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과 한나라당 강경파 틈바구니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한나라당 홍준표 원내대표가 "이 (법안) 전쟁을 마무리 짓고 원내지도부가 책임을 질 것이 있으면 지겠다"고 사실상 배수진을 쳤다. 하지만 당내 반응은 싸늘하기 그지 없다.
홍 원내대표는 2일 저녁 의원총회에서 "마음 같아서는 원내지도부가 이때쯤 책임을 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이 문제(법안처리) 만큼은 마무리하고 나가는 게 옳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 전투가 시작됐는데 중간에 말에서 내리는 것은 참으로 비겁하다는 생각"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최고위원회에 대해서도 "경제 살리기 부분은 절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도 명확히 했다"며 자신의 협상안이 사실상 불신임됐음을 시인했다. 민주당과 타결은 커녕 당내에서도 반발에 부딛힌 것.
홍 원내대표가 "상당부분 의견 접근이 있다"고 자신한 가합의안은 '한미 FTA 비준 동의안과 출자총액제한제는 2월 중 협의 처리', '미디어관련 법과 금산분리 완화 관련 법은 시한을 정하지 않고 '합의'처리'하는 방안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는 "물리적 충돌을 없애려는 게 내 생각이지만 정말로 불가피하고 판단될때는 그렇게 하겠다"고 결기를 내비치기도 했다.
민주당도 "그런 식으로 가합의안을 작성한 적 없다. 여러 논의 내용 중 하나일 뿐"이라고 일축해 홍 원내대표의 입지를 더욱 줄여놨다.
친이 진영의 한 목소리 "이대로 안 된다"
홍 원내대표에 대해 쌓여오던 불만은 지난 31일 의원총회장에서 부터 폭발하기 시작했다. 당시 친이직계 의원들은 아예 "왜 애당초 협상을 시작했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같은 기류는 2일 현재 더 확산되고 있다. 추경예산 처리 불발 후에도 '원내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했었던 친이직계 소장파 김용태 의원은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합의 처리라는 것도 결국 시간을 미루자는 것"이라며 "불법폭력행위 문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법안 처리 관련 협상이 문제가 아니"라며 "현재 국법질서가 떠내려가는 것이 문제다.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데 이 상태에서 합의하면 민주당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이라며 현 상황과 대화 자체에 불만을 표시했다.
친이진영에서는 홍 원내대표에 대해 긍정적인 사람을 찾기 힘들 정도다. 한 수도권 초선 의원도 "그렇게 어정쩡하게 해서는 진도 나가기 힘들 것 같다. 나는 (가합의안에) 부정적인 입장"이라고 말했다.
친이 직계인 또 다른 수도권 초선 의원도 "미디어법, 한미 FTA 비준동의안, 금산분리 완화, 출자총액제한제 폐지 등 모든 것을 '2월 중 협의 처리'한다 정도면 동의할 수 있지만 지금의 가합의안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고 말했다. '협의'가 아닌 '합의'는 못 받아들인 다는 것.
<프레시안>이 접촉한 친이 진영 의원들은 대체로 같은 의견을 피력했다. 심지어 개혁파로 분류되는 '민본21'소속의 의원도 "미디어 법안의 경우 처리 시기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합의처리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만약 가합의안이 확정되면) 야당이 불법 점거로 따낸 결실이 된다. 민주주의의 원칙이 지켜지지 않는 것이다"라며 불만을 표시했다.
'도쿠가와 작전'? 기다려주지 않는 것은 민주당이 아니라 한나라당
그러나 강경파들도 뾰족한 대안을 내지는 못하고 있다. 이로 인해 본회의장을 점거하고 있는 민주당의 체력과 의지가 소진할 때까지 '시간 싸움'을 해보자는 기류가 강해졌다.
친박 의원들도 물리적 충돌에는 거부감을 보였다. 박근혜 전 대표부터 이날 "대화로 해결하면 좋겠다"고 말했고 수도권의 친박 의원도 "여야 합의 정신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협상안이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영남권의 또다른 친박 의원도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물리적 충돌을 감수할 순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홍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여야 원내대표 협상 결렬 뒤 기자 간담회에서 "새가 울지 않을 때 오다 (노부나가)는 죽이고, 도요토미는 울게 하고, 도쿠가와는 기다린다고 했다"며 "어차피 예산안은 처리됐다, 이제는 (협상에) 안 매달리겠다, 예산 부수법안들은 1∼2개월 처리가 늦어지게 됐지만 이에야스식으로 (본회의장이)빌때까지 기다리다 들어가겠다"고 장기전 태세로 전환할 뜻을 밝혔다.
하지만 홍 원내대표에게 민주당이라는 새가 울기를 기다릴 여유는 없어 보인다. 한나라당 내 친이 강경파가 맹금류처럼 사납게 울고 있기 때문. 이날 저녁 의총에서 홍 원내대표는 "오늘은 하고 싶은 말씀을 다 해줄 것을 부탁한다"고 말했고 '자유토론'은 두 시간을 훌쩍 넘기고 있다.
"문국현 핑계, 비겁하다"
한편 이날 오후 원내대표 회담 직후 '중단'을 선언한 홍 원내대표는 의총장에서 "여태 쭉 죽 해오던 협상이 어느정도 성사되가고 있는데 중간에 원내대표가 바뀌어서 들어오면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한다"면서 "그래서 종전에 있는 그 분으로 이번 임시국회까지만이라도 그렇게 하는 것이 좋겠다는 제안을 하고 나왔다"고 전했다.
선진과창조모임이 새로 선임한 원내대표인 문국현 대표가 물러가고 권선택 전 대표를 데리고 오라는 것.
하지만 홍 원내대표가 원내대표 회담을 무산시킨 직후 복수의 한나라당 의원마저도 <프레시안>과 통화에서 "말도 안 되는 소리다. 협상안도 못 받아들이긴 하지만 협상이 되고 있긴 뭐가 되고 있냐"면서 "저쪽이 누구를 대표로 뽑건 말건 그 쪽 자유이지 자기가 무슨 상관이냐"고 어이없어 했다.
한 의원은 "그래도 홍 원내대표가 남자다운 사람인줄 알았는데 오늘 모습을 보니까 참 실망스럽다. 어떻게 저런 핑계를 대냐"고 말하기도 했다. 이래저래 입법 전쟁이 길어지면서 '홍준표 수난시대'도 길어지는 형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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