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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노모 "갈 병원 없어 아들 죽이고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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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대 노모 "갈 병원 없어 아들 죽이고 나도…"

[증언] 갈 곳 잃은 에이즈 환자, 국가는 '나 몰라라'

"아들이 식물인간처럼 됐어요. 눈도 안 보이고 귀도 안 들리고, 자기가 병 걸린 줄도 몰라요. 24시간 간병해야 하는데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요. 지금도 환자 싣고 이리저리 옮기기 힘들고 서글프고. 차라리 얘랑 나랑 같이 죽을까 극단적인 생각을 할 때가 많아요."


45세 아들을 둔 70대 노모 ㄱ 씨가 힘겹게 말을 이어갔다. 아들은 지난해 에이즈 판정을 받았다. 불행히도 병을 너무 늦게 발견했다. 큰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아들의 의식은 돌아오지 않았다. 더는 치료할 것이 없는 상태가 됐을 때 이후가 막막했다.


아들의 병은 4대 중증질환 가운데 희귀난치성질환에 해당한다. 병원비는 나라에서 지원해주지만, 보름에 180만 원이 드는 24시간 간병비는 제외다. 두 달 이상 받아주는 병원도 없어서 모자는 매번 병원을 전전한다. 국가가 지정한 에이즈 환자를 위한 장기 요양병원은 국내에 딱 한 곳뿐이었던 탓이다.


질병관리본부는 2010년부터 국가 에이즈 관리 사업의 일환으로 경기도의 S병원에 에이즈 환자 장기 요양 사업을 위탁했다. 문제는 국내 유일한 국가 지정 요양병원에서 환자 성폭력 사건과 환자 사망 사건이 벌어졌고, 인권 침해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ㄱ 씨는 "S병원은 절대 가지 않겠다"고 버텼다. (☞ 관련 기사 : 성폭행, 사망…에이즈 환자 인권은 어디에?)


"사람 사는 곳이 아니야 거기는"


ㄱ 씨는 S병원을 거부하는 이유에 대해 "병원 생활을 오래 하다 보니 나도 들은 게 있어서"라고 했다. 4년째 에이즈 환자인 동생을 돌보는 ㄴ 씨의 증언은 더 구체적이다. 그는 S병원에 동생을 입원시킨 기억을 악몽처럼 떠올렸다. "환자들이 사람이 아니에요. 너무 황당하고 말로 표현할 수 없어요. 사람이 사는 곳이 아니야 거기는."


병원을 전전하다 2011년 12월 동생을 S병원으로 옮긴 ㄴ 씨는 "침대 밑 벽지에 곰팡이가 나서 냄새가 역겨웠고, 환자 가래를 뽑는 석션기에도 곰팡이가 핀 것을 발견했다"고 말했다. 2012년 1월 이사하느라 3일 만에 S병원을 찾았을 때 "동생은 치우지 않은 변과 가래로 엉망이었고, 씻기지 않아 머리가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었다"고 했다. 그는 병원과 언쟁한 끝에 동생을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


ㄴ 씨는 "병원에서 생긴 불미스러운 일들을 사진으로 찍어서 제시했더니, 병원 측이 해당 사진은 석션기에 곰팡이가 아니라 가래가 낀 것이라고 하면서 돈 50만 원을 주겠다고 했다"며 "돈 50만 원으로 입 다물라는 뜻 아니겠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 ㄴ 씨가 S병원에서 찍은 석션기 사진. ㄴ 씨는 '석션기에 곰팡이가 피었다'고 주장했다.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아들을 죽이고 나도 죽을까 했지만…"


S병원에 대한 논란이 커지자 질병관리본부는 지난 1월부터 위탁 계약을 해지하고 지난해 S병원에 지원하던 국가 예산 2억4000만 원을 끊었지만, 새로운 요양기관을 지정하지 못했다. 환자들은 오갈 곳이 없어졌고 간병비 폭탄이 떨어질 위기에 처했다. (☞ 관련 기사 : "인권 침해 논란 에이즈 환자 병원, 나가기 싫으면 남아?")

S병원에 아들을 입원시킨 73세 노모 ㄷ 씨는 국가 지원금이 끊긴 S병원에서 지난 3월 1일부터 50만 원을 추가로 내라는 연락을 받았다. ㄷ 씨는 "환자는 말도 못 하고 일어나지도 못 하고 코로 음식이 들어가는데, S병원은 자기네 아니면 에이즈 환자들을 누가 받아주겠느냐고 한다"며 "환자들이 그야말로 짐승처럼 방치된 것도 마음이 아픈데, 50만 원을 낼 능력이 없으면 이런 환자들은 어디로 가야 하느냐"고 호소했다.


당뇨약, 혈압약, 위장약 등을 복용하고 있는 노모 ㄷ 씨는 "지난 3년간 아들을 지켜보면서 아들을 죽이고 나도 죽어야 하는 팔자인가 하는 생각을 수도 없이 했다"며 "뛰어내리고 싶은 적이 많았지만, 91세 어머니를 두고 불효를 할 수 없었다"고 울먹였다.


"마음 놓고 입원할 병원 하나만 있었으면"

환자 보호자들은 5일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한국HIV/AIDS감연인연합회 KNP+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가 주최한 '에이즈 환자 장기요양사업의 현황과 대책' 토론회에서 이 같이 증언했다. 이들 보호자들은 대부분 의식 없는 환자를 데리고 사비를 들여 구급차를 불러서 한두 달에 한 번씩 병원을 옮겨야 하지만, 입원을 거부하는 병원이 태반이다.


문제는 이러한 입원 거부가 합법이라는 점이다. 현행 의료법 시행규칙 제36조는 "전염성 질환자는 요양병원의 입원 대상으로 하지 않는다"고 규정한다. 지자체의 '노인요양시설 설치 및 운영 조례' 또한 "전염병으로 격리 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퇴소시킬 수 있다고 규정한다.


환자 보호자들은 "에이즈라는 병 때문에 의료인들도 환자를 벌레 보듯 하지만, 병원에 있게 해준 것만 해도 감사해야 하는 상황"이라며 "환자들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대접을 받으면서 마음 놓고 입원할 병원이 우리나라에 하나만 있었으면 한다"고 했다.


권미란 HIV/AIDS인권연대 나누리+ 활동가는 "전염병 환자들이 요양병원과 요양시설에서 거절당하지 않도록 의료법 시행규칙과 지자체 조례를 개정해야 한다"며 "국가가 에이즈 환자를 위한 요양병원, 요양시설을 확충하고, 최소한 기초생활수급권자에게 간병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훈재 인하대 의대 교수는 "우리나라 에이즈 환자들은 배려는 고사하고 다른 환자들이 적용받는 (입원 거부 불가 등) 원칙도 안 지켜진다"며 "외국처럼 우리나라도 에이즈 환자를 장애인으로 등록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권리 침해에 대해 강력한 법적 제도로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에이즈 환자가 갈 병원을 법·제도로 막아놓고, 국가가 지정한 딱 한 군데는 엉망으로 운영되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질병관리본부 관계자는 "S병원에 남은 에이즈 환자가 총 43명인데, 우선 3월 안에 환자 5명을 공공 병원에 이송하고 추가로 지방의료원 병상을 확보할 계획"이라며 "지금까지 S병원에서 발생한 간병비 50만 원은 해당 병원에 정산하고, 추가 요양병원 병상을 확보하면 새로 간병비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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