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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경력 잠수사, 뻘 제거하다 사망…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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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30년 경력 잠수사, 뻘 제거하다 사망…왜?

[함께 사는 길] 핵발전소 안전 지켜온 비정규직 노동자, 안녕하신가

최근 <뉴스타파>에서 방영하고 있는 '원전묵시록'은 핵발전소의 고용구조가 얼마나 핵발전소를 위태롭게 하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원전 안전과 주변 환경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방사선안전관리 업무를 10년 넘게 비정규직에게 맡기고 내부 컴퓨터망에 접근하는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공유하면서 대리결재까지 이뤄지고 있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더구나 한국수력원자력(주)의 정규직은 순환근무로 인해 관련 업무에 미숙해 중요한 판단조차 이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없이는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황이라는 것도 밝혀졌다.

원전 비정규직 피폭량 정규직보다 10배 높아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맡은 방사선 관련 용역 업무는 방사선 관리구역 제염‧세탁, 출입과 작업관리, 방사성폐기물 처리, 임시저장고 관리, 방사성폐기물드럼 처분인도, 소내 방사선감시계통 운영, 방사능 측정실 운영, 종사자 선량관리 등 방사능 피폭 위험이 높은 업무다.

그 결과 2013년 한국수력원자력(주)에서 핵발전소 내 방사선 관련 업무 종사자들의 방사능 피폭량을 조사한 보고서를 보면 방사선 안전관리 비정규직 직원들의 연간 피폭량은 1.22밀리시버트(mSv)로 한국수력원자력(주) 정규직 0.13밀리시버트보다 높게 나타났다.

2012년에는 각각 1.21, 0.14밀리시버트, 2011년에도 1.20, 0.15밀리시버트로 방사선 안전관리 비정규직 직원들의 연간 피폭량이 정규직보다 약 10배 많이 나타났다. 국제방사선방호위원회의 일반인의 연간 피폭량 기준치는 1밀리시버트이고 원전이나 방사성물질 취급기관들의 종사자 기준치는 연평균 20밀리시버트(5년간 100밀리시버트)를 넘지 않아야 한다.

▲ 우리나라 핵발전소 안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맡고 있다. 이들의 안전을 지키지 않는다면 핵발전소 안전 역시 장담할 수 없다. 사고가 발생한 후쿠시마 핵발전소 현장에서 뒷수습하는 노동자들 ⓒIAEA

원자력발전소 종사자 가운데 3분의 2가 협력업체 직원이거나 비정규직이다. 국회 미래창조과학방송통신위원회 소속 최원식 의원이 한국수력원자력(주)에서 받은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올해 7월 기준 원전 종사자는 약 2만 명이고 이 중 66퍼센트(%)가 사내 협력업체 직원이거나 비정규직 노동자다. 특히, 방사능 피폭이 우려되는 원전 수시 출입자 1100여 명 가운데 95%가 사내 협력업체 직원으로 조사되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재천 의원이 2013년 국정감사에서 제출받은 2012년 자료를 보면 이들 중 방사능 피폭량이 가장 높은 업체 직원들은(월성원전 1호기 압력관 교체공사에 참여한 캐나다 AECL 직원 4명 제외) 원전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한전 KPS 직원(3139명), 핵연료가 있는 1차측의 주기기 정비를 담당하는 두산중공업 직원(356명), 그리고 방사선안전관리를 하는 방사선 용역회사 직원(900명), 원전 계측설비 유지보수를 담당하는 포뉴텍 직원(275명) 등이다. 이들은 한국수력원자력(주) 정규직원들보다 10배가량 방사능 피폭량이 많다. 이성엔지니어링, 세종기업, 삼창기업 등 원전 계측설비 유지보수 작업을 하는 용역업체들은 업체별로 111여 명 안팎으로 참여하고 있는데 정규직의 3~5배 많은 방사능 피폭량을 기록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아예 어떤 업체에도 속하지 않아 '기타'로 분류되는 노동자들이 3806명으로 전체 종사자들(최재천 의원 자료의 2012년 기준 1만4715명) 중 26%를 차지한다는 점이다. 가장 큰 비중이다. 이들의 방사능 피폭량은 방사선 용역회사 직원 다음으로 많고 정규직의 10배가량 많다.

