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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월세 시장은 '원시 상태'…투명성이 관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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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한국 전월세 시장은 '원시 상태'…투명성이 관건"

[박근혜 전월세 대책 ②] 김수현 세종대 교수 인터뷰

박근혜 정부가 ‘2.26 주택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내놓은 지 한 달 남짓 지났다. 여전히 관심은 뜨겁다. 전세에서 월세로 넘어가는, 주택시장의 큰 흐름에 조응하는 정책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지금까지 한국 부동산 정책은 전세 중심이었다. 예컨대 임대차보호법 역시 전세보증금 반환에 중점을 뒀다. 그러나 집값 상승에 대한 기대가 꺾이면서, 전세 공급은 꾸준히 줄어드는 추세다. 특히 경제적 약자에 가까울수록 이런 변화를 더 뚜렷하게 느낀다. 서민 임대차 시장에선 월세가 더 흔하다. 이번 방안은 이런 변화를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러나 내용 면에선 논란거리가 많다. 시민단체와 야당은 오랫동안 ‘임대차 등록제’, ‘임대료 상한제’ 등을 주장해 왔다. 임대차 시장의 투명성 강화, 약자 보호 등을 각각 겨냥한 주장이다. 그러나 이번 방안은 이런 주장에 대한 우회로에 가깝다. 예컨대 투명성 강화에 대해선, ‘임대차 등록제’ 대신 간접적인 방법을 택했다. 월세 세액공제를 확대하고, 임대 수익에 대한 과세 방식을 바꿔서 투명성을 확보하겠다는 식이다. 그러나 후폭풍이 거셌다. 집주인들은 세금 및 건강보험료 부담을 우려한다. 정부에겐 큰 부담이다.

또 재건축 관련 규제가 대폭 완화된 점도 논란거리다. 선거를 앞두고 서울 강남 지역 표심을 잡기 위한 장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김수현 세종대학교 도시부동산대학원 교수를 만나 ‘주택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사회정책비서관, 환경부 차관 등을 지냈다. 도시 빈민, 철거민과 부대끼며 젊은 날을 보냈던 그는, 이론과 현장을 두루 경험한 주택 및 도시정책 전문가로 꼽힌다. 3월 20일, 세종대 연구실에서 그와 나눈 이야기를 간추렸다. <편집자>

"임대차 시장 투명화 없는 임대료 보조제도의 한계"

프레시안 : 정부가 2월 26일 ‘주택 임대차시장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월세 세입자에게 세제 혜택을 주고, 집 주인의 임대 소득에 대한 과세 방식을 변경하되, 준공공 임대 주택으로 전환할 때 집 주인에게도 세제 혜택을 준다는 내용이다. 대책 발표 직후 집 주인 과세 방식이 논란이 되면서 정부는 3월 5일 보완 대책을 내놓기도 했다. 연 소득 2000만 원 이하 2주택 보유자에게 2년 동안 과세를 유예하는 내용이다. 정부 전월세 대책에 대한 총평을 듣고 싶다.

김수현 : 정부의 의도는 민간 임대 공급을 늘려서 임대 시장을 안정화시키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임대인과 임차인 모두에게 혜택을 주려고 했는데, 의도가 잘못 알려졌다며 불만스러워한다. 우선 임대인에게는 공급을 늘리려는 유인 동기를 주려고 했다. 기존 임차인 대책은 전세 보증금 융자와 월세 소득 공제 정도였다. 그런데 이번 대책에선 월세 소득 공제를 세액 공제 형식으로 바꿔 혜택을 늘리겠다고 했다. 세액 공제 대상 근로자의 연 소득 기준도 현행 5000만 원에서 7000만 원으로 늘린다고 했다. 이런 정책에 대해 정부가 어떤 정치적 의도를 담았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다만 재건축 규제 완화는 예외다. 이건 명백히 선거를 의식한 방안이라고 본다. (☞관련 기사 : "재건축 활성화, 강남 겨냥한 선거용 정책")

