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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뿌려진 '삐라'…"너희들이 죽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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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에 뿌려진 '삐라'…"너희들이 죽였다"

청년좌파 "'함께 살자' 구호가 찌르는 건 당신의 심장"

주말 오후 국회 앞 거리에 '삐라'가 뿌려졌다. "너희들이 죽였다", "정리해고법 폐지하라", "이윤보다 인간이다" 등의 문구가 적힌 종이다. 쌍용자동차의 정리해고가 적법하다는 지난 13일 대법원 판결을 가리키는 내용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은 지난 2009년 77일 간의 파업 뒤 무급휴직(462명), 희망퇴직(353명), 정리해고(165명) 등으로 전부 980명이 회사를 떠났다. 그리고 25명이 자살 등의 방식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에 대한 책임이 정치권에 있다는 게 '삐라'의 메시지다.

'삐라'를 뿌린 이들은 ‘청년좌파’ 회원들이다. 이들은 지난 15일 오후 2시45분께 새누리당과 새정치연합 당사 맞은 편 건물들과 국회 정문 맞은편 금산빌딩 옥상에 올라가 이 종이들을 뿌렸다. 수만 장의 '삐라'는 경찰이 곧 수거했다.

▲"너희들이 죽였다" ⓒ청년좌파

'청년좌파' 측은 '삐라'를 뿌린 뒤 발표한 보도자료에서 현행 정리해고법이 만들어진 데 대한 책임이 여야 모두에게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파렴치하게도,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도입되었던 정리해고법을 이제야 개정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면서, "그러나 정리해고법 즉 근로기준법 24조 1항은 1998년 새정치민주연합과 새누리당이 만든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들은 "여야는 악법을 만들고 책임을 방기함으로써 쌍용자동차 노동자를 비롯한 이 땅의 노동자들을 죽음에 내몬 것과 다름없"다며, "따라서 인간의 불행과 죽음에서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면, 여야는 정리해고법 '개정'을 운운할 것이 아니라 당장 '폐기'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이들은 "오, 필승 코리아"라는 글도 함께 발표했다. 쌍용차 장기 파업 이후, 다섯 번째 사망자가 나왔을 당시 있었던 일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당시 쌍용차 정문 앞에서 회사 측을 성토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그러자 회사 측은 '오, 필승 코리아'라는 노래를 크게 틀었다. 다섯 번째 죽음에 항의하는 목소리는 그렇게 묻혀 버렸다.

이들은 이 글에서 "잡을 토끼가 바닥나면 사냥개를 삶는 법"이라고 적었다. 이어 이들은 "지금 함께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찜솥에 홀로 외로이 들어가는 것 외에 그 어떤 영광도 없을 것"이라며, "함께 할 수 없다면, 지지라도 해주길 바란다"라고 밝혔다. 이 글은 "쌍용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그토록 외쳤던 구호는 '함께 살자'였다. 그 말이 찌르고 있는 것은 당신의 심장이기도 하다"라는 문장으로 끝난다.

- 다음은 청년좌파 측이 “오, 필승 코리아”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글, 전문이다.


한명의 20대 여성이 자살했다. 화장실 입구에서 넥타이로 목을 맸다. 네 살과 7개월 된 두 아들이 있었고, 노동자인 남편이 있었다. 남편은 공장에서 파업중이었다. 그날 남편이 있는 공장에는 경찰특공대가 투입되고 있었고, 경찰의 진입에 맞춰 사측은 물과 가스 공급을 끊고 의료품과 생필품 반입을 차단했다. 의료인 단체가 공장 앞에 와 최소한의 물과 의약품을 들여보내달라고 호소했지만, 공권력은 끝까지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자살한 여성은 2009년 7월 20일 오후 1시 30분, 쌍용차 사태 5번째 사망자로 기록되었다.

그날, 쌍용차 정문 맞은편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자살한 박씨의 소식을 알리고, 쌍용차 사측을 규탄하는 내용이었다. 기자회견이 시작함과 동시에 사측은 ‘오, 필승 코리아’를 기자회견 참가자 방향으로 틀었다. 기자회견의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오, 필승 코리아’라는 노래만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답가라기에는 너무도 잔혹한 노래였지만, 저주와 조롱으로만 치부하기에는 찝찝한 노래였다. 그때 그 공장의 노동자들, 그리고 노동자의 가족들과 싸우고 있던 상대는 확실히 국가였기 때문이다.

10여일 후, 곤봉과 테이저건으로 무장한 경찰부대가 총공격을 감행했다. 쓰러진 노동자들을 둘러싼 채 곤봉으로 두드려 패고, 발로 찼다. 몸을 제압하는 것이 목적이라기보다는, 더는 반항하지 못하도록 정신을 꺾어놓기 위한 집단폭행이었다.

