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구렁이 담 넘어가듯 그런 식으로 말하지 말라."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대정부 질문 이틀째인 10일 한덕수 국무총리를 향해 날린 일성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한 반대론을 특유의 화법으로 비껴가는 한 총리의 답변태도를 지적한 것.
논점 비껴가기
한 총리는 이날 대정부질문 내내 한미 FTA 협상에 대한 비판론에 입각한 지적에 대해서는 적당히 에둘러가거나 논점을 흐리는 답변방식을 취했다.
한 총리는 "한미 FTA 협상은 진행 중인 것이냐 아니면 끝난 것이냐"는 심상정 의원의 질문에 "법적으로는 6월 말 체결을 함으로써 끝나는 것이지만 내용에 대해서는 타결을 한 것"이라며 "문서화 과정에서의 자구수정 문제, 번역을 검증하는 문제만 남았다"고 답했다. 그러나 미국 쪽에서 노동 분과 등에서 추가협상을 요구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내막과 우리의 대응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는 부족해 보였다.
"한미 FTA 협정문을 왜 찬성하는 의원에게만 보여줬느냐"는 심 의원의 질문에 한 총리는 "그런 일은 하지 않는다. 정부를 모욕하는 일"이라고 강한 어조로 반박하면서 "만일 협정문을 봐야 한다면 다음 주 중에라도 워딩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국회 한미 FTA 특위에 서류를 비치하겠다"고 말했다.
'내달 공개' 입장과 비교해선 일보 진전된 것이었지만, 협상진행 과정으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유지되고 있는 정부의 비밀주의에 대한 해명은 아니었다.
이 대목에서 한 총리는 "오히려 너무 열심히 보여드리다가 언론이 캐치해서 보도가 되기도 했다"고 은연 중 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문서유출 파동'을 은근슬쩍 언론 책임으로 떠넘기기도 했다. 문건유출 파동 당시 한 총리를 비롯한 정부 측은 심 의원을 유출 범인으로 의심하기도 했었다.
한 총리는 또한 개성공단 원산지 인정 문제와 관련해선 "예를 들어 잔에 물이 반이 차 있다면 '반밖에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고, '반이나 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런 차이"라는 수사로 비껴갔다.
심 의원이 "역외가공을 애초에는 통합협정문의 협의대상으로 기재했으나 부속서에 넣는 것으로 후퇴했고, 북한에서 원천적으로 충족하기 어려운 조건을 혹으로 다는 등 미국에 완전히 항복한 것 아니냐"고 추궁하자 한 총리는 "역외 가공지역이라는 개념을 창설해서 그 생산품은 무관세로 지정한다는 체제는 확정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역시 외형상으로는 질문에 대한 반박이었지만 왜 개성공단 문제가 별도의 부속서에 포함됐는지에 대한 명쾌한 답으로 보긴 어려웠다.
한 총리는 또한 "정부와 의회 전문가, 각 분야별 대표,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국민검증위원회를 구성해 협상내용을 평가하자"는 심 의원의 제안은 '효율성'을 이유로 일축했다.
한 총리는 "그런 식의 검증위는 효율성이 떨어진다. 반대하는 분들은 반대 시각에서 판단하시고, 저희는 국민께 빨리 판단자료를 드리는 게 더 시급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협상이 타결된 만큼 후속 일정에서 한미 FTA에 대한 비판론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있음을 드러낸 대목이다.
동문서답
한 총리의 이러한 답변태도는 사실 전날 정치 분야 대정부 질문에서부터 나타났다.
한 총리는 한미 FTA로 인한 양극화 우려에 대한 대책을 묻는 열린우리당 김성곤 의원과 통합신당 추진모임의 강봉균 의원의 질문에 "양극화 문제는 없을 것"이라면서 "양극화 문제는 오히려 미국이 걱정할 문제"라는 엉뚱한 반응을 보였다.
노동집약적 산업 중심의 국가와는 달리 미국은 첨단산업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국내의 제조업이 타격을 입을 일은 없을 것이라는 항변이었지만, 한미 FTA로 인한 경제적 후폭풍을 염려하는 국내의 여론을 관리해야 하는 총리로서 적절한 답변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왔다.
또한 "불리한 협상이었다"는 비판에 대해선 "시한에 쫓긴 것은 미국이었다"는 대답이 나왔다. TPA(무역촉진권한)의 시한이야 미국 의회가 설정한 것이니 미국측이 그 시한에 쫓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그렇게 시간 압박을 받고 있는 미국의 협상 시한을 우리 측이 고스란히 수용함으로써 그 잇점을 포기한 것 아니냐는 질문의 취지에 비추어서는 완연한 동문서답이었다.
이같은 한 총리의 화법과 관련해 민주노동당 정호진 부대변인은 <프레시안>과의 통화에서 "한덕수 총리가 이번 대정부 질문에서 보여 준 동문서답과 본말전도 식의 답변은 결국 좌충우돌하는 '한미 FTA 내각'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면서 "이는 국내의 비판여론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밀어 붙이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의 독불장군식 국정운영 태도와 닮은 꼴"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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