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번에 생맥주 세 잔, 훈제치킨 하나요."
"안주 주문이 밀려서 바로 안 나와요. 반건조 오징어나 황도는 금방 나오고. 저기 주문표 보이죠? 저거 다 나와야 가능해요."
서빙을 맡은 기자는 생맥주와 귤 몇 개만 챙겨 10번 테이블로 종종 걸음을 쳤다. 벌써 두 번째, 기본 안주인 귤을 잔뜩 집어 들었지만 10번 테이블에 못내 미안했다. 프레시안을 '애정(愛情)'하는 이들은 물밀듯 들어오는데, '닥치고 일일호프'의 닭 안주는 '꼬끼오!' 지붕만 쳐다보고 있었다.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은 지난 18일 서울 신촌에서 협동조합 전환 1주년 맞이 일일호프를 열었다. 기자(직원 조합원)와 독자(소비자 조합원)가 한마음 한뜻으로 준비한 이날 행사는 말 그대로 '대박'!
'닥치고' 마신 술만 최소 28만씨씨(생맥주 28만cc·병맥주 72병·막걸리 50병·소주 59병·전홍기혜 모히또 용 럼 5병), '닥치고' 뜯은 치킨만 35마리에 치킨탕수육 닭까지 총 60마리 이상을 올킬(all-kill)했다. 130여 석은 꽉꽉 찼으며, 번호표를 받아 문밖에서 기다리는 이도 다수였다. 연인원 500여 명이 참석했다.
프레시안 조합원이라는 이름 아래, 오직 '애정'하는 마음 하나로 뭉친 그날의 이야기를 지금 타전한다. 참석한 우리 모두가 '이주의 조합원'이기에….
"우리 '썸'타고 있어요"
조합원 정신영숙 씨는 이날 오후 멋쩍은 얼굴로, 일일호프를 찾았다. 지난 8월부터 매월 다큐멘터리 감독을 인터뷰하는 '조합원, 다큐에 빠지다'에 참석하고 있지만, 대규모 프레시안 행사에 참여하는 것은 이번이 처음.
정 씨는 인터뷰 모임을 통해 만난 조합원 오지은 씨의 소개로, 오 씨의 어머니 조희선 씨와 합석했다. 이날 오 씨는 직접 구매한 일일호프 티켓을 어머니에게 양도한 채 주방에서 자원봉사를 했다.
어색함도 잠시, 정 씨는 오 씨의 어머니와 '썸'을 타기 시작했다. 자기 소개가 수다가 되고, 고민이 이야기가 됐다. 맥주 잔을 부딪히는 횟수가 늘수록 웃음꽃이 번졌다.
"어색할 줄 알았는데, 너무 좋아요.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과 이렇게 얘기해 본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어요. (어머니와) 처음 만났는데, '썸' 타는 기분이에요."
"그러니까요. 나도 궁금해서 오긴 왔지만, 혼자 책이나 읽다 가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우리 '썸' 이상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요?"
정 씨는 카카오톡 그룹창에서 인사만 한 조합원 이은재 씨와도 얼굴을 텄다(?). 이 씨 역시 인터뷰 모임 멤버다. 전화 대신 카톡이, 표정 대신 이모티콘이 생각과 감정을 전하는 시대. 프레시안 조합원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정체성은? "프레시안 조합원!"
이 씨는 동네 '술 형'을 프레시안 일일호프에서 만났다. 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이 씨는 평일과 주말할 것 없이 홍대 주변 1킬로미터(Km) 내 술집에서 늘 이옥남 씨를 만났다. 술 생각이 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로에게 전화하는 형과 아우 관계, 두 사람은 그러나 각자가 '프레시안 조합원'인 줄 몰랐다. 일일호프를 통해서 서로의 정체성을 확인한 셈.
"형, 조합원이었어요? 얘기한 적 없잖아요."
"그러게, 나도 몰랐다. 만나면 술만 마셨지, '프레시안 조합원'이라는 정체성은 확인 안 했네. 난 여정민 기자랑도 술친구인데."
'술 형' 이옥남 씨는 한국노총 조직본부 조직부장으로, '노동'을 전담했던 여정민 기자와 취재원으로 만나 선후배가 됐다. 이 부장은 이날 함께 온 이한나루 노사발전노동조합 사무처장을 현장에서 직접 조합원으로 가입시키는 등 '프레시안 조합원'이라는 정체성을 거듭 확인했다.
이한나루 사무처장은 선배의 강요(?)로 프레시안 조합원이 됐지만, 늘 프레시안을 '애정'했다고 고백했다. 그러면서 "한 조직의 식구가 된다는 건 '연대'의 의미다. 조합원으로 작은 힘이나마 보태게 돼 기쁘다"라며 "공공기관 무기계약직의 정규직 전환 등 관련 보도에 신경을 써달라"고 부탁했다.
