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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노무현 생각으로 전경련 회장 글은 도저히…"

[인터뷰] <대통령의 글쓰기> 저자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을 때, 그는 세상을 떠났다. 누구나 아는 이야기.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남긴 마지막 말이다.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형을 언도받고서도 글을 썼다. 글 쓸 종이를 구할 수 없어서, 껌 종이, 과자 포장지에 못으로 꾹꾹 눌러썼다. ‘말과 글’에 대한 애정이라는 점에서, 두 전직 대통령은 닮았다. 둘 다 지독한 독서가였다. 좋은 글의 가치를 알아봤고, 글쓰기와 말하기에 대한 욕심도 대단했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 걸쳐 대통령의 ‘말과 글’을 담당했던 사람이 얼마 전 책을 냈다.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제목이다. 저자 이력만으로도, 관심이 간다. 김대중 정부에선 연설비서관실 행정관, 노무현 정부에선 연설비서관을 지냈다. 말과 글에 대해선, 누구 못지 않게 눈이 높았을 두 전직 대통령 아래에서 연설문 작성을 담당했었다. 책장을 열어보게 되는 게 당연하다. 실제로 그렇다. 글쓰기 내공이 만만치 않다. 한번 펼치면, 놓기 힘들다. 매끄러운 문장이 촘촘히 이어진다. 비문이나 오타 역시 찾기 힘들다. 호흡 조절도 세련됐다. 지루해질 듯하면, 재미난 일화가 나온다. 이 정도 필력이 되니까, ‘말과 글’의 최고 고수 옆에서 눈높이를 맞출 수 있었던 모양이다.

저자에게 만남을 청했다. 책이 워낙 재미있어서이기도 했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요즘 들어, 대통령의 말이 거칠어졌다. “규제는 우리가 쳐부술 원수, 제거하지 않으면 우리 몸이 죽는다는 암 덩어리”라는 표현이 대표적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원래 단정하고 힘 있는 말로 정치를 했었다. “대전은요?”, “참 나쁜 대통령” 등은 대중의 뇌리에 깊이 박혔다. 대통령이 된 뒤에도 한동안 그랬다. 그런데 집권 2년차에 변화가 생겼다. 말이 길어지고, 비유가 거칠어졌다. 어째서일까.

대통령의 말을 곱씹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정치는 결국 말이니까. 말이 달라지면, 정치도 달라진다. 대통령의 말이 달라진 데 대한 저자의 생각도 궁금했다. 지난 13일 오후, 서울 마포구 언론협동조합 프레시안 편집국에서 저자를 만났다. 강원국 메디치미디어 주간과 이날 나눈 이야기를 간추렸다. <편집자>

▲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현 메디치미디어 주간. ⓒ프레시안(최형락)


"국민을 설득하는 리더십, 도구는 말과 글뿐이다"

프레시안 : <대통령의 글쓰기>는 김대중, 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에 대한 책인 동시에,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쓰는 법을 다룬 실용서적이기도 하다. 두 전직 대통령이 워낙 ‘말과 글’을 잘 다뤘기 때문이다. 독자들이 궁금해 할 것 같다. 그들은 어떻게 해서 ‘말과 글’의 달인이 될 수 있었을까.

강원국 : 두 분이 말을 잘하게 된 건, 결국 시대적 산물이다. 말을 잘해야 할 필요가 있었으므로, 잘하게 됐다. 두 분은 모두 역사와 국민을 두려워했다. 대통령은 이런 두려운 존재와 대화하는 자리라고 봤다. 그러니 얼마나 말에 신경을 썼겠나. 말을 많이 하지 말라,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하는 건 옛날 방식이다. 권위주의 시대엔 지도자가 따라오라고 하면, 따라가야 했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엔 다르다. 권력기관을 동원해서, 따라오라고 윽박지르는 방식은 쓸 수 없다. 국민을 설득해야 한다. 그러자면 도구가 말밖에 없다.

내가 모셨던 두 대통령은, 말하는데 한 시간을 쓴다면 과정을 오십분 설명하고 결과를 십분 설명하는 식이었다. 결과에 이르는 과정을 충분히 설명하려 애를 썼다. 그게 설득하는 리더십이다. 그러나 이후 대통령들은 달랐다. 결과를 이야기하는데 오십분을 쓴다. 왜 그런 결과에 이르렀는지, 과정을 설명하는 데는 십 분 밖에 쓰지 않는다.

아마 중간과정을 길게 설명하는 게 시간낭비라고 여기겠지. 성장, 효율만 중시하는 입장에선 그게 당연하다. 과정이야 어찌됐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고 믿을 테니까.

