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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의 반란…김무성, 서청원 꺾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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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박'의 반란…김무성, 서청원 꺾었다

친박, 충격적 패배…홍문종도 지도부 입성 실패

새누리당 신임 대표에 '비주류'의 지지를 받은 김무성 후보가 압도적 표 차이로 당선됐다. 김 후보는 14일 열린 새누리당 전당대회에서 '친박 좌장' 서청원 후보를 누르고 당 대표직을 거머쥐었다. 또 다른 친박 홍문종 후보는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김 신임 대표는 현장 투표를 포함한 당원, 대의원 투표 70%, 여론조사 30%를 종합한 결과 5만2706표를 얻어 대표 최고위원에 당선됐다. 2위 서청원 후보는 3만8293표에 그쳤다. 1만4000표 이상의 압도적 차이다.

이어 친이 김태호 후보가 2만5330표로 3위, 이인제 후보가 2만782표로 4위를 차지했고, 친박 핵심인 홍문종 후보는 1만6629표로 5위에 그쳤다. 5위를 한 홍문종 후보는 여성 몫 최고위원 관련 당헌 당규에 따라 김을동 후보에게 자리를 내줘야 했다.

차기 지도부는 기존의 친박 색깔을 상당히 뺀 모습이다. 3위를 한 김태호 후보는 이명박 정부에서 총리 후보까지 올라갔던 대표적인 구(舊) 친이계 출신이다. 이인제 후보 역시 충청권을 기반으로 하며 '친박'과는 거리가 멀다.

'박정희 마케팅'까지 펼쳤던 홍문종 의원의 탈락도 '친박'에 대한 당원들의 감정이 예전같지 않다는 방증으로 읽힌다.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이례적으로 전당대회장을 찾았으나 '박심 투표'로 이어지지 못한 것은 당원들의 심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박 대통령마저 체면을 구긴 것이다. 이 때문에 친박 주류 진영은 충격을 받은 모습이다.

김 신임 대표 캠프의 한 인사는 "예상했던 결과"라며 "결국 박근혜 대통령이 현장에 온 것도 표심에는 크게 작용하지 못한 것 같다. 새누리당의 변화를 열망하는 당원들의 뜻"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김 신임 대표 캠프 관계자는 "이번 표심은 세월호 참사 여파 인한 당원들의 위기감, 최근 일련의 인사 파동에 대한 불만이 복합적으로 표출된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신임 대표는 먼저 대대적인 '친박 물갈이'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특히 핵심 친박들이 당직에서 배제될 가능성이 높다. 그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이제 대표가 되면 그동안 소외된 사람들을 전면에 등장시킬 것"이라며 "친박 핵심들은 이제 좀 쉬어야 한다"고 말했었다. 당청 관계 변화도 예상된다.

관련해 당직 인선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김 신임 대표는 "지금 마음에 둔 사람이 있어도 이 자리에서 말하겠느냐"며 농담으로 대꾸했다. 김 신임 대표는 세월호 특별법 논란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다. 이완구 원내대표와 상의해서 하겠다"고 원론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김무성 신임 대표 ⓒ프레시안(최형락)

6년 전 공천 학살, 이제는 공천권 쥔 당 대표

김무성 신임 새누리당 대표의 집안은 화려하다. 김 신임 대표의 부친은 전남방직을 세운 김용주 전 회장이다. 김 신임 대표는 또 현대그룹 현정은 회장의 외삼촌이고, 김 신임 대표의 형인 김창성 전방 명예회장은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을 지낸 재계 거물이다.

부친인 김 전 회장은 1960년 민주당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지만, 박근혜 대통령의 부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5.16쿠데타로 인해 의원직을 잃었다. 박정희 전 대통령과 김 신임 대표의 부친 사이에는 악연이 존재하는 셈이다.

그때문일까, 김 신임 대표는 민주화운동에 투신했다. 1985년 민주화추진협의회에 몸을 담으며 YS계로 정치에 입문했다. 1987년 통일민주당 13대 대통령 선거대책본부 재정국장을 지냈고, 1987년 통일민주당 총무국장, 당 기획조정실 차장 등 당직을 두루 역임했다.

1990년 3당 합당으로 민주자유당이 출범한 뒤 김 전 대통령을 따라 입당했고, 1996년 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했다. 김 의원은 2007년 이명박-박근혜 대선 경선에서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했지만, 경선에 패한 후 2008년 공천에서 탈락했다. '공천 학살' 논란의 피해자가 된 것이다.

이후 그는 공천 탈락에 반발, '친박 무소속 연대'를 만들어 자신을 포함, 무소속 의원들을 대거 국회에 진출시켰다. 당시 김 신임 대표는 명실상부 '친박계 좌장'으로 불렸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 시절 '세종시 파동'을 거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세종시 원안 고수안을 비판, 박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라서게 된다.

김 신임 대표는 당시 친이계의 지지로 여당의 원내대표를 역임한 후 '홀로서기'에 성공했다. 2012년 총선 불출마 후 백의종군했고, 2012년 대선 때는 선대위 본부장을 맡아 '친이계 분열'을 막고 박근혜 대통령 당선에 기여했다.

김 신임 대표는 재보선을 통해 국회에 재입성했고, '비주류'의 지지를 받아 결국 친박계 유력 후보인 서청원 후보를 제치고 새누리당 신임 대표로 선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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