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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에서 아프면, 알아서 견뎌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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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군대에서 아프면, 알아서 견뎌라?

[진단] 전직 군의관이 말하는 군대 내 의료

고(故) 노충국 씨를 기억하시나요? 지난 2005년 군 전역 보름 만에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사망한 고인의 사연은, 한국의 군 의료체계가 얼마나 엉망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9년이 지난 지금, 달라진 건 거의 없는 듯 합니다. 최근에도 뇌종양에 걸린 병사가 군 병원에서 엉뚱한 치료만 받다가 중태에 빠진 일이 있었지요.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온갖 유형의 병영 내 부조리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병사들의 근무 여건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모양입니다. 이번에는 일회성 논란으로 그치지 않기를 기대하며, 부실한 군 의료체계에 관한 기사를 준비했습니다. <편집자>
2010년부터 3년 2개월간 군의관으로 복무한 응급의학과 전문의 김모(34) 씨. 군의관 생활을 돌이키면 한숨부터 나온다. 아파도 말 못 하고 병을 키워서 오는 병사들이 있는가 하면, '재수가 없어서' 제대로 치료를 못 받는 병사들도 있다.
종합병원 급인 군 병원에 있었던 김 씨는 왕진을 다니면서 적절한 치료를 못 받는 환자들을 종종 봤다. 이유는 대략 두 가지다. 우선 이등병이나 일병은 아파도 감히 아프다고 말을 못 한다. 다음으로 전방 부대의 경우, 군의관을 만나기 자체가 어렵다.
군대에서 아프면 '찍힐 수 있다'
첫 번째 경우를 보자.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11월 내놓은 '군 의료관리체계에 대한 인권 상황 실태조사' 보고서(이하 군 의료 실태 보고서)를 보면, 병사들은 아프다고 말하면 '찍힐' 수 있다는 점을 꼽았다.
"군대에 갓 들어온 이등병들은 아프다는 얘기를 잘 못 한다. 선임에 따라 다르겠지만, 부조리하거나 성격이 안 좋은 사람은 '네가 뭘 했다고 아프냐, 내가 너 때에는 아파도 그냥 참았다'는 등의 말로 아프면 안 되는 분위기로 몰아간다." (병사1, 군 의료 실태 보고서)
"군기가 강한 부대일수록 심한 것 같다. 아프다면 무시하고, 입원했다가 복귀하면 '꿀 빨고 왔다'고 욕한다. 게다가 해병대같이 규모가 작아서 소문이 빨리 퍼지는 부대는 병사의 입원 경력 같은 것이 잘 드러나기 때문에, 해당 병사를 타부대로 전출시켜줘도 금방 소문이 나서 역시 적응을 못 하게 된다." (병사2, 군 의료 실태 보고서)
아프다고 말했다가는 의도치 않게 '관심 병사'가 될 수도 있음을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특히 전방 부대에서는 자신이 자리를 비우면 선임이나 후임이 전방 근무를 대타로 서야 하므로 미안한 마음에 '알아서' 참는 경우가 많다고 보고서는 지적한다. 어렵게 아프다고 말을 꺼내도 윗선에서 진료를 차단할 가능성도 있다.
"CP병(당번병), 작전병 같은 특수한 보직의 병사들의 경우, 입원시키려고 하면 자대 간부들이 옆에서 꼭 입원해야 하느냐고 묻는다. 그러면 병사들은 고개만 숙이고 있고…. 그런 일이 매일 반복된다." (군의관1, 군 의료 실태 보고서)

