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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도 교육예산, '진보 교육감 길들이기'?

교육복지 사업, 국고 지원 없이 교육청에 부담 떠넘겨

박근혜 대통령의 주요 대선 공약이었던 고등학교 무상교육이 사실상 폐기됐다.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관련 예산이 전혀 책정되지 않았다. 그뿐 아니다. ‘누리과정’, ‘초등 돌봄 교실’ 등 주요 교육복지 사업에 대한 내년도 국고 지원은 대부분 '0원'이다. 반면, 대학교육의 상업화를 촉진하는 예산은 대폭 늘었다.

만3~5세 아동 보육을 지원하는 ‘누리과정’, 방과 후에도 아이들을 돌봐주는 ‘초등 돌봄 교실’ 등은 박 대통령의 대표적인 교육복지 공약이었다. 이들 사업에 대한 국고 지원이 전혀 없다는 건, 관련 비용을 모두 지역 교육청이 부담해야 한다는 뜻이다. 지난 6월 지자체 선거에서 대거 당선된 '진보 교육감'에 대해 정부가 '길들이기'를 시도한다는 해석이 나온다.

'고교 무상교육' 공약, 소리없이 폐기

교육부는 올해보다 8841억 원(1.6%) 증액된 55조1322억 원의 2015년도 교육부 예산안을 18일 발표했다. 그러나 실제로는 교육부 예산이 줄었다. 국립대 기성회비 1조3142억 원을 수업료로 일원화해 세입으로 처리했기 때문. 이 부분을 제외하면, 내년에 교육부가 실제로 쓸 수 있는 예산은 오히려 4300억 원 가량 줄었다.

교육부는 당초 고교 무상교육 관련 예산 2420억 원을 편성하도록 예산당국에 요구했었다. 그러나 거절당했다. 대신, 예산당국은 지방교육재정교부금에서 충당하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내년도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39조5206억 원으로 전년보다 1조3475억 원 줄었다. 지방교육재정교부금은 지금도 부족하다는 게 대다수 교육청의 입장이다. 사실상 고교 무상교육은 하지 말라는 게 예산당국의 메시지인 셈.

중기재정운용계획 분야별 투자방향에도 고교 무상교육은 빠져 있다. 올해부터 고교 수업료, 학교운영지원비, 교과서 대금을 매년 25%씩 지원해 2017년에는 무상교육을 완성한다던 대선 공약이, 아무런 설명 없이 폐기됐다.

대통령 공약 교육복지 사업, 국고 지원 없이 교육청에 부담 떠넘겨…진보 교육감 길들이기?

다른 교육복지 공약 역시 후퇴 기조가 뚜렷하다. 대다수 교육복지 공약이 포함되어 있는 유초중등교육 예산은 올해보다 1조 4000여억 원이 감축됐다. 당초 교육부는 ‘누리과정’에 2조2000억 원, ‘초등 돌봄 교실’에 6600억 원을 각각 내년도 예산안에 편성하고자 했으나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아예 궤도에 오르지도 못하고 폐기된 고교 무상교육과 달리, 이들 사업은 현재 진행형이다. 지역 교육청 예산으로 이들 사업을 감당하라는 게 예산당국의 메시지인 셈이다.

하지만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이 발행한 뒤 갚지 못한 지방채 규모가 3조원에 달하고, 계속 추가 발행을 해야 할 상황이다. 따라서 지방교육 재정은 계속 악화될 전망이다. 실제로 서울을 비롯한 상당수 지역 교육청은 교사들의 명예퇴직 신청조차 반려하고 있다. 퇴직금을 줄 수 없기 때문. 전국 시·도 교육감 17명 가운데 13~14명이 현 정부와 방향이 다른 '진보' '개혁' 성향으로 분류된다. 이들 '진보 교육감'들은 대체로 교육복지 강화를 지지하는 편이라서, 교육복지 사업은 설령 자신들의 공약이 아니더라도 축소하기 어렵다.

정부의 예산 편성 기조를 놓고, '진보 교육감 길들이기'라는 해석이 나오는 건 그래서다.

교육복지에 필요한 부담을 모조리 교육청에 떠넘기고, '재정의 덫'으로 옭아맨다는 것. 특히 박 대통령이 지난 대선 당시 대부분의 교육복지 공약을 중앙정부 사업, 즉 국고지원 사업으로 공약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런 해석에 힘이 실린다. 실제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등 교육 관련 단체 역시 논평을 통해 비슷한 입장을 내놨다.

이대로 가면, 상당수 교육청은 교육감 임기 말에 재정 위기를 피하기 어렵다. 보수 진영은 재정 악화의 책임을 '복지'에 돌리는 프레임을 짤 수 있다. 또 재정 위기 상황에선 진보 진영 역시 복지 강화를 주장하기 어려워진다.

유초중등 교육복지 예산 줄이고, 대학 시장화 촉진 예산 늘리고

'진보 교육감 길들이기'라는 해석은, 고등교육 예산을 들여다 볼 때 특히 무게가 실린다. 교육청이 담당하는 유초중등교육 예산은 대폭 줄어든 반면, 고등교육 예산은 올해 8조 6000억 원에서 내년도 10조 5000억 원으로 크게 늘었다. 교육복지와는 반대 방향 사업에 주로 예산이 배정됐다. 사실상 대학 민영화 조치에 가까운 ‘국공립대 법인화’를 촉진하는 비용이 크게 늘었다. ‘국공립대 법인화’를 실현한 대학에 예산 지원을 강화한다는 것. 또 대학구조개혁 지원 예산도 올해 58억 원에서 내년도 155억 원으로 증가했다. 대학구조개혁 역시 인문학, 자연과학 등 기초학문 대신 실용학문을 강화하는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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