이명박, 박근혜 정부를 가리켜 ‘불통(不通)’이 문제라고 한다. 국민과 소통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런 비판을 듣는 당사자들은 억울할 게다. ‘충분히 설명했는데 왜 불통이라는 거지’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을 듣는 국민은 저절로 안다. 나를 주인으로 생각하고 설득하는 자세인지, 나에게 지시하고 따르라는 방식인지 말이다.

"대통령이 수첩 보고 말하는 게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프레시안 : 늘 주류에만 있었던 이들은 굳이 말을 잘할 필요가 없다. 남을 설득해야만 하는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주류 세력, 탄압받는 측, 소수자 집단에겐 설득력 있는 말과 글이 절실하다. 주류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가치, 다수에게 낯선 메시지를 설명해야 하니까. 또 탄압에 맞서기 위해 옆 사람에게 도움을 청해야 하니까 말이다.

강원국 : 김대중 전 대통령은 사형 선고를 받았었다. 그리고 최후 진술을 해야 했다. 자기 이야기를 절절하게 해야만 하는 상황, 그래서 남을 설득해야만 하는 상황을 많이 겪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늘 주류에만 있었던 대통령들은 이런 경험을 하지 못했을 게다.

김대중, 노무현. 두 분이 말하는 스타일은 전혀 다르다. 그러나 말과 글의 중요성을 아주 높게 쳤다는 점에서는 똑같다. 김대중 대통령은 지도자는 먼저 말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한발 앞서 이슈나 아젠더를 내놓는 사람이라는 거다. 그런 측면에서 지도자는 자신의 생각을 말과 글을 통해서 직접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자기 생각을 글로 쓰지 못하면 지도자의 자격이 없다고 했다. 지도자가 자신의 말과 글을 장악하지 못하면 아래 참모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다. 또 진정성을 담아 국민과 소통할 수도 없다.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이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은 잘 상상이 안 된다. 아마 그런 경험이 거의 없지 않았을까. 그러나 누군가가 박 대통령을 설득하려 애쓰는 모습은 쉽게 상상이 된다. 이런 특징이 대통령의 말에 반영돼 있을 게다.

강원국 : 흔히 박근혜 대통령을 가리켜서, 수첩에 적어놓은 것을 읽기만 한다고 비판한다. 이건 잘못된 비판이다. 미리 적어둔 원고를 읽는 것 자체가 나쁜 건 아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연설문을 읽었다. 심지어 자신이 미리 구술한 내용을 적은 연설문일 때도 그랬다. 준비된 원고를 읽는 게 국민에 대한 예의라고 본 거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남이 써준 원고를 읽는다는 게 시빗거리는 될 수 없다. 똑같이 연설문을 읽어도 차이가 있다. 국민은 그걸 느낌으로 안다. 글이나 말은 자기 자신이고, 삶 자체다. 살아온 역정이 다르면, 말과 글도 다를 수밖에 없다.

'튀는 말'에 대한 노무현의 두 가지 생각

프레시안 : 박근혜 대통령의 말이 변했다. 말이 길어지고, 거친 표현이 자주 튀어나온다. 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지낸 경험에 비춰보면, 어떤가. 이런 변화는 의도된 걸까.

▲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현 메디치미디어 주간. ⓒ프레시안(최형락)
강원국 :
당연히 대통령이 의도한 거다. 다만 나는 뉴스를 잘 보지 않아서,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어떤 말을 했는지는 모른다. 청와대 근무를 마친 뒤, 간혹 언론사에서 전화가 온다. 후임 대통령의 연설문에 대해 평가를 해달라는 게다. 광복절 경축사 같은 게 단골 주제다. 그러나 나는 지금껏 한 번도 응대한 적이 없다.

튀는 표현은 노무현 대통령도 많이 썼다. 흔히 실언(失言)이라고 평가하는데, 그렇지 않다. 대중에게 각인시키는 효과를 노리고 썼다고 봐야 한다.

부동산 투기 근절에 대해 이야기 하면서 ‘강남이 불패면 노무현도 불패다’라고 했다. 솔직히 고급스런 언어는 아니다. 대통령이 쓸 만한 언어는 아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언론이 비난도 많이 했다.

노무현 대통령도 할 말이 있다. 노 대통령은 ‘국민에게 편지를 계속 보내는데, 우체부가 전달을 안 한다’라고 했다. 자극적인 표현을 써야 언론이 기사를 내준다는 게다. 그렇지 않으면, 언론이 외면했다.

