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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심장 잘려나가는 고통' 안다면서…

[기자의 눈]인혁당 유족에 대해서는 '립 서비스'조차 없어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고(故)장준하 선생의 유족을 만나기 전날인 지난 10일 저녁, 박근혜 캠프에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일 경선의 흐름이 완전히 뒤바뀔 일이 생길 테니 아침 일찍 캠프 사무실로 오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캐물어도 그게 무엇인지는 일절 말을 하지 않았다. 당일 버스를 타고 미망인인 김희숙 여사의 일원동 자택에 거의 도착할 때까지도 누굴 만나는지는 비공개였다.

김 여사를 만나 박 전 대표는 "선생이 갑자기 돌아가신 후 얼마나 고통스러운 세월을 보내셨느냐. 진심으로 위로 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표는 '사과'나 '유감'이라는 직접적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사과의 의미'를 담았다는 흰색과 빨간색 장미다발을 건넸고 김 여사는 이를 사과로 받아 들였다.
▲ 장준하 선생의 유족을 만난 박근혜 전 대표. ⓒ국회 사진기자단

거실의 벽에는 장준하 선생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사진 속의 젊은 장준하 선생과, 이제는 82세의 노인이 된 김 여사가 가슴에 담았던 얘기를 적어 둔 메모지를 꺼내 읽으며 흘린 눈물, 그 노인의 손을 꼭 부여잡은 박 전 대표의 애잔한 표정은 자못 감동적이었다. 장 선생이 의문사를 당한 1975년으로부터 32년이 지난 2007년 7월, 대선후보 박근혜의 '과거사 끌어안기'를 언론은 대서특필했다.

장준하 의문사 사건은 박정희 전 대통령 통치 시절의 어두웠던 현대사의 한 장면임에 틀림 없다. 그러나 대단한 '깜짝쇼'라도 준비해 둔 것처럼 귀띔하며 일원동으로 향한 '대선주자 박근혜'의 발걸음은 분명한 '기획'이었다. 박 전 대표 자신의 정치적 맥락과 동떨어진 그 무엇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마치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 대표 재임시절이던 지난 2004년 지난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을 만나 "아버지 (집권)시절에 많은 피해를 입고 고생한 것을 딸로서 사과드린다"고 했던 것처럼 말이다. DJ와의 화해는 소위 '서진(西進)정책'이라는 한나라당의 호남 끌어안기가 시작될 무렵 나온 상징적 조치였다.

왜 장준하였을까?
▲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연합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3년 전 밝혔던 사과에는 진정성이 얼마나 농축돼 있었을까. 박 전 대표는 최근 출간한 자서전을 통해 "아버지는 (김대중 납치사건을) 북한이 벌인 일이라고 의심했다"고 썼다. 73년 발생한 김대중 납치 사건에 당시 중앙정보부가 깊숙이 관여한 듯 정황에도 불구하고 이를 정면으로 부인한 셈이다.

'김대중 납치사건'과 '장준하 의문사'라는 두 사건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다. '혐의'는 짙지만 아직까지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권력기관이 행위의 주체였는지에 대한 '사실'은 밝혀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박 전 대표가 마주선 듯 보이는 과거사에는 아버지인 박 전 대통령의 명백한 오류를 사선으로 비켜 선 선택적 행위가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다.

장준하 선생 유족과의 만남 직후 브리핑에서 캠프의 이혜훈 대변인은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고인의 사인규명에 나설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 전 대표가) 그에 대해선 아무런 말씀이 없었다"고 밝혔다.

결국 모양은 '과거사 안고가기' 같은 착시효과를 내면서도 내용은 선택된 사건에 박 전 대통령은 관계가 없다는 적극적 항변이 박 전 대표의 최근 행보에 녹아 있는 셈이다.

'명백한 과오'를 인정하지 않는 한…

자서전에서 박 전 대표는 부모를 모두 흉탄에 잃은 일을 회상하며 "심장이 잘려나가는 듯한 고통이었다"고 썼다. 타인의 손에 부모, 형제, 자식을 잃은 그 고통을 박 전 대표만큼 잘 아는 사람은 아마 없을 테다.

그럼에도 박 전 대표에게선 과거사진상조사위와 대법원이 박정희 정권 시절의 '사법살인'으로 재평가한 인혁당 사건에 대해서는 '립서비스 사과'조차 나오지 않는다. 유신시절 중앙정보부의 혹독한 고문으로 조작된 이 사건은 대법원 판결 뒤 불과 20시간 만에 사형이 집행된 박정희 권력에 의한 인권 희생의 대표적 사례다.

오히려 박 전 대표는 지난 2월 미국을 방문한 자리에서 "(인혁당 문제는) 국내에서도 얘기했듯이 그때도 법정에서 결정한 것이고 이번에도 법정에서 결정한 것"이라며 "내가 사과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라 역사가 평가할 것"이라고 불쾌하게 반응했다.

또한 그는 "우리나라 민주화에 진정 헌신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피해 입은 것에 대해 과거에도 사과했고 앞으로도 그럴 용의가 있지만 친북좌파의 탈을 쓴 사람들은 잘못이 있다"면서 화살을 돌리기도 했다.

이런 대목은 지난 6월 그가 공식 출마를 선언하며 "아버지 시대에 불행한 일로 희생과 고초를 겪은 분들과 그 가족 분들에게 항상 송구스럽고 죄송한 마음을 갖고 있다. 이 땅 민주화를 위해 헌신해 오신 분들의 희생과 노력을 높이 평가한다"도 한 발언의 진의를 의심케 한다.

박 전 대표가 과연 과거사에 대한 분열증적 시선을 거두고 박정희 시절의 '명백한 과오'까지도 두 눈을 뜨고 마주볼 수 있을까? 인혁당 사건 유족들에 대한 그의 태도가 가늠자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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