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계, 일차 타깃은 홍준표?
포문은 차명진 대변인이 열었다. 그는 7일 대변인 직을 사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고 "지도부가 무릎을 꿇었다"며 지도부 책임론을 공식 제기했다. 친이계 의원 모임인 '함께 내일로' 대표 심재철 의원은 "차 대변인의 결정은 돌출행동이 아니다"고 집단의사가 녹아있음을 시사했다. '함께 내일로'는 57명이 소속된 당내 최대 모임이다.
심 의원은 '퇴진론을 제기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내 입으로는 얘기할 수 없지만 편하도록 생각하라"고 사실상 이를 인정했다.
▲ 홍준표 원내대표와 민주당 최인기 의원 ⓒ뉴시스 |
'함께 내일로' 명의의 성명도 발표됐다. 이들은 "결과적으로 불법 폭력에 동조한 지도부의 자성과 대국민 사과를 촉구한다"며 "금주 토요일(10일)까지 국회의원, 원외당협위원장 연석회의 개최를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난장판 국회의 이번 교섭단체 협의안은 민의의 전당을 파행으로 몰고 간 불법과의 야합이고 경제와 민생을 벼랑 끝으로 내몬 떼법에 대한 굴복"이라고 성토했다.
이들은 "이대로 물러서지 않겠다"며 "민생 안정과 경제 살리기를 위한 한나라당의 개혁의지는 이제부터 출발이다. 필수 개혁법안의 조속한 처리를 위해 비상한 각오로 뛰겠다"고 말했다. 쟁점법안 '밀어붙이기'에 팔을 걷어붙이고 '돌격대' 역할을 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심 의원은 또 의총에서 반대 의사를 피력하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협상안을 추인해달라고 하는데 때려죽여도 못하겠다고 할 수 있겠나"면서도 "의원총회 때문에 느닷없이 8시 반에 전화해 9시에 모이라고 하고, 참석 못해도 '통과된거다' 이러면 '거시기'하다"고 원내지도부를 비난했다. 의총을 통한 협상 추인 과정에도 문제가 많았다는 불만이다.
집단 반발 거세질 듯
심 의원은 요구대로 10일 국회의원-원외당협위원장 연석회의가 개최될 경우 "우리 의견을 피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당초 14일로 예정돼 있던 연석회의를 앞당겨 지도부 퇴진론을 공식화하고 쟁점법안 재발진을 조속히 추진해야 한다는 것.
협상 패배에 따른 좌절감과 지도부에 대한 불만은 '함께 내일로' 뿐만이 아니다. 친이 성향이거나 친이 색이 짙은 한나라당내 7개 의원 모임 대표들은 이날 비공개 연석회의를 갖기도 했다. 이들 역시 지도부 책임론에 대해 공감한 것으로 알려졌다.
심 의원은 "다른 모임 대표들과 (지도부 사퇴론과 관련해) 논의했다"며 "다만 각 모임 구성원들의 의견을 취합하기 위해 일단 '함께 내일로'만 성명을 발표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원내지도부 자성론엔 대부분 공감했다"고 밝혔다.
이 연석회의에는 '함께 내일로', 위기관리포럼, 국민통합포럼, 현장경제연구회, 여성의원모임, 비례대표모임, 이공계모임이 함께했고, 심재철, 진수희, 권경석, 공성진, 김금래, 원희목, 최병국 의원 등이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각종 모임에 관여하는 의원 규모와 관련해 심재철 의원은 "교집합을 빼고 150명을 넘을 것"이라고 했다.
전여옥 "한나라당은 죽었다"
"본회의장 점거 해제 없인 대화에 응할 수 없다"며 강경파를 대표하는 공성진 최고위원도 이날 <불교방송> '김재원의 아침저널'에 출연해 "결과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공 최고위원은 "우리가 왜 그렇게 강력히 연내 처리를 주장했는지, 혹은 파행 상태까지 가는 것을 방치한 채 대국민 여론전을 했는지 무색할 정도"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합의 처리는 만장 일치로 하자는 얘기인데, 지금 민주당과 민노당의 모습을 보면 다수결의 원리를 적용시킬 수 있겠느냐"며 "그런 점에서 매우 어려운 합의를 한 것"이라고 협상 결과에 대한 불만을 드러냈다.
개별 의원들도 노골적인 불만을 표하기 시작했다. 전여옥 의원은 이날 오후 홈페이지에 올린 '한나라당 묘비명'이라는 글에서 "한나라당은 이번에 참패했다"며 "172석의 정당 한나라당은 죽었다"고 특유의 독설을 퍼부었다.
전 의원은 "한나라당은 전략이 없었다. 속수무책이 아니라 무수무책이었다"며 "우물쭈물, 좌고우면, 왔다리 갔다리 하다가 처음부터 끝까지 민주당에 질질 끌려다니다가 '조종'을 울린 것"이라고 사실상 지도부의 전략적 패착을 비판했다.
청와대 표정도 어둡다. 이동관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국회 정상화와 관련해 "절반의 정상화"라며 "아직은 좀 더 갈 길이 남아있다. 42.195㎞를 돌아야 마라톤을 다 뛰었다고 하지 중간만 돌고 다 뛰었다고 하지는 않는다"고 분발을 촉구했다.
이 대변인은 '갈 길이라는 것이 설 전 처리를 의미하느냐'는 질문에 "시점을 갖고 생각하지 말라"면서 "민생이나 일자리 창출 등 경제살리기와 직결된 중요한 법안들이 무슨 악법이니 하는 식으로 이상한 '네이밍'(명칭)이 붙여져 처리가 안됐지 않느냐"고 했다.
홍준표 "진퇴는 내가 결정"
입법 전쟁의 휴지기에 당 내홍에 휘말려버린 홍준표 원내대표는 다시 사면초가에 몰린 셈이다. 그러나 홍 원내대표는 이날 "진퇴 문제는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고 사퇴론에 부정적 입장을 밝혔다.
그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최고위원회에서 추인하고 의원총회에서 만장일치로 박수친 사안에 대해 이제와 엉뚱한 소리를 하는 것은 한나라당 의원이 아니다"면서 이같이 밝혔다.
홍 원내대표는 "민주당에서는 대놓고 지도부 사퇴론을 이야기하는데 한나라당에서도 그런 말이 나올 수 있다"면서 "그러나 이것저것 다 신경쓰고 어떻게 172명을 끌고 가느냐"고 일축하기도 했다.
당 지도부도 후폭풍 진화에 안간힘을 쏟았다. 박희태 대표는 차명진 대변인의 사의 표명에 대해 "대변인이 책임 질 일이 아니다"며 곧바로 반려 조치했다. 당 내에선 노쇠한 이미지와 원외 인사로서의 한계를 노정한 박희태 대표의 리더십에도 불만이 적지 않아 후폭풍은 당분간 확산될 것으로 전망된다.
여기에 '1차 입법전쟁' 후반부에 박근혜 전 대표가 '여당 책임론'을 거론한 것을 계기로 친이-친박 사이의 갈등도 폭발 직전의 상황. 공성진 최고위원은 "결과적으로 야당 손을 들어준 꼴"이라고 박 전 대표를 공개 비판했다.
이처럼 지도부 책임론을 고리로 공개적인 집단행동에 착수한 친이계 강경파들의 기세가 간단치 않고, 박근혜계에 대한 불만 또한 위험수위를 넘은 탓에 한나라당의 내홍이 심각한 양상으로 번질 가능성이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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