자극적인 표현에 대해 대통령은 두 가지 생각이 있었다. 하나는 "대통령의 언어, 서민의 언어가 따로 있느냐"라는 것이다. 말이란, 쉽고 간결하고 분명하게 전달하는 게 목적이다. 그 역할에 충실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게다. 다른 한편으론 반성도 했다. 대통령은 고급스런 언어를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고 인정했다. 말에 관해서는 준비되지 않은 대통령이라고도 했다. 그것 때문에 대통령 잘못 뽑았다고 한다면, 본인이 감수할 수밖에 없다고도 했다.

그런데 국민이 그걸 모르고 뽑은 게 아니지 않나. 대통령의 언행이 감춰진 채 선거를 치른 게 아니지 않나. 과거 대통령들은 말실수를 안 했을까. 김영삼 대통령은 얼마나 말실수를 많이 했나.

튀지 않는 김대중, 독창적인 노무현

프레시안 :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은 모두 말을 잘했지만, 말하는 스타일은 확연히 달랐다.

강원국 : 김대중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하다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문을 맡았을 때, 그래서 무척 애를 먹었다. 다른 점이 많다. 김대중 대통령은 중요한 메시지를 반복할 때가 많다. 반면, 노무현 대통령은 같은 표현이 반복되는 걸 몹시 꺼렸다.

김 대통령은 일반론을 펴기를 좋아했다. 유명학자의 글을 인용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식이다. ‘인류는 농업혁명, 도시혁명, 사상혁명, 산업혁명과 지식정보혁명 등 다섯 번의 혁명을 거쳤으며, 21세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지식과 정보, 문화가 인류 진보를 이끄는 힘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노 대통령은 일반론을 이야기하는 걸 싫어했다. 대신 자신만의 독창적인 논리와 주장, 구체적인 표현을 좋아했다. 또 남의 말을 인용하는 것도 탐탁치 않아했다.

김 대통령은 전체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이야기하는 걸 좋아했다. 어떤 일의 배경부터 파급효과까지 논리적으로 연결된 전체를 이야기했다. 또 김 대통령은 너무 튀는 표현을 싫어했다. 반면, 노 대통령은 인상적인 첫 한 줄을 원했다. 누구나 예상할 수 있는 시작을 좋아하지 않았다. 도입부에 단도직입적으로 규정하고 뒤에 풀어서 설명하는 식이었다. 또 자신 있는 표현을 좋아했다.

즉석연설에 대한 생각은 아주 달랐다. 김 대통령은 반드시 사전에 준비된 연설문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책임 있는 태도라는 게다. 노 대통령은 그렇지 않았다. 즉석 발언이 많았다. 청중과 직접 호흡하는 현장교감형 연설을 했다. 그게 오히려 책임 있는 정치인의 태도라고 봤다.

대통령 말 끊고 화장실에 달려간 사연

프레시안 : 말과 글에 관한 한 대단한 전문가인 대통령과 함께 일했다. 스트레스가 대단했겠다. 책을 보면, 스트레스 때문에 과민성대장증후군에 걸렸다고 돼 있다.

강원국 :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글에 대해선 눈이 무척 높았다. 내가 작성한 연설문 초안이 바로 통과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계속 첨삭을 하거나, 아예 새로 쓰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스트레스가 대단했다. 결국 몸에 탈이 났다. 그런데 청와대 근무를 마치고 나니, 말끔히 나았다.

청와대 근무 시절, 시도 때도 없이 배에서 신호가 오는 탓에 고생이 많았다. 한번은 노무현 대통령이 한창 이야기하는 중에 배가 아파온 적이 있다. 열정적으로 이야기하는 대통령에게 차마 이야기 할 수도 없고, 그런데 도저히 참을 수도 없고, 그래서 결국 벌떡 일어났다. ‘대통령님’ 그랬더니, 노 대통령이 눈치를 채더라. 웃으면서 ‘다녀오게’ 그랬다. 후다닥 화장실 다녀오니까, 대통령이 ‘어디까지 이야기했지’라고 묻고는 다시 이야기를 시작했다.

갑작스레 화장실 갈 일이 생길까봐, 스트레스가 대단했다.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는 아예 관장을 했다. 그리고 아무 것도 먹지 않고, 장을 완전히 비워뒀다. 대통령을 모시고 육로로 방북하는 중에 내가 화장실 가야 한다는 이유로, 차를 세울 수는 없는 것 아닌가.

프레시안 : 노무현 대통령의 소탈한 면모에 대한 묘사가 인상적이다.

