게 늘어나지 않는다"라고 설명했다.(☞바로 가기 : "무상의료는 공짜가 아니다") 출제자 측의 논리대로라면, 무상의료를 실시하면 의료 이용이 폭증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영리병원 도입은 기획재정부와 일부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지지했다. 세무사 시험은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실시하고 기획재정부가 주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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