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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 실종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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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외교 실종사건

[창비주간논평] 박제가 되어가는 '영애외교'

2014년 7월은 '동아시아의 역사를 바꾼 한달'로 기록될 것 같다. 7월 1일 미국의 지지를 등에 업은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각의 결정을 강행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되돌렸다. 7월 3일 시 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관례를 깨고 북한에 앞서 한국을 방문한 날, 아베 총리는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 일부를 해제한다고 발표했다. 북한과 일본은 아베 총리의 방북과 북일 정상회담을 거쳐 국교 정상화 회담으로 나아갈 것이란 전망이 무성하다.

9~10일 베이징에서 열린 미중 전략경제대화에서는 두 강대국의 갈등이 도드라졌다. 시진핑 주석은 중국과 미국이 갈등을 통제하지 못하면 재앙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고,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중국이) 역내 조화를 해치면서 신질서를 만들려는 시도는 받아들일 수 없다"라고 비판했다. 21~23일 한·미·일 3국은 제주 남방 해상에서 합동군사훈련을 실시한다. 수색구조 훈련이지만 미 해군 7함대 소속 항공모함 조지 워싱턴 호와 미사일 방어의 핵심인 이지스함 등이 투입된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동아시아 정세, 어떻게 볼 것인가

어제의 숙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랜 동맹 사이에도 불안과 의심이 흐른다. 미국의 쇠퇴와 중국의 급속한 부상이 일으킨 쓰나미는 예상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동아시아 안보지형을 바꾸고 있다. 동아시아가 강대국들의 패권경쟁에 휩쓸리는 19세기말 제국주의적 질서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경고음들이 곳곳에서 들린다.

미국 오바마 행정부는 '아시아 회귀' 전략으로 중국이 미국의 패권을 위협하는 사태를 차단하려 한다. 미국은 한국, 일본, 오스트레일리아, 인도, 필리핀, 베트남 등을 끌어들이고 있는데, 특히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중국 견제의 가장 유용한 도구로 여긴다. 일본이 직접 공격받지 않아도 무력을 사용할 수 있는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된 데 대해 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은 "대담하고 역사적이며 획기적인 결단"이라고 환영했다. 미국은 일본의 역사 우경화가 한·미·일 공조를 깨는 것은 부담스럽지만, 일본의 군사적 우경화는 필요하다고 여긴다.

일본 아베 정권과 우익세력도 미국의 이런 분위기를 활용해 숙원인 재무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국이 장기적으로 일본을 지켜줄지에 불안감을 느끼는 일본 우익세력은 현재 미국의 지원을 활용해 중국의 위협에 대응할 강력한 군사력을 갖춰야 한다고 판단한다.

아시아 회귀 대 신형대국관계: 미중관계의 향방

시진핑 주석은 "태평양은 두개의 강대국을 수용할 만큼 넓다"라며 미국이 태평양의 서쪽편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중국의 주도권을 인정하라고 요구한다. 5월 상하이에서 열린 '아시아 교류 및 신뢰구축회의(CICA)'에서 시 주석은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이 지키자'고 선언했다. 중국은 자국 주도의 '새로운 아시아 질서'에 한국을 끌어들이거나, 적어도 한국을 한·미·일 군사협력에서 떼어내 미국의 아시아 전략을 흔들려 한다. '역사'는 중국의 주요한 카드다. 아시아를 벗어나 서구 제국주의와 동등한 나라가 되고자 아시아 곳곳을 침략·점령했던 일본의 역사적 과오를 비판하며 일본을 견제하려 한다. 중국의 위협을 막는 일이 시급하니 일본의 역사문제는 너무 신경쓰지 말자는 미국의 태도와는 대척점에 서 있다.