▲지난 3월 26일 국회인권포럼과 송영근, 박인숙 새누리당 의원, 백군기 민주당 의원 주최로 열린 군의료체계 정책토론회에서 군 의료 관계자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포(4)스타' 오는 날은 군 병원 문 닫는 날?
군대 내에서 '짬'이 생기더라도, 일반 병사들이 군의관을 만나기는 쉽지 않다. 한국 군대 문화의 특수성이 군의관에게도 적용되는 탓이다.
김 씨는 "대기 환자가 쌓였는데도, 지휘관이 대부분 훈련에 군의관들을 동원한다"고 했다. 사고에 대비한 조치라고는 하지만, 이 때문에 아픈 병사가 의무실을 찾아도 실제로 군의관을 만날 확률은 반반이라고 했다.
훈련에만 자리를 비워야 하면 그나마 그러려니 한다. 군대는 철저한 계급 사회다. '일반 병사'들은 윗선 진료에 밀린다. "재수가 없는" 경우다.
"포스타(대장)가 피부과 질환이 있다, 그러면 피부과 군의관이 차출되는 걸 봤어요. 병원에서 그날 외래 진료를 막아버려요. 그날 왔던 (일반 병사) 100명은 헛걸음한 거죠. 심지어 주변 군의관 중에 OB(퇴역 장군)들이 골프 친다고 하면 불려갈 때가 있어요. 골프 치다 다칠까 봐 군의관보고 가서 지키라고 해요.
게다가 부대마다 군 병원에 외래 진료를 가는 날짜가 정해져 있어요. 이 부대는 매주 화요일, 금요일에 가는 식이에요. 금요일에 왔는데, 4스타가 아프면 (일반 병사는) 다음 주 화요일까지 기다려야 해요. 그 다음 주 화요일에 비나 눈이 많이 내리면 (후송차) 운행을 안 해요. 운이 나쁘게 걸리면 끝까지 기다리는 거예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뼈가 부러지고 쓰러지는 등 눈에 띄는 응급 환자가 아닌 한, '그냥 아픈' 사람들은 뒷순위로 밀린다. 입대 후 뇌종양에 걸렸으나, 1년 가까이 엉뚱한 진료만 받은 육군 22사단 소속 병사의 경우가 대표적인 사례다. (☞관련 기사 : 뇌종양 병사에게 1년 간 엉뚱한 치료, 결국 중태)
1분 진료
병사들에게 의무실을 지키지 않는다는 원망을 듣는 것도 군의관의 몫이다. 군의관에 대한 신뢰도 높지 않다. 군의관이 여기저기 불려 나가는 탓도 있지만, 군대의 종합병원이 항상 환자들로 붐비는 이유도 크다.
여기에는 전문의가 많고 일반의(주치의)가 없는 한국 의료의 특수성이 있다. 군 의료 체계를 보면, 부대 내에는 군의관 한 명을 둔 의무실이 있다. 원칙적으로는 의무실에서 이른바 '문지기' 역할을 해서 병이 심한 환자는 종합병원 급인 군단 병원에 보내야 한다.
현실은 그렇지 않을 때가 많다. 예를 들어 의무실이나 의무대에서 안과 의사가 허리 디스크를 앓는 환자를 만난다. '멘붕'에 빠진 안과 군의관은 환자를 종합병원 급으로 올려 보낸다. 경증 환자들을 일차 의료가 거르지 못하니, 종합병원으로 환자들이 몰린다. 전방병원, 후방병원은 환자들로 미어터진다. 1분 진료가 이뤄진다.
"군단병원이 전방에 6개 있어요. (군인) 4만~5만 명이 그 병원 하나만 보고 사는 거예요. CT나 MRI를 찍게 해달라고 해요. 하루에 30~40건씩 아침 7시부터 저녁 10시까지 계속 찍어요. 주말에도 찍고. 그렇게 찍어도 대기 환자가 생겨요."
부자 병사 vs. 가난한 병사
민간 병원의 '과잉 진료'가 군의관들의 '적정 진료'보다 신뢰를 받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디스크인지 아닌지 애매할 때, 군의관은 디스크가 아니라고 한다고 하자. 민간 병원에 가면 '과잉 진단'을 할 확률이 높다. 예후를 지켜봐도 될 질환에 대해 수술 처방을 내린다. 병사들은 군의관에게 항의한다.
이 대목에서 의사로서 그가 마음 아픈 것은 한국 사회가 만든 또 다른 '보이지 않는 차별'이다. 같은 군대 안일지라도 돈 있는 병사들은 민간 병원으로 가고, 가난한 병사들은 군 진료를 받는다고 했다.
"전방에는 민간병원 자체가 없고, 군대 밖에 나가면 자기 치료비 부담이 생기잖아요. 이때부터 계층 차이가 나요. 집에 부담 주기 싫은 병사들은 군대 밖으로 안 나가요. 아파도 참고 있는데, 실비보험(실손형 민간보험) 들고 집이 좀 사는 병사들은 밖으로 나가요. 상대적 박탈감이 생기죠."
그는 수술이 필요할 정도로 중한 환자일수록 확실히 계층 차이가 난다고 했다. 종합병원 격인 군 병원을 찾는 환자 가운데 실비 보험을 든 환자는 60% 정도인데, 그보다 상급병원 격인 국군수도병원에 올라가면 40%로 떨어진다고 했다. 실비보험을 든 병사들은 이미 병가를 내고 민간 병원에 나가고 없는 탓이다.
"인권위 군대 내 의료권 침해 진정 16.8%…2위"
군대 내 환자 관리가 엉망이라는 지적은 많다. 군 의료 실태 보고서를 보면, 일반 병사의 36%, 입원 병사의 20.7%, 의료인의 21.3%, 간부의 11.8%, 의무병의 10.5%가 군 의료에 대해 '불만족한다'고 응답했다.
극단적으로는 부절적한 조치로 병사가 장애를 얻거나, '꾀병'으로 치부돼 욕설을 들은 병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례도 있다. 이런 식으로 2001년부터 2012년까지 '군대 내 건강권, 의료권 침해'로 진정을 넣은 경우는 180건으로 군대 관련 전체 진정 건수의 16.8%다. 군대 내 폭행, 가혹 행위 진정에 이어 2위다.
국가인권위원회는 군 의료 실태 보고서를 통해 "군대 내 의사 인력을 현재보다 두 배 이상 늘려야 한다"며 "장기 군의관 혹은 민간 의사의 고용을 적극적으로 확대하고, 군 의료 전달 체계를 재정비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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