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기업의 입사에서 스펙 못지않게 인문학적 소양을 중요하게 본다고 한다. 주위를 둘러보면 인문강좌 개설을 알리는 현수막이 각 지역마다 걸려있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마음만 먹으면 아주 쉽게 인문학 강좌를 들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 것을 알 수 있다. 강좌도 세대별, 대상별로 다양하고 다소 중첩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러나 우리사회에서 인문학이 중시되고 있는 이러한 현상과는 다르게 인문학을 생산하고 있는 대학의 학과에서 느끼는 위기의식은 여전하다.
2000년 전후 대학의 구조조정 기치아래 시작된 인문학과의 폐지 내지 통폐합 등이 대학신입생의 감소가 가시화되면서 여전히 인문학과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중에게 필요한 인문학의 생산은 누가 담보하고 있다는 것인가.
다소 단순화 시켜 말한다면 인문학에 대한 지속적인 사회적 수요는 대학학과가 생산하는 인문학 지식보다는 미디어 매체 등을 통해 더 충족되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미 미디어를 통해 몇몇 인기 인문학 스타 강사가 배출되었고 이들이 인문학 지식을 생산하고 전달하여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중국의 상황도 우리와 비슷하다. 중국에서의 대중사회의 인문학 열풍도 미디어를 통해 확산되었다. 2000년 이래 중국에서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는 국영방송국 CCTV의 프로그램 <백가강단>(百家講壇)은 많은 스타강사를 배출했다. 이들 중 베이징사범대학의 우단(于丹) 교수의 강연은 <논어심득>(論語心得)이라는 책으로 출판되었고 책은 순식간에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같은 프로그램의 강연자였던 샤먼(夏門)대학의 이중텐(易中天) 교수도 <삼국지>와 <초한지>를 대중에게 쉽게 강연하여 인문학을 대중화한 선구자로 불렸다.
백가강단 프로그램의 인기강좌의 내용을 종합해 보면 소위 중국의 국학이라 할 문학, 역사, 지리, 미학 등이다. 이렇게 대중매체를 통해 국학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이 대중들의 열렬한 호응이 일어났던 것이다. 이러한 국학에 대한 관심은 점차 교육계의 제도적 차원에서도 이루어져 초중고 학생들이 고전을 암송하고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생겨나고 대학에서는 국학연구소가 건립되었으며 도시뿐 아니라 각 향촌과 지방사회에서 고전에서 중시하는 가치를 삶에서 실천하겠다는 운동도 일어나게 되었다.
이러한 중국의 인문학 열풍은 확실히 공산당 정부의 정책적 지원과 긴밀한 관련을 지녔다고 볼 수 있다. 중국정부는 개혁개방정책의 시행 이래 평등과 공유제의 사회주의적 가치가 슬로건에 불과하게 되자 이를 대체할 통합 이데올로기가 필요했을 것이다. 또한 자본주의의 확산에 따라 서구의 자유민주주의를 받아들이려 해도 1989년 천안문 사건에 대한 공산당 정부의 입장이 변화하지 않는 한 공산당 일당통치를 위협할 서구의 자유주의를 전폭적으로 수용하기는 어려운 실정이었다.
그러므로 이를 대체하고 국민전체를 통합하기 적절한 이데올로기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민족주의 정서와도 맞닿는 공자와 유가 등 전통사상과 중국의 찬란했던 통일의 역사기억이었던 것이다. 이는 중국내의 통합뿐 아니라 6000만 해외 화교와 동아시아, 동남아시아의 유교문화권의 영향 하에 있던 지역민과의 연계도 가능하게 할 것이었다. 그러므로 공산당이 부정했던 공자가 다시 살아 돌아와 철거는 되었지만 천안문 광장에 동상이 건립되도록 추진하고 공자학회와 회의를 국가차원에서 개최하고 공자학원과 공자학당을 전 세계에 500여 곳이 넘게 적극적으로 설립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개혁개방이래 30여 년의 짧은 기간 동안 G2로 부상하였다. 이러한 높아진 위상에 걸맞게 중국은 이제 미국과 서구의 보편적 가치와 문화를 대체할 문화적 역량을 확보해야 한다는 의견이 중국 안팎에서 나오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소위 '소프트파워'(SoftPower)라는 전략에서 정부의 국학을 중심으로 하는 인문학에 대한 적극적 지원과 정책적 고려는 더 커질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지금의 이러한 공세적인 중국정부의 중국문화 확산 위협에 대한 분석에 기반해 경계의 시선을 갖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일반 대중들이 이러한 국학의 내용을 일상생활에서도 받아들이려는 태도에 대해서 다면적으로 바라볼 필요도 있다고 본다. 이러한 대중의 인문학에 대한 관심은 정부의 위로부터 하달된 정책과 서구에 대한 민족주의적 정서 외에 자발적인 측면도 있을 것이다. 누구를 위한 중국의 풍요로움인가가 제기될 만큼 중국의 '대국굴기'(大國崛起)는 대외적으로 대내적으로 화려한 빛을 발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빈부격차의 심화나 배금주의라는 어두움과 함께였다.
중국은 지난 30여 년 '먼저 부자가 되어라'는 덩샤오핑(鄧小平)의 주문에 따라 놀라운 경제성장과 세계의 공장이 되었지만, 물질적 풍요로움과 소비를 위해 자신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쏟고 경쟁을 통해 남을 이기고 해치며 이에 대한 특별한 반성과 고민을 하지 않는 사회적 풍토도 만들어왔다. 급격한 산업화의 과정을 겪었던 우리사회와 마찬가지로 중국도 이러한 변화에 적응해야 했던 것이다.
사회주의 국가였던 중국에서 가난했지만 모두 평등하다는 과거의 가치관이 폐기되면서 능력에 따라 자신의 힘에 따라 더 많은 것을 갖을 수 있고 이러한 능력의 차이가 가져오는 결과를 인정해야 한다는 새로운 가치관과 배금주의 또한 급속히 확산되면서 중국사회는 당혹과 혼란을 겪게 되었다.
이러한 소위 전환기라고 불리는 급격한 사회의 변화 속에서 점차 깊은 고민과 반성이 일어나게 되는데 그것은 개인, 가족과 이웃, 사회가 어떠한 가치와 태도로 관계를 맺어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인간다운 삶인가, 인간의 속성은 어떠하며 이러한 이해를 통해 각자의 인생과 사회 공동체가 보다 나아질 수 있는가 등 근본적인 문제들을 포함하는 것이었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법과 제도 등 사회의 구조가 변화와 함께 그 안에서 살아가는 개개인의 자각과 변화의 의지가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면, 중국이 당면한 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모색이라는 큰 문제의 틀 속에서 인문학의 열풍을 바라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그러므로 중국의 인문학 열풍도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고립된 개인들의 인간다운 삶과 가치에 대한 고민과 욕구가 근본적인 배경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인문학 열풍과도 맥락이 닿아있다. 이 인문학 열풍이 동아시아 전반에 퍼져있는 물질적 성장주의를 인간적 삶과 인간본위의 삶을 사회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근본적 가치로 대체되는 견인차로 이어가기 위해서는 인문학열풍에 내재한 상품화와 패권적 민족주의에 함몰되지 않으려는 자각이 있어야 할 것이다.
동시에 열풍에 휩쓸리거나 일회성으로 끝나버리지 않는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통해 인간의 존엄에 기반 한 고전 가치를 재구성하여 현실을 창조하려는 여러 차원의 노력도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중국과 한국사회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 줄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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