당시 경기지방경찰청장이었던 조현오는 이 기억에 대해 청문회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우리 경찰을 선진 일류경찰로 만들어 가는데 소중한 자양분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틀이 채 되지 않아 쌍용차 사태는 종결되었다. 정리해고에 맞선 노동자들의 옥쇄파업은 77일만에 끝났다. 쌍용차 파업이 끝나고, 평택의 한 초등학교에서 선생님이 “부모님이 파업에 참가했던 사람”은 손을 들라고 말했다. 손을 들었어야 할 한명의 학생은, 나쁜 예감에 손을 들지 않고 가만히 있었다. 아무도 손을 들지 않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다행이다. 우리 반엔 빨갱이가 없어서”

그때 손을 들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자살과 스트레스로 인한 사망 등, 쌍용차 노동자의 죽음은 그 후로도 줄을 이었다. 대한문에 설치된 쌍용차 노동자 분향소는 만들어지는 족족 남대문경찰서의 발에 아작이 났다. 영정 한 개도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도 쌍용차 사태 관련 사망자는 25명으로 늘어났다.

2014년 11월 13일, 대법원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 153명이 낸 해고무효확인 소송에서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원심 파기환송 판결을 했다. 쉽게 말하면, 정리해고는 정당했다는 판결인 셈이다. 정리해고의 요건을 만들기 위해 회사가 회계조작을 한 사실에 대해서도 대법원은 “미래에 대한 추정은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 밖에 없으며 그 추정이 보수적으로 이뤄졌다 하더라도 합리성은 인정되야 한다”는 명언을 남겼다. 문장은 길지만, 결국 해고는 사장 마음이라는 말을 길게 한 것에 불과하다. 정리해고의 조건인 “경영상의 위기”는, “미래가 불확실”한 이상 언제나 기업주가 꺼내 쓸 수 있다는 것이다.

25명이 죽었다. 1조가 넘는 공적자금이 한탕 도박에 넘어갔다. 이 모든 일에서 쌍용차는, 그리고 대한민국은 무죄를 선고받았다. 오, 필승 코리아.

1998년 2월, 정리해고법이 발효되었다. 3월, 현대자동차는 정리해고법을 무기삼아 1만여명의 노동자를 현장에서 쫒아냈다. 이것을 시작으로 전국에 구조조정과 정리해고 바람이 불었다. 정규직이 쫓겨난 자리에는 비정규직이 신규채용되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비정규직이라는 불안정노동형태는, 노동시장의 절반을 넘나들게 되었다.

2005년 1월 중국 상하이 자동차는 쌍용차 채권단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고, 5900억 원에 공장을 인수했다. 3년전 투입된 공적자금 1조원과 금융지원 2천억원, 도합 1조 2천억원이라는 출자전환 금액과 비교하면 50% 이상 깎아준 셈이다. 인수 당시에는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를 약속했지만, 상하이 자동차에 매각된 후 신차 개발은 전혀 없었다. 대중국 수출도 늘지 않았다. 어느새 쌍용자동차의 주력인 SUV 차량마저 추월당하기 시작했다. 그러는 사이 중국에는 쌍용차와 비슷한 차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물론 상하이자동차가 가진 브랜드로.

2006년 8월, 쌍용차 노동자들이 상하이 자동차가 기술유출을 하고 있다고 고발했다. 사측이 아니라 노동자들이었다. 쌍용차가 국가지원을 받아 개발중인 핵심기술이 유출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검찰은 이렇다 할 수사를 진행하지 않았다. 8개월 후, 카이런의 디젤엔진과 변속기 기술관련 자료가 이메일을 통해 상하이로 넘어가면서 국비로 만든 기술유출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9개월이 지난 2008년 3월, 이 기술유출사건은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검찰이 본격적으로 수사에 착수하기 시작한 것은 언론보도 이후부터다.

이해 말, 기술유출 사건의 수사결과가 나왔지만 검찰은 발표하지 않았다. “외교마찰”을 우려해서라고 했다. 상하이 자동차는 이미 철수를 준비하고 있었다. 챙길 것은 충분히 챙겼고, 검찰도 정부도 너그러웠다. 상하이자동차는 금융위기를 빌미로 쌍용차 부도를 선언했다. 기획부도였다. 매각에 방해가 되는 눈엣가시는 기술유출에 예민한 노동자들과, 기술유출을 감히 고발할 정도로 강성인 노동조합이었다. 그들을 “청소”하려면, “경영상의 위기”가 필요했다. 쌍용차는 회계조작을 감행했다. 1조 197억원의 부동산 가격이 하루아침에 5252억원으로 떨어지는 마술이 벌어졌다. 구차 단종으로 매출이 줄어들지만 신차 매출이 그것을 메우진 못할 것이라는 엄청나게 비관적인 예측이 회계보고에 담겼다. 그리고 2009년 1월 쌍용차는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법정은 환타지 소설 같은 그 회계보고를 인정했다.