정부는 월세 세액 공제를 확대하고, 임대 소득에 대한 과세 방식을 바꾸면 주택 시장이 우회적 방법으로나마 투명해질 것으로 봤다. 순진한 생각이다. 정부는 ‘전월세 시장 투명화’가 ‘전월세 상한제’의 전 단계로 받아들여지는 것만큼은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우회적으로 ‘월세 세액 공제’ 얘기만 꺼냈다. 그러나 정부 의도와는 달리, 집 주인의 세금 문제가 먼저 터져버렸다.

프레시안 : 연 소득 2000만 원 이하 2주택자에 대한 분리 과세제도 역시 논란이 됐다.

▲ 김수현 세종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수현 :
한국은 임대차 시장에 대해서는 거의 원시 상태에 가까운 정책 인프라를 갖고 있다. 오랫동안 주택이 절대 부족한 상태였다. 그러니까 정부는 임대료를 통제하거나 임대 소득에 세금을 매기는 걸 두려워했다. 공급이 줄어들까봐서다. 그래서 지난 40년 간 민간 임대 시장을 방치한 것이다. 정부는 주택 재고가 충분해져서 임대 시장에 공급이 충분해지고, 수급 불안 요인 때문에 임대료가 오르지 않는 단계가 와야 ‘임대차 시장 선진화’를 진행할 수 있다고 판단해 왔다.

나는 민간 임대 시장을 투명하게 하는 게 주택 정책의 가장 큰 과제라고 주장해 왔다. 1980년대에 전셋값이 오른 건 절대량 자체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전세 가격 상승은 절대 공급이 부족해서 일어난 현상이 아니다. 집값이 안정화되고 있는 시장 구조 변화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정부가 임대차 시장에 대해 ‘선진화’라는 말을 쓴 건 의도하든 안 하든 큰 변화다. 정부가 지금까지의 임대차 시장이 전근대적이었음을 인정한 셈이기 때문이다. 주택 시장이 안정 시기에 접어드는 단계이므로, 정부는 이제 40년 간 미뤘던 과제를 추진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임대 주택 선진화 과제의 중첩성이 있다. 우선 투명화가 안 돼 있다. 누가 얼마에 세를 놓는지 파악이 안 된다. 정부는 임대 소득이 얼마나 생기는지 알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고 소득이 있는 곳에 과세하는 건 엄연한 조세 정의다. 박근혜 대통령이 말한 ‘지하 경제 양성화’이자 ‘비정상의 정상화’이기도 하다. 따라서 과세 대상 안에 들어오면 혜택을 주거나, 안 들어오면 불이익을 주는 방식을 만들 수 있다. 임대 주택으로 등록하면 가옥주와 세입자 모두에게 혜택을 주겠다는 식으로 인센티브(incentive·유인)와 디스인센티브(disincentive·역유인)를 같이 설계해야 한다.

다만 임대료 상한제에 대해서는 생각이 복잡하다. 상한제를 하더라도 투명화가 전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어렵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내년부터 ‘임대료 보조제도’를 도입하려고 보니까, 스텝이 꼬였다. 우리나라는 임대료 보조제도를 임대차 시장 투명화 없이 시행하려는 유일한 나라가 됐다.

정부의 속내는 세입자에게 세제 혜택을 늘리면, 세입자가 신고하므로 임대 주택 시장이 파악되고 연쇄적으로 과세도 된다는 것이다. 집주인이 과세를 피하려고 준공공 임대 주택으로 등록하면 혜택을 준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투명해지지 않겠느냐는 의도였다.

그래서 정부는 세입자 혜택 얘기만 살짝 하려고 했는데, 이 의도가 간파돼 정부가 세금을 더 걷으려고 한다고 보도됐다. 정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고 발뺌했다. 수정 대책을 발표하면서 정부도 혼란에 빠졌다. 우선 생각지도 못했던 집 주인들의 건강보험료 문제가 따라왔다(제대로 파악되지 않던 집 주인들의 소득이 파악되면 건강보험료가 오른다. <편집자>).