강원국 : 노무현 대통령은 특혜, 특권, 권위의식 등과 치열하게 맞서 싸웠다. 그게 그분의 철학이었다. 노 대통령은 '역사의 진보란, 소수가 누리던 걸 다수가 누리게끔 하는 것'이라는 말을 자주 했다. 권력이건, 경제력이건 다 마찬가지라고 했다. 노 대통령은 우리에게 ‘당신들은 특혜를 누렸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험 자체가 아무나 할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렇게 소수가 누린 ‘특혜’를 다수에게 나눠줘야 한다고 했다. 그 방법이 글쓰기였다. 대통령은 재임 중에 나더러 청와대 연설비서관을 하며 얻은 경험과 노하우를 누구나 접할 수 있게끔 책으로 쓰라고 했었다. 국정상황실에서 중간점검까지 했다. 하지만 나는 책을 쓰지 못했다. 정말이지 너무 바빴다. 퇴임 후 봉하마을에서도, 대통령은 같은 말을 했었다. 그래도 하지 못했는데, 출판사에 들어온 뒤에야 책을 쓸 수 있었다.

"대통령에게 배운 생각으로, 전경련 회장 글은 못 쓰겠더라"

프레시안 : 늘 ‘남의 글’만 썼다. 사실상 ‘고스트라이터(대필작가)’였던 셈인데, 이제는 자기 이름을 내건 글을 썼다. 소감이 어떤가.

▲ 강원국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현 메디치미디어 주간. ⓒ프레시안(최형락)
강원국 :
나는 원래 글을 잘 못썼다. 이런 내가 스피치라이터(연설문 작가)로 밥벌이를 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대학 졸업하고 대우증권에 입사했는데, 아주 우연한 계기로 <대우증권 창립 20주년 사사(社史)> 만드는 일을 하게 됐다. 그때부터 ‘글쟁이’가 됐고, 사장과 회장의 연설문을 쓰게 됐다. 김우중 대우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 되고 나선 회장 비서실로 옮겨 김 회장의 연설문 작성을 맡았다.

그리고 그 인연으로 김대중 대통령 연설비서실에 들어가게 됐다. 그때가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직후였다. 이후 8년 간,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의 연설문을 담당했다.

스피치라이터는 글을 아주 잘 쓸 필요가 없다. 글을 잘 쓰면 자기 문체를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건 곤란하다. 연설하는 사람에 맞춰야 한다. 자기 생각이 너무 분명해도 안 된다. 나처럼 색깔 없이 성실하면 되는 일이다. 연설하는 사람의 생각에 푹 빠져 살아야 한다. 말 그대로 ‘빙의’돼 있어야 한다.

연설하는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이다. 대우에서 일하던 시절, 김우중 회장은 내게 영웅이었다. 정말 존경했다. 어린 시절부터 어른들에게 ‘김대중’이라는 이름을 들었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내게 ‘신화 속 영웅’이었다. 김대중 대통령 연설비서관실에서 일하자는 제안을 받았을 때, '가문의 영광'이라고 대답했다. 진심이었다.

청와대를 떠난 뒤, 효성그룹에 취업했다. 당시 전경련 회장이던 조석래 효성 회장의 연설문을 쓰는 게 내 일이었다. 급여와 대우가 아주 좋았다. 게다가 조 회장은 우리나라에서 연설문의 중요성을 인정해주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그런데 두 달 만에 관뒀다. 두 대통령을 모시며 배운 게 많았다. 조 회장의 생각은 그 내용과 달랐다. 내가 배운 것과 다른 글을 쓸 수는 없었다. 그래서 사표를 내고 반 년 동안 놀았다.

그 뒤, 여러 직장을 거쳐 출판사에 오게 됐다. 출판사 일은 재미있었다. 그때까지는 내가 글을 쓰면, 누군가가 감수를 하고, 다른 누군가가 그 글을 읽었다. 그런데 출판사에선 다른 사람이 쓴 글에 대해 내가 ‘지적질’만 하면 됐다. 해보니 좋았다. 마침 회사에서 편집자들에게 페이스북을 꼭 하라고 했다. 거기 올라오는 정보도 살피고, 책 홍보도 하라는 게다. 페이스북을 하면서 처음으로 ‘내 글’을 쓰게 됐다. 호응도 있고, 재미도 있었다. 게다가 출판사 일을 하다 보니, 책을 쓰는 게 꼭 특별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됐다. 그래서 두 달 휴직하고 책을 썼다. ‘글쓰기’에 대한 책을 내라던, 노 대통령의 지시를 이제야 이행한 셈이다.

<대통령의 글쓰기>라는 제목을 달았지만, 방점은 ‘대통령’이 아니라 ‘글쓰기’에 찍힌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회고가 아니라, 연설문이라는 실용적인 글을 쓰는 요령에 대한 책으로 읽혔으면 한다. 실제로 기업이나 관공서에서 이런 일을 하는 이들이 꽤 있다. 다음에는 ‘회장님의 글쓰기’에 대한 책을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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