쌍용차가 그해 4월 발표한 정리해고 대상은 2,646명이었다. 노동자들은 강하게 반발했다. 정부는 공권력을 투입했다. 헬기로 노동자들의 머리 위에 최루액을 뿌리고 테이저건을 쏘았다. 쌍용차는 공장 및 옥상을 점거한 노동자들에게 물과 음식, 가스 등을 차단했다. 사측은 해고대상이 아닌 노동자들을 동원해, 파업중인 노동자들과 싸우라고 지시했다. 살아남은 자와 살아남지 못한 자가 싸우기 시작했다. 그들의 자녀들도 학교에서 싸우기 시작했다. 6월 11일, 사측의 관제데모에 강제로 동원된 노동자가 심각한 스트레스를 받다가 심장마비로 사망했지만, 죽지 않은 자들은 여전히 “오 필승 코리아”를 불러야 했다.

파업 77일, 전쟁은 경찰의 진압 성공으로 마무리됐다. 그리고 무급휴직 462명, 희망퇴직 353명, 정리해고 165명 등, 980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100여명의 구속, 수백 억 원의 손해배상 가압류, 그리고 25명의 죽음이 이 전쟁의 유산이었다. 살아남은 노동자들의 성과급은 줄어들었고, 쟁의는 금지되었다. 노동시간은 줄지 않고, 노동강도는 높아졌다.

결국 “필승”을 쟁취한 “코리아”는 기고만장해졌다. 법원은 무급휴직자에게 지급해야 할 5천 여 만원의 밀린 임금을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거기에 노사합의문에 뭐라고 써있건 회사가 무급휴직자를 복직시킬 의무가 없다고 판결했다. 그리고 이번엔 정리해고가 사실상 기업주 마음이라는 해석까지 내렸다. 쌍용차 이후로도 정리해고는 기승을 부렸다. 매각 가격을 올리기 위해, 주식가치를 위해, 부동산 때문에, 다양한 이유들이 판을 쳤다. 심지어 구미의 KEC 공장에서는 노동자의 임금을 깎아 130억의 재원을 마련해 관리자 연봉을 올리겠다는 파렴치한 계획속에서 정리해고가 단행되었다. 노동자가 자살을 하고, 죽어나가는 와중에 기업주들은 마치 게임의 말을 옮기듯이, 정리해고를 하고 그 자리에 비정규직을 늘렸다.

“정리해고는 기업주 마음”이라는 해석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구분 없는 불안정노동의 선상에 올려놓았고, 사회 도처에는 비정규직 하청노동자들로 가득하게 되었다. 올해 침몰한 세월호 참사에서 당시 승무원중 반 이상이 비정규직이었다는 사실은 별로 놀랍지도 않다.

야당은 자신들이 정권을 잡았을 때 도입되었던 정리해고법을 이제야 개정해야 한다고 나서고 있다. 정리해고의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면서 말이다. 그러나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정리해고법은 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분명 1998년 이전에는, 정리해고법이 없었다. 그리고 정리해고법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문제 같은 것도 없었다. 정리해고법이 없다는 이유로 자살한 노동자도 없었고, 정리해고법이 없다는 이유로 쫓겨난 노동자도 없었다.

인간의 불행과 죽음에서 우리가 쾌감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면, 정리해고법은 당장 폐기해야 한다. 우리가 에볼라의 감염에 맞서서 바이러스를 “개정”하겠다고 나서지 않듯이, 우리가 군대 폭력과 살인 사건들에 맞서서 군대 폭력의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듯이. 그러니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아직도 공장에 돌아가길 포기하지 않은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일이다. 여의도에 앉아서 정리해고 게임의 밸런스가 너무 안맞으니 메인터넌스를 해야 한다는 소리나 하고 있는 저 쾌락 살인마들에게, 정리해고법을 당장 없애야 한다고 협박하는 것이다.

노동자의 처지는 언제나 하나다. 지금은 요행히 살아남아있다 해도, 무한정의 시간이 주어진 것은 아니다. 잡을 토끼가 바닥나면 사냥개를 삶는 법이다. 토끼는 당연히도 유한하다. 지금 함께하지 않는다면, 마지막에 찜솥에 홀로 외로이 들어가는 것 외에 그 어떤 영광도 없을 것이다. 기왕 삶아질 것이라면, 우리는 우애가 아직 남아있을 때 일찌감치 찜솥으로 걸어들어가 함께해야 한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당신들도 함께 해주길 바란다. 함께 할 수 없다면, 지지라도 해주길 바란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정리해고 철회를 요구하며 그토록 외쳤던 구호는 “함께 살자”였다. 그 말이 찌르고 있는 것은 당신의 심장이기도 하다.

2014년 11월 15일
청년좌파

▲ '청년좌파' 회원들이 쌍용차 사태에 대한 정치권의 책임을 묻는 전단을 뿌렸다. ⓒ청년좌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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