게다가 1가구 1주택일 때는 과세가 안 되면서 형평성 문제가 따라왔다. 예를 들어 9억 이하의 다가구 주택을 가진 집 주인은 아무리 세를 많이 놓아도 합법적으로 비과세다. 이에 정부가 “그럼 전세도 과세할게”라고 했다가 또 두드려 맞았다.

"주택 공급 목표량 줄인 박근혜 정부, 이명박 정부와 다르다"

프레시안 : 임대 주택이 투명화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탓에 새로운 문제가 잇따라 불거졌다는 말인가?

김수현 : 그렇다. 이미경 민주당(현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오래 전에 ‘임대차 등록제’를 준비했다. 그런데 민주당이 전월세 상한제에 집착하는 바람에 ‘임대차 등록제’ 등 투명화 정책에 대해서는 무게를 두지 않았다. 민주당이 내놓은 법안은 임차인에게 1회에 한해서 계약 갱신 청구권을 보장하고, 계약이 갱신될 때는 연간 5% 이내에서 전월세 상한을 지키게 하는 내용이 골자다.

나를 포함해 여러 전문가들은 선후가 잘못됐다고 비판했다. 외국에서 상한제를 지키게 하는 원동력은 ‘임대 전용 주택’ 개념이다. 그런데 한국처럼 ‘임대 전용 주택’ 개념이 없으면, 집 주인들이 얼마든지 법망을 피해 임대료를 올려 받을 수 있다. 집 주인이나 아들이 와서 산다고 하고 기존 세입자를 내보내고, 며칠 뒤에 또 다른 세입자를 들여도 막을 방법이 없다. 임대 전용 주택은 임대용으로 등록한 주택을 특별한 이유 없는 한 계속 임대 용도로 쓰도록 하는 것이다. 그래야 상한제도 지켜진다. 상한제는 다음 차원이고, 일단 등록제로 임대차 시장부터 투명화해야 한다.

민주당은 등록제와 상한제를 병행한다고 했지만, 이러한 정책 방향에 별 힘을 안 실었다. 이미경 의원실도 이 법을 준비했다가 자랑을 못한 채, 정부가 대책을 발표해 버려서 스텝이 꼬였다. 이미경 의원 법은 투명화 제도를 연착륙시키자는 것이다. 임대 소득이 일정 이하면 세금이나 사회보험료 부담을 낮추고, 몇 년간 유예한다고 했다. 정부도 ‘선진화’라는 단어를 씀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우회 방식을 쓰려니 우회가 안 됐다.

일각에서는 집 주인의 소득이 있는데 당연히 과세해야지 왜 세금을 깎아주느냐고 반발한다. 하지만 (소득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아서) 지금까지 한 번도 세금을 안 걷다가 갑자기 다 걷자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이 문제를 단계적으로 풀어간다는 사회적 약속을 할 때가 왔다.

프레시안 : 주택시장의 수급 불균형은 더 이상 문제가 아니라는 게 현 정부의 인식이라고 했다. 이명박 정부 때와는 다른 대목이다.

▲ 김수현 세종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김수현 :
1988년 이후 한국은 매년 주택 55만 호를 공급해왔다. 공급 최우선 정책이었다. 정부는 땅만 싸게 제공하고 직접 짓지는 않았다. 주택 건설에 재벌기업이 참여하는 나라는 세계적으로도 우리나라 말고 거의 없다. 그만큼 대량 공급했다.

그런데 이번 대책에서는 정부 스스로 공급 목표량을 20% 줄였다. 박근혜 정부는 주택 공급계획을 30만 호 정도로 줄였다. 정부가 주택 공급 목표량을 줄였다는 건, 주택 시장의 규모가 20%는 줄어들었음을 의미한다. 20% 줄어든 것에 맞는 정책, 즉 연착륙 정책을 펴야 한다.