"페북에서만 보다 궁금해서 왔어요"
일일호프에 '프레시안 조합원'만 함께한 것은 아니다. 평소 <프레시안>이라는 매체를 궁금해하던 독자도 참여했다.
"<프레시안> 분위기가 어떤지 궁금해서 왔어요. 그런데 남의 잔치에 온 것 아닌지 모르겠어요."
정은희 씨와 김지현 씨는 "<프레시안> 기사를 '눈팅'만 하다 페이스북을 통해 일일호프 소식을 듣고 왔다"며, 낯설어 했다. "요즘 세월호 관련 뉴스 아니고는 안 본다"는 정 씨는 "'세월호 참사'만 해도 생각이 제각각인데,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한자리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 사람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고 말했다. "<프레시안>을 다소 딱딱하게 여겼다"는 김 씨는 "일일호프 같은 편안한 자리여서 우리도 올 수 있는 것 같다. 와보길 잘했다"라며 웃었다.
두 사람 옆자리에는 조합원 김신아 씨의 친구들이 있었다. 이들은 "'닥치고' 일단 와봐라"는 친구의 협박에 못 이겨 일일호프에 참석했다. 그것도 경기도 인천, 수원, 부천 등 다소 먼 거리에서….
세 사람 중 두 명은 <프레시안>을 전혀 모른다고 했다. 그러면서 "원래 언론사가 이렇게 활기찬 곳이냐"고 물었다. 다른 한 명은 친구인 김 씨를 따라 세월호 참사 관련 집회에 참석한 이후 자신의 얼굴이 기사에 나왔다며 "그때 처음 <프레시안>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사를 꾸준히 찾아보고 있지는 않다"고.
정은희 씨와 김지현 씨는 과연 프레시안 페이스북 페이지 '좋아요'를 누르게 될까? 김신아 씨의 친구들은 앞으로 <프레시안>을 '애정'하게 될까? 일일호프를 통해 장벽을 조금이나마 낮춘 언론 협동조합 프레시안에게 또 다른 숙제가 생겼다.
나도 한 마디■ 김부겸 새정치민주연합 전 의원"KTX 타고 택시 타고, 대구에서 올라왔다. 진보 언론으로 13년(주식회사 12년+협동조합 1년)을 버텨온 게 기적이지만, 이런 매체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마지막까지 숨 쉴 수 있게 열심히 도와달라."■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프레시안> 친구가 되어 달라고 말하고 있다. 늘 오늘 같은, 친구가 많은 <프레시안>이 되길 바란다."■ 노회찬 정의당 전 의원"박근혜 정권과 보수 진영에 종편이 있다면, 우리에게는 <프레시안>이 있다. 가까이에 있을수록 소중하지 않게 생각할 수 있는데, 우리가 가진 자산인 <프레시안>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심상정 정의당 의원"일일호프에 오기 전에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협동조합, 특히 언론 협동조합은 조합원 참여가 적극적이어야 '강한 언론'이 될 수 있는데 그동안 소홀했다. 앞으로 조합비 두 배로 내겠다! 약속이다."■ 이철희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소장"<프레시안> 덕에 많이 알려졌다. 친정이라고 생각한다. 팟캐스트 <이철희의 이쑤시개>를 좀 더 열심히 해서 일일호프 안 해도 되는 <프레시안>이 되면 좋겠다."■ 진성준 새정치민주연합 의원"민주진보 진영의 스피커가 갈수록 작아지고 있어 안타깝다. 2017년 정권교체와 우리 사회의 정의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라도 <프레시안>이 잘 되어야 한다. '뭇 사람의 입은 쇠도 녹인다'고 하지 않나. <프레시안>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쇠를 녹일 것이라고 기대한다."* '나도 한 마디' 발언자 외에도 많은 분이 프레시안 일일호프를 찾아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곽노현 전 서울시 교육감,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박갑주 변호사, 박원석 정의당 의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손호철 서강대 교수, 언론노조 미디어오늘 지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오창익 인권연대 사무국장, 임지영·이명익 <시사인> 기자, 이영기 변호사, 이창근 쌍용차 해고 노동자, 전국철도노동조합, 정기훈 <매일노동뉴스> 기자, 정범구 새정치민주연합 전 의원, 정혜윤 CBS 피디, 조승수 정의당 전 의원,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 한윤형 <미디어스> 기자 등 (조국 서울대 교수와 정관용 한림대 교수는 직접 사인한 저서 5권을 각각 보내주셔서 일일호프를 찾은 조합원들 중 10명을 추첨으로 뽑아 증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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