▲ 지난 2월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을 진행하고 있는 월성핵발전소 비정규직 노동자들 ⓒ경주환경운동연합

사고로 이어진 비정규직 노동자 해고

계획예방정비 기간 동안 원전 정비를 위해 투입되는 인원은 임시직일 가능성이 높다. 정비 업무는 방사능 피폭이 많은 작업이다. 짧은 시간에 정비를 마치기 위해 임시직을 대규모로 투입하는 셈이다.

비정규직과 임시직 노동자 없이 핵발전소 안전 확보는 불가능하다. 정규직은 순환보직으로 맡은 업무에 대한 전문성이 떨어진다. 비정규직은 업체가 바뀌지만 계속 같은 자리에서 같은 업무를 맡으면서 용역업체만 바뀐다. 2013년 10월 30일 '근로자지위 확인소송'을 한 뒤로 계약 만료 뒤 지난 7월 8일 자로 해고된 한빛원전 방사선안전관리 업무를 해온 노동자는 국회 산업위에서 "2000년부터 13년 동안 같은 장소에서 같은 업무를 해왔지만 소속업체는 5번 바뀌었다. 그동안 사장은 한 명밖에 보지 못했다"고 증언했다. 그야말로 바지사장인 셈이다. 한국수력원자력(주)는 용역기간을 길게 하면 독식업체로 보인다는 점을 들어 용역기간을 3년으로 한정했다고 한다. 그 때문에 고용된 노동자는 동일하지만 업체이름과 사장만 바뀌는 상황이 된 것이다.

급여도 정규직의 절반 이하이고 성과급도 없고 지위는 불안정한 비정규직이지만 같은 업무를 오랫동안 지속해왔기 때문에 전문성에서는 정규직을 앞선다. 핵발전소 안전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비정규직의 해고가 핵발전소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은 이들이 해고된 지 한 달 만에 발생한 기체방사성폐기물 무단 방출 사고가 여실히 보여준다.

지난 8월 한빛원전 6호기는 기체방사성물질을 무단 방출했다. 당시 격납건물의 압력이 증가하자 내부 기체를 외부로 방출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는데 이때 방사능 기체 농도를 분석한 후 기준에 적합한지 확인하고 대기에 배출한다. 하지만 분석값에 오류가 발생했음에도 이를 인지하지 못하고 방출한 것이다. 사고는 해당 업무를 담당한 비정규직을 해고하고 익숙하지 않은 노동자로 교체한 후에 발생했다. 결재를 담당하는 한국수력원자력(주) 정규직원은 그동안 비정규직 숙련노동자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왔기 때문에 기체 방사성폐기물 배출 서류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결국 사후 분석으로 갈음했고 이미 나가버린 방사성물질을 확인할 길은 없었다.

지난 10월 16일 증기발생기 세관 손상으로 1차측의 방사성물질이 2차측을 오염시킨 상황에 대처하는 과정에서도 역시 실수가 발생했다. 한빛원전 3호기에는 두 대의 증기발생기가 있다. 세관 손상으로 1차측의 방사성물질이 새어나오는 것은 2번 증기발생기였다. 하지만 비정규직이 분석한 자료를 보고 어떤 밸브를 잠가 방사성물질이 터빈으로 새어나가는 것을 막을지를 결정하는 것은 정규직이었다. 결과적으로 2번이 아닌 1번 증기발생기에 연결된 밸브를 잠그는 바람에 방사성물질 유출을 일찍 막지 못했다. 그 결과 16일 오후 1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0시47분까지 총 11시간 17분간 '제논-133' 등 8가지의 핵종이 포함된 방사능 11억1000만 베크럴이 외부 환경에 유출되었다.