이명박 정부는 주택 시장을 키운다는 미련을 못 버렸다. DTI와 같은 규제만 풀리면 경기가 부활한다는 식의 환상을 가졌었다. 건설업계도 마찬가지다. 구입 수요가 살아나면 전셋값 상승이 진정된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한국은 집값이 오르다가 안정되면 전셋값이 오르는 순환 과정을 거쳐 왔다. 전셋값이 오르는 건 집 거래가 활성화되고 실수요자가 늘면 괜찮아질 것이라고 봤다. 어차피 잘못된 생각이다.

애초 박근혜 정부도 1년차에는 이명박 정부와 같은 생각을 했다. ‘손익 공유형 모기지’라고 해서 주택 구입 자금 대출을 지원했다. 그럼에도 새로운 수요가 생기지 않았다. 어차피 살 사람이 기왕이면 싼 이자를 먼저 받아썼을 뿐, 새로운 구매 수요가 촉진된 것은 아니었다. 즉, 안 사려던 사람이 집을 샀던 건 아니다. 정부는 그런 현실 변화를 인정하고 이번 대책을 내놓은 것 같다.

"전세 관행,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프레시안 : 전세의 월세화가 진행되고 있다. 전세 제도는 집값이 오를 때만 가능한 제도라고 하지만, 당장 전세 세입자들의 고통이 가중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김수현 : 두 가지 현상이 한꺼번에 일어난다. 한쪽에선 전세가 오르고, 다른 한쪽에선 전세가 월세로 바뀐다.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현상이다. 정부도 인정했다. 이 두 현상은 같아 보이지만 다른 맥락이다. 사실 고가 주택은 월세로 돌리기가 어렵다. 구매력 문제 때문이다.

그래서 고가인 아파트는 전세가 오르는 방향으로, 원룸 같은 저가 주택은 월세화하는 경향으로 변하고 있다. 나는 전세 시대가 저물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전세가 오르는 추세와 월세가 확대되는 추세가 서로 다른 주택 유형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게다가 전세가 지속되는 요인이 공급자와 수요자에게 다 있다. 공급자 입장에서는 10억 원짜리 집을 자기 돈으로 산 게 아니다. 돈을 갚아야 하므로 목돈이 필요하다. 수요자 측면에서는, 자식이 결혼할 때 부모가 원조하는 관행이 아직 있다. 결혼하면 1~2억 정도 집에서 주는 경우가 꽤 있다. 그래서 전세 관행이 빨리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다만 과도기가 있다. 외국에서는 은행 이자에 1%를 더한 값을 주택 가격에 곱한 금액을 월세로 책정한다. 유지비용을 고려해서 1%를 더한다. 우리나라는 다르다. 주택 가격의 70%가 전셋값이라면, 그 전세값을 근거로 월세를 환산한다. 한국 집값에 비해 월세 시장 수익률이 전 세계적으로 낮은 이유가 여기 있다. 세 책정 기준이 주택가가 아니라 전세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한국의 월세가 싸다는 뜻은 아니다. 나는 월세에 비해 집값이 너무 높기 때문에 월세 수익률이 낮다고 생각한다. 비슷한 현상이 대만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집값이 비싼데 월세 수익률은 낮다. 혼란스러운 임대시장이다. 월세로 전환되더라도 서구식도 아니고, 전세가 참조 가격인 상태의 월세라 수익률이 안 나온다. 임대인, 임차인 모두가 불만을 가진 임대 시스템이다.

프레시안 : ‘전월세 상한제’가 임대료를 올릴 가능성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김수현 : 전월세 상한제가 임대료를 올릴 가능성이 있긴 하다. 공급이 줄어들거나 상한제가 시행되기 전에 집주인이 세를 먼저 올려 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럼에도 세계 많은 나라들이 임대료 상한제를 시행한다.

