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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보다 더 나쁜 것들도 참 많은데…"

[김형찬의 동네 한의학] 한의사가 본 담배

"이따 우리 애 아빠 올 텐데, 건강하려면 담배 꼭 끊어야 한다고 이야기 좀 해주세요. 손주 봐 주는데 며느리한테 눈치도 보이고, 아무 때고 가래 뱉는데 보기 싫어 죽겠어요. 이 양반 병원 한 번 보내기가 되게 힘들어요. 꼭 좀 말해 주세요."

평소 허리가 아파서 가끔 치료 받으러 오시는 아주머니께서 문을 열기 무섭게 오셔서 신신 당부를 하고 가십니다. 요즘 바짝 피곤해해서 한의원에 가서 진찰 좀 받으라고 했으니, 치료도 하면서 남편 분에게 조금 겁도 좀 주고, 금연침도 맞는다고 하면 놔주라고 하셨지요.

한 시간쯤 지났을까, 약간 마른 체구의 아저씨 한 분이 약간 겸연쩍은 표정으로 들어오십니다. 몸 상태를 살피면서 이야기를 들어보니 술은 잘 안드시는데, 담배는 10대 후반부터 시작해서 평균 하루 1갑 정도 피운다고 하십니다. "심장과 폐기능도 약해져 있고 기침도 자주 하시니 40년 정도 피우셨으면 이제 헤어지실 때도 되셨네요"라고 말씀드렸더니, "그래야 되는데 세상이 절 그렇게 놔두질 않네요"라고 답하십니다. 진료를 마치고 가실 때 담배를 끊으려는 결심이 서시면 금연침을 놔드릴 테니 편하게 오시고, 정히 못 끊겠으면 채소와 과일을 좀 더 챙겨드시고 입이 마를 때는 커피 대신 물을 드시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가 흡연에 대해 무척 엄격해진 것과는 달리, 개인적으로는 담배에 대해 좀 느슨한 편입니다. 담배를 피우지도 않고, 가끔은 그 연기에 질색을 하면서도 왜 그럴까가? 생각해보면 담배와 함께 연상되는 기억과 사람들의 긍정적인 이미지 때문인 듯 합니다. 애연가였던 아버지가 줄담배를 태우면서 마을 어른들과 장기를 두실 때는 늘 곁에 있었고,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 또한 신기하게도 담배를 많이 피웁니다. 그리고 눈이 반쯤 녹은 어느 겨울날, 마을회관 앞 양지에서 송아지색 외투를 입은 콧수염에 약간의 콧물마저 묻힌 할아버지가 커다란 지포 라이터로 반쯤 남은 담배에 불을 붙여 맛있게 빨던 모습과 라이터기름 냄새는 행복했던 유년 시절의 한 장면으로 남아있지요.

백해무익한 존재이자 폐암의 원흉으로 몰리고 있는 담배에 대해 사전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연초(煙草) : 담배의 잎으로 맛은 맵고 성질은 따뜻하며 독성이 있다. 기운이 잘 돌게 하고 통증을 멈추게 한다. 살충과 해독효과가 있다. 음식을 먹고 체해서 배가 부른 것, 기의 소통이 뭉쳐서 아픈 증상, 종기나 옴 그리고 뱀이나 개에 물린 것을 치료한다. 폐병, 기침, 토혈 및 모든 인후 증상에 금한다.
이 효능을 보면 담배를 피우면 기생충이 없다는 속설이 왜 생겼는지, 애연가들이 식후와 일이 잘 안 풀리고 고민이 있을 때 담배를 피우는지 이해가 됩니다. 막힌 기운의 소통을 돕기 때문에 잠깐이지만 속이 편해지고 머리가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지요. 물론 중독성이 있고 몸에 해가 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특히 호흡기와 심혈관계에 좋지 않고, 잠깐의 각성 후에는 신경계통도 지치게 만들지요.

▲ 담배 한 개비를 통해 얻는 위안과 건강상의 해악을 비교할 때 무엇이 더 클까. ⓒ연합뉴스


그런데 한편으로 드는 생각은 담배 한 개비를 통해 얻는 위안과 건강상의 해악을 비교할 때 무엇이 더 클까 하는 것입니다. 흡연으로 인해 발생한다고 이야기 되는 질병의 이면에는 어쩌면 담배를 피우게 만들었던 한 사람의 삶의 무게가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닐까 하는 것이지요. 건강과 질병의 문제에는 수 많은 변수와 개인차가 존재하는데 그것을 어떤 한 가지 때문이라고 단정 짓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는 우리 사회가 왜 이렇게 담배에 예민해졌을까 하는 것입니다. 건강에 해를 주는 것들이라면 대표적으로 우리가 무시로 들이마시고 있는 자동차와 공장의 매연, 알게 모르게 노출되고 있는 수 많은 화학물질과 환경오염 그리고 많은 위험을 안고 있고 실제로도 재앙이 되고 있는 핵발전소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적 분위기나 언론매체를 통해 전달되는 내용들을 보면 이런 문제들보다도 담배의 해악이 더 강조되는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반응도 그렇구요. 그러면서 건강의 문제를 너무나 개인적인 차원의 문제로 몰아가는듯 합니다. 몸에 해롭다는데도 피운 네가 잘못이라는 것이지요. 하지만 조금만 눈을 돌려보면 현대인은 건강하게 살기에는 너무도 위태롭고 위험한 환경에 노출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담배정도는 애교에 불과할 지도 모릅니다. 더 크고 사회 전체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적당히 눈을 감은 채, 개인에게만 건강의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변화가 필요한 부분입니다.

담배는 분명 건강에 해가 됩니다. 결심이 섰다면 끊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비흡연가의 권리 또한 존중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정히 못 끊겠다면 다른 사람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피우고, 좋은 영양의 섭취와 적절한 신체활동으로 흡연으로 인해 힘들어지는 몸의 상태를 조정해 준다면 그 폐해는 최소화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진료실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다 보면 더 중하고 급한 문제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여기에 담배만큼의 관심이 기울여진다면 사람들은 지금보다 훨씬 건강해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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