▲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후 발전소를 둘러보는 직원들 ⓒIAEA

열악한 환경에서 원전 안전을 지키는 노동자들

핵발전소 안전에는 전문성과 복잡성을 제대로 이해하는 숙련노동자가 필수적이다. 핵폐기물 관리와 제염 등 방사능 피폭이 발생하는 방사선관리구역은 생명의 위협까지 감수하면서 작업을 해야 하는 열악한 상황이다. 그런데 그동안 한국수력원자력(주)는 핵발전소 안전과 피폭의 위험성을 비정규직에 미뤄놓고 있었으며 정규직은 현장 상황도 제대로 판단하지 못할 만큼 무능했다는 것이다. 핵발전소 안전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담당하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원전 안전을 지키면서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비정규직들의 안전보장은 형편없다. 9월 27일 오후 발생한 월성원전 3호기 계획예방정비공사중 수중작업에 투입되었다가 사망한 고 권봉균 씨 역시 용역업체 직원으로 위험한 업무를 하고 있다가 사고를 당했다.

고 권봉균 씨는 30년 경력을 가진 베테랑 잠수사다. 한전 KPS의 하청을 받은 용역업체 직원으로 월성원전 3호기 취수구의 수중에 방수격벽 설치에 앞서 뻘 제거 작업을 위해 투입됐다. 원전은 뜨거운 냉각재를 식히기 위해서 초당 수십 톤의 바닷물을 빨아들인다. 이를 위해 취수구 펌프는 4대가 있다. 계획예방정비를 위해 원전 가동이 멈춰있다 하더라도 최소한의 냉각을 위해서 한 대의 펌프는 가동해야 하는 상황이다. 작업장소는 3번 펌프가 있는 곳인데 펌프가 가동 중이었다. 안전망도 없는 상태에서 작업장소에서 1.5미터밖에 떨어져있지 않은 곳에서 가동되는 펌프는 위협적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한전 KPS측은 펌프 작동을 멈추거나 작업장소에서 떨어진 1번이나 4번 펌프를 가동해 달라는 요청을 묵살했다는 게 동료의 증언이다. 1번과 2번 펌프는 정비를 위해서 운전 불능이고 4번 펌프는 비상시를 위해 운전대기 상태라서 안 된다는 게 한전의 답변이었다고 한다. 결국 작업은 강행되었고 펌프에 빨려 들어간 고 권봉균 씨 시신은 5퍼센트 밖에 찾지 못한 상태다.

3번 펌프를 끄지 못하는 상태였다면 잠수사를 투입하면 안 되는 것이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1번이나 2번 펌프의 정비가 끝난 뒤에 작업을 해야 했다. 하지만 짧은 계획예방정비기간을 맞추기 위해서 목숨을 건 위험천만한 작업을 강행해야 했다. 한전 KPS 직원 본인들이 작업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같은 결과였을지 미지수이다. 이용률을 높이고 건설기간을 줄이고 비용을 줄여서 싼 원전 발전단가를 유지하기 위해 위험천만한 현장에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제대로 된 안전조치 없이 내몰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야 한다.

핵발전소 안전을 지키는 일

핵발전소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와 같은 부당하고 위험천만한 고용구조는 현재 한국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우울한 현실이다. 한국사회에서 안전 관리에 필수적인 생명을 건 위험한 현장은 지위도 불안정하고 대우도 열악한 비정규직에 맡겨 놓고 있는 것이 핵발전소뿐이겠는가.

하지만 핵발전소 안전은 해당 사업장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전체의 명운이 걸린 문제다. 가장 위험한 현장에서 안전에 필수적인 역할을 오랫동안 수행해온 비정규직 숙련노동자는 우리나라 핵발전소 안전을 책임지는 소중한 재산이다. 원전 사고가 발생할 때 현장에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고 중요하고 빠른 판단을 1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데이터를 제공하는 이들은 이들 숙련노동자다. 이들에게 정당한 대우를 하고 충분한 안전조치를 취하는 것이 핵발전소 안전을 지키는 일이다.

* 월간 <함께 사는 길>은 '지구를 살리는 사람들의 잡지'라는 모토로 1993년 창간했습니다. 사회적 약자와 생태적 약자를 위한 보도, 지구적 지속가능성을 지키기 위한 보도라는 보도중점을 가진 월간 환경잡지입니다.(☞ <함께 사는 길> 바로 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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