다만, 전세 상한제를 하는 것이 가능한지는 좀 우려스럽다. 왜냐하면 집주인이 10억 원을 투입하고, 5억 원을 받는 게 전세다. 자기 이익보다 더 적게 받는 건데, 그걸 못 올리게 하는 게 맞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물론 집 주인은 집을 5억 원에 샀는데, 이 집값이 몇 년 새 10억 원으로 뛰었고, 전세를 7억 원 받으려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그런 경우는 집 주인이 손해가 아니다.

그럼 구입 시기에 따라서 전셋값 인상분을 차등화할 수 있을까? 외국에서는 2차 대전 이전에 지은 오래된 주택에 대해서만 임대료 인상을 규제한다. 신규 주택은 규제하지 않는다. 집 주인 입장에서도 투입한 만큼 못 받으면 억울한 것 아닌가. 우리는 “2년에 30% 올리는 게 말이 안 된다, 규제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전세 문제에 대해서는 쉽게 얘기하기가 어렵다. 그러면 그 어느 집주인도 전세를 놓으려고 안 할 것이다.

제한된 지역에서 월세만 먼저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래야 급격한 월세화를 저지하는 효과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아직 시행을 못 하고 있다. 대만, 홍콩(94년 폐지), 싱가포르 등 동아시아 국가 가운데 임대차 상한제를 시행하는 나라가 없다. 다만, 뉴욕은 주요 주택 유형에 대해 상한제를 한다. 영국에서도 임대료 상한제를 시행하고, 독일은 3년간 20% 제한하는 형식으로 한다. 나라마다 다르다. 유럽 국가는 임대료 상한제를 제1, 2차 세계 대전 기간 중에 도입했다. 전시통제법 차원에서 임대료를 통제했다. 그러다 전후에 바로 규제를 풀지 않고, 1960년대부터 완화했다. 우리는 그런 계기가 없었다. 주택이 절대 부족할 때는 손을 못 대다가 이제 절대 부족한 시기를 넘어섰는데, 도입하려니까 투명화 문제도 있지만 정치적 계기가 간단치가 않다. 임대차 상한제가 반(反)시장 정책도 아니고, 자본주의 선진국이 운영하는 제도이긴 하나, 도입하려면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다. 지금 외국에서 한다고 우리도 곧장 그렇게 할 수 없다. 세계적으로 우리나라에만 있는 전세 제도의 특수성도 고려해야 한다.

▲ 김수현 세종대 교수. ⓒ프레시안(최형락)


“자가 소유는 고도성장과 고용 안정 시대의 산물”

프레시안 : 이번 정부 대책 중에서도 전세 세입자에게 저리에 주택 구입 자금 대출을 지원해 전세 수요를 매매 수요로 전환하도록 하는 방안이 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빚내서 집 사는 정책”이라고 비판하는데?

김수현 : 집도 살 사람은 사야 한다. 아무도 안 사면 일본처럼 된다. 일본처럼 20년간 주택 가격이 하락한 게 좋은 것일까? 좋다고 볼 수도 있고, 나쁘다고 볼 수도 있다. 나는 집을 살 구매력이 되는 사람은 사도 된다고 본다. 다만 우리나라는 지금 성숙한 주택 시장 단계에 들어서고 있어서 과거처럼 자가 소유가 늘어나기 어렵다. 자가 소유는 고도성장과 고용 안정 시대의 산물이다. 서구 국가들을 보면, 근로자들이 집값의 80% 정도의 돈을 빌려서 20~30년간 돈을 갚을 수 있을 때 집을 샀다. 고용 안정과 자가 소유 확대는 동전의 양면이다.

주택학자들이 보기에 2000년대 버블 붕괴 이후 자가 소유 시대가 끝났다. 후기 산업 사회의 상시적 고용 불안정이 자가 소유 확대에 가장 근본적 걸림돌이었다. 그럼에도 집값이 오른다는 이유로, 금융 세력의 장난으로 자가 소유가 늘어났던 것이다. 그러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자가 소유에도 위기가 와서 이전처럼 원상 복귀된 나라가 많다.