한동안 미중관계가 급격한 갈등으로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양국이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얽혀 있는 가운데 중국은 미국이 구축해놓은 현재의 세계질서에서 많은 이익을 얻어왔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미국 기업들도 중국에서 큰 이익을 얻는다. 하지만 미국 내에서 중국의 부상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아시아 회귀' 정책에선 중국을 견제하려는 군사적 요소가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중국의 꿈'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 '신형대국관계'를 내건 시 진핑의 외교는 중국 중심의 새로운 아시아 질서를 구축하려 하면서, 한편으로는 외부의 위협을 강조함으로써 공산당과 시 진핑 지도체제에 대한 국내 지지를 강화하려는 포석도 엿보인다.

박제된 외교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동아시아의 운명을 둘러싼 이처럼 치열한 외교전에서 한국외교는 실종 상태다. 한국정부는 일본의 역사 우경화는 비판하면서도 군사적 우경화에는 힘을 보태주는 분열증적 증상을 보이고 있다. 아베 정권이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결정한 날, 한국은 하와이에서 열린 한·미·일 합참의장 회의에서 일본 군부와 안보 문제를 논의했다. 7월 21~23일에는 한·미·일 군사훈련에도 참여한다. 말로는 아베 정권의 집단적 자위권 추진을 비판하지만, 행동으로는 일본과의 군사협력을 계속 강화해가고 있다.

여기에는 '미국이 없으면 살 수 없다'는 태도가 투영돼 있다. 정부는 미국에 전시작전통제권을 계속 가지고 한국군을 지휘해달라고 매달리다시피 한 데 이어 미국의 요구에 따라 한‧미‧일 군사협력을 진전시키고 있다. 이런 흐름들은 정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실상 중국 견제용 미사일방어(MD) 참여의 길로 향하는 것이라는 우려를 부르고 있다.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에 대해서도 '한국의 요청과 허가 없이는 일본 자위대가 한반도에 들어올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하지만, 전시작전권을 가진 미국이 요청하면 자위대가 들어오는 것은 막을 방법이 없다. 시진핑이 북한보다 먼저 한국을 방문했다며 중국의 북한 때리기라고 환호하던 보수세력은 이젠 한국이 미국을 버리고 중국에 속아넘어가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며, 한미동맹에 불똥이 튀지 않을까 바짝 긴장하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내내 악화된 남북관계는 한국외교의 핵심적인 딜레마다. 북핵문제에 대해선 중국이 북한을 압박해 핵을 포기하게 하라는 주문만 외우며 중국과 미국에 매달리고 있을 뿐, 스스로 남북관계를 풀어내고 북핵 협상을 진전시키려는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2000년 남북정상회담 이후 한국이 남북교류를 확대하고 6자회담의 중재자로 활약하면서 외교의 폭을 넓히고 동북아 정세의 균형자가 되고자 했던 흔적은 지워져버렸다. 최근 꽉 막힌 남북관계에서 남북 민간교류 승인, 아시안게임에 북한 선수단과 응원단 파견 등 조그만 돌파구들이 나타나고 있는 점은 다행스럽다. 적어도 인도적 지원이나 민간교류는 정세의 변화와 관계없이 꾸준히 이어지도록 하면서 경제교류를 활성화하고 북핵 외교가 다시 가동될 수 있도록 한국이 역할을 하는 등 종합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한국이 이런 노력을 되살려 장기적으로 미국과 중국이 함께 참여하는 동아시아 안보대화의 틀을 만들어가려 한다면 '중국편이냐, 미국편이냐' 하는 덫에 빠지지 않고 위기의 시대에 기회를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박근혜 정부에서는 급변하는 동아시아 정세의 흐름을 읽고 미래를 만들어나가려는 외교가 보이지 않는다. 대통령의 지지층은 박대통령이 해외순방에서 우아한 패션을 선보이고 그 나라의 언어로 연설을 하는 데 환호했다. 그러나 거기서 멈춘다면 대통령 딸의 '영애외교'일 뿐 대통령의 외교는 아니다. 박 대통령의 국내정치처럼, 그의 외교도 1970년대에 박제돼 있는 것 같아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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