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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선거에 홍콩 시위까지…위기에 빠진 '하나의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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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선거에 홍콩 시위까지…위기에 빠진 '하나의 중국'

[차이나 프리즘] 대만의 지방선거결과, 이후 중국은

12월 3일 중화민국의 마잉주(马英九) 총통이 국민당의 주석직을 내놓았다. 이에 앞서 지난달 29일에는 행정부의 2인자인 장이화(江宜桦)가 행정원장에서 사퇴하였다. 야당인 민진당의 전임 행정원장 셰창팅(谢长廷)은 2일 대만 <연합만보>에서 "국민당이 다시 원기를 회복하려면 아무리 빨라도 8년은 걸릴 듯하다"며 이번 선거에서 국민당이 입은 충격의 정도를 언급했다.

대만 신문들은 이제 마 총통은 남은 2년 여의 임기 동안 별다른 정책을 추진할 수도 없을 것이며, 총통 자리만 유지하는 데 그칠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이른바 레임덕에 빠질 것이라는 이야기다. 심지어 2016년에 있을 예정인 차기 입법원 선거나 총통 선거에서도 국민당이 패배할 것이라는 섣부른(?) 관측을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지난 11월 29일 치러진 대만 지방선거에서 마 총통이 이끄는 국민당이 1949년 이래 집권해 오면서 가장 큰 참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이번 선거는 지방의 공직자들을 뽑는 지방선거이지만, 직할시장 6명, 현·시장 16명, 향·진시장 198명 외에 직할시, 현시, 향진시의 의원들을 포함하여 모두 1만여 명 이상의 지방공직자를 선출하는 대규모 선거였다. 1994년 성·시장 선거제도가 유권자들의 직접투표로 진행되는 지방자치선거로서 이른바 대만인들의 정치적 선택을 명확하게 알 수 있는 통로이다. 때문에 이번 선거는 대만 유권자들이 2012년 이후 마잉주 총통의 2기 집권에 대한 중간평가에서 낙제점을 준 것이다.

▲ 마잉주 대만 총통(가운데)이 3일(현지시각) 타이베이의 국민당 당사에서 지방선거 참패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집권 여당인 국민당 주석직에서 사퇴한다고 밝힌 뒤 머리를 숙이고 있다. ⓒAP=연합뉴스

불과 2년 만에 정국이 180도 바뀐 것이다. 2012년 초에는 국민당이 입법원 선거에서 전체 113석 중 65석을 차지하여 민진당의 38석에 비해 훨씬 많은 의석을 점유했다. 이러한 승리를 바탕으로 국민당은 정국을 주도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고, 총통선거에서도 마잉주가 민진당 후보를 이겨 두 번째 임기를 시작함으로써 국민당의 전통적인 통일정책을 지속적으로 유지해나갈 수 있게 되었다.

그 해 마 총통은 미국의 금융위기로 야기된 대만경제의 침체를 극복하고자 중국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이른바 양안 간의 경제, 교통, 통신의 교류를 더욱 개방하고 확대하는 '신3통'을 선언하였다. 하지만 그러한 결정은 야당의 동의와 다수 대만인들의 공감을 얻지 못한 가운데 이루어지면서 마 총통에게 '비판세력과 소통을 하지 않는 독불장군식의 권력자'라는 부정적인 인식을 심어주었다.

사실 마 총통과 국민당의 선거 패배는 오래전부터 예견되어 왔다. 올해 1월 화인(華人) 공공지식인 난팡숴(南方朔)는 <명보>에 2013년 중국과 대만이 체결한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대만의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이익을 담보로 거대 자본과 정치권의 이익만을 추구하는 정책을 추진하고, 또한 입법원장 왕진핑(王金平)과의 정쟁으로 인하여 정치에 대한 환멸을 불러일으키는 등 마잉주 정권의 지지율이 10%도 채 되지 않는다면서 연말에 있을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이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하지만 선거가 치러지기까지는 10개월 이상의 시간이 남아있었다. 국민당이 만회할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리라고 보았다. 그러나 마 총통과 국민당의 실책은 계속되었다.
한편으로 대만의 선거결과는 민주주의를 향한 지식인들의 선언과 대학생들의 행동이 단초가 되었다. 입법원 회의에서 국민당의 대표가 30초 만에 법안을 날치기 통과시킨 행위에 항의하면서 대학생들에 의한 민주화운동이 시작되었다. 양안의 경제협력협정과 같은 중요한 정책이 국민들에게 공개되지 않고, 밀실에서 진행되고 있다는 것에 반발해 이른바 '밀실 서비스무역협정 반대운동'(反黑箱服贸运动) 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사건은 참가 학생들이 밝고 따뜻한 대만의 미래를 추구한다는 의미로 한 송이 한 송이 해바라기를 들고 있다고 하여, '해바라기 학생운동'이라고도 불렸다.

대학생들은 올해 3월 18부터 4월 10일까지 입법원과 행정원을 점거하면서 양안서비스무역협정(EC) 체결을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자체 해산을 결정한 학생운동세력들은 장기적으로 요구사항을 쟁취하기 위하여 시민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확대하는 방식으로 운동을 전개해나갔다. 이를 위해 단체를 조직했는데, 예를 들면 주요 조직이었던 흑색도국청년전선(黑色岛国青年阵线)은 '도국전진'(岛国前进)을 결성하고서는 양안서비스무역협정의 구체적인 사항과 대만에 불리한 영향을 시민들에게 홍보하는 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서는 10월부터 11월까지 검정 셔츠를 입고서는 대만의 북쪽에서 남쪽까지 각지를 순회하면서, 문화공연과 토론회를 조직하여 양안 서비스무역협정의 불리한 부분을 시민들에게 직접 설명하고, 반대서명운동을 벌여나갔다. 또한 SNS와 인터넷을 통하여 매일의 활동내용과 시민들의 반응을 온라인 공간에서 공유하고자 했다.
대만 지방선거에서 국민당이 패배하는 결과가 나타나자, 지난 9월 26일부터 2017년 홍콩행정장관선거에서의 시민 추천권을 요구하며 시작된 홍콩의 학생시위가 소강상태를 보이다가 다시 격화되고 있는 추세이다. 중국에서는 민족적 통합과 영토적 통일을 위하여 내부적으로 한족과 55개에 걸친 소수민족을 하나로 아우르는 중화 민족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신장 위구르족, 티벳 장족뿐만 아니라 동북 일대에 거주하는 조선족도 포함되어 있다. 동시에 외부적으로는 중국, 대만, 홍콩을 묶어 하나의 중국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 방식을 통해 영토적 통일을 지향해 가고 있다.

하지만 홍콩에서는 덩샤오핑(鄧小平)이 보장했다는 홍콩인에 의한 홍콩인의 자치(港人治港) 원칙을 요구하는 홍콩 시민·대학생들의 반발에 직면해 있으며, 대만에서는 중국의 흡수통일에 두려움을 갖고 있는 대만시민·대학생들의 양안 경제협력반대와 대만독립 분위기 확대라는 장애에 부닥쳐 있는 형세이다. 대학생과 시민들이 중화권의 미래를 어떻게 열어나갈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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