청년층들의 고용이 불안정하다고 하지만, 안 불안한 청년층도 있다. 돈 잘 벌면 집을 사게 해야 한다. 다만 DTI 규제까지 풀어서 과도하게 집을 사라고 부추기는 건 옳지 않다. 능력 이 안 되는 사람에게까지 집 사라고 권하는 건 문제가 있다. 이번 정부 조치 때문에 능력이 안 되는데도 집을 사는 사람은 없을 것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세액 공제 형식의 월세 세입자 지원 제도는 고소득 월세 거주자에게만 혜택이 돌아갈 수 있다고 지적한 바 있다. 저소득 노동자의 30%와 저소득 자영업자의 60%는 소득 공제 대상에서 제외되는 탓이다. 그렇다면 월세 세입자에게 정부는 어떤 혜택을 제공해야 하나?

김수현 : 한국에는 소득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는 영세 자영업자가 너무 많다. 유럽은 자영업자 비율 10%대에 불과하다. 기본적으로 근로 소득에 세금을 내는 구조인데, 한국은 소득세가 불투명하다. 세액 공제이든 소득 공제이든 정부가 뭔가를 해주고 싶어도 저소득층들이 다 배제된다. 이 제도를 선진국에서 시행했다면 도움이 될지 모르겠으나, 우리는 중고소득 월세 가구만 혜택을 보는 이상한 구조다. 물론 일부 중저소득층에게도 세액 공제 혜택이 있긴 할 것이다. 그러니 일부 전문가들은 차라리 임대료 보조 제도의 범위를 넓히라고 주장하는데, 막상 넓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현찰로 넣으려면 한계가 있다. 가구당 10만 원씩만 주려고 해도 재정 부담이 크다. 아직은 좀 안타깝지만 월세 세입자에게 바로 갈 혜택은 많지 않다. 공공임대주택과 계약임대주택을 늘리는 게 중요한 접근법이라고 본다.

프레시안 : 정부가 준공공 임대 주택으로 등록한 집주인에게 세금 혜택을 줘서 민간 주택 공급을 활성화하겠다고 했는데, 잘 될까?

김수현 :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정책을 정부가 가져간 것이다. 사실 우리나라 같은 나라에서 빈 땅에 공공임대주택을 짓기는 어렵다. 그리고 이미 민간 주택 재고가 많다. 택지 개발 지구에 대단지 형식으로 짓는 방식이 아니라, 기존 민간 주택을 활용해서 가야 한다.

크게 세 가지 방식이 있는데 첫째, 민간 주택을 사서 하는 매입 임대 방식이 있다. 둘째, 민간 임대 주택을 세놓는 ‘전세 임대 주택’ 방식이다. 셋째, 민간 임대 주택과 정부가 계약하는 방식이 바로 ‘준공공 임대 주택’이다. 준공공 임대 주택으로 등록하고 10년간 정부 프로그램에 따라라, 임대료 5% 상한을 지키고 임대 기간을 안정화하라, 그러면 집 주인에게 재산세도 깎아주고 임대 소득세도 깎아 준다는 것이다. 이런 방식이 잘 될지 안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어느 정도 해줘야 가옥주들이 따라올지 모르니, 다양한 인센티브를 설계해야 한다.

일례로 서울시에서는 준공공 임대 주택으로 등록하는 집주인에게 집을 고쳐준다고 했다. 다양한 방식의 인센티브를 설계해서 적절한 프로그램으로 확대하는 것밖에 없다. 정부는 이런 주택을 직접 규제하지는 않지만, 세입자들에게 안정적이고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공급할 수 있다. 이 방식이 정부가 새로 짓거나 매입하는 것보다 비용이 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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