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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철도파업…"2016년 총선, 수서발KTX 되돌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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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나지 않은 철도파업…"2016년 총선, 수서발KTX 되돌려야"

"돌 던지던 이들이 돈 던지더라"…민주노조에서 사회적노조 운동으로

철도 파업은 끝나지 않았고, '철도 민영화'도 끝나지 않았다. 2013년 연말 정국을 뜨겁게 달궜던 전국철도노조(철도노조)의 파업은 사회 공공재 민영화 반대를 외쳤던 노조, 그리고 시민들의 함께 일궈낸 '일시적 승리'였던 것은 분명하다. '승리 이후' 한국 사회에는 숙제가 던저졌다.

철도 파업이 공공재 민영화의 문제점을 수면 위로 올라오게 했다면, 이제는 민영화 문제를 어떻게 다뤄야 할 것인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노동 운동 자체에도 큰 변화가 일어났다. 상당한 시민들의 지지를 이끌어낸 것은, 분명 과거 파업들과는 다른 새로운 현상이었다. '87년 이후' 본격화 됐던 '민주 노조' 운동이 이제는 시민들과 결합한 '사회적 노조 운동'으로 진화할 수 있는 가능성을 철도 파업은 보여줬다. 다시 '연대'와 '사회 참여'의 문제다.

도서출판 후마니타스와 경향신문사가 후원한 '철도 콘서트', '철도 파업,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5일 저녁 경향신문사 5층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철도 파업은 철도 노조만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이를 반영한 듯 이 자리에는 현장에서 파업을 이끌었던 '철도노조의 꽃' 일선 노조 지부장, 파업에 참여했던 평조합원, 철도 노동자를 남편으로 둔 주부, '안녕들하십니까' 운동에 참여하고 있는 청년, 인터넷 커뮤니티 소울드레서 회원, 김기태 전 철도노조위원장, 철도 전문가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위원장, 철도 민영화 문제를 취재해 온 경향신문 박철응 기자가 나와 23일간의 드라마틱했던 철도파업 '후일담'을 풀어놓았다. 사회는 <프레시안> 철도 전문 필자이자 <철도의눈물> 저자인 박흥수 사회공공연구소 철도객원연구위원이 맡아 구수한 입담을 자랑했다.

▲ 철도파업은 끝났지만 '철도 민영화' 이슈는 여전히 살아있다. ⓒ연합뉴스

철도파업이 23일 동안 이어질 수 있었던 이유는?

밖에는
동짓달 칼바람 몰아치는데
머리 허연 늙은 노동자
파업배낭을 꾸린다.

열아홉 살
취업을 위해 야간 비둘기호 열차에 몸을 싣고
눈물 뚝뚝 흘리며 고향을 떠나올 때도
동짓달 추운 날이었다.

()

며칠 집에 들어오지 못할 예상에
두꺼운 솜바지도 넣었다
비가 온다는데...우산도 넣었다
그리고
늙은 노동자 소박한 바람도 함께 넣는다.

(…)

(늙은 노동자 파업 배낭 中 - 민양운 )

2013년 말, 철도파업이 한창이던 당시 화제가 됐던 시다. 이 시를 쓴 민양운 씨는 세상사에 관심 많은 평범한 두 아이의 어머니이자, 철도 정비사를 남편으로 둔 주부다. 23일 간, 역대 최장기 철도 파업이 가능했던 가장 큰 이유는 '철도 민영화 반대'라는 대의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던 점이었다. 이같은 '정신적 대오'와 함께 '물리적 대오'가 유지될 수 있었던 배경 중 하나가 민 씨와 같은 '철도 가족'들의 전폭적인 지지였다. 민 씨는 "시에서 언급한 배낭이 사실 '이틀치' 배낭이었다"고 고백하면서 "그런데 (파업은 계속되더라.) '왜 이러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고 했다.

"남편 말로는 2009년 파업 때 조합원들이 학습을 한 것 같다는 것이다. 해고를 당하더라도 지노위(지방노동위원회), 중노위(중앙노동위원회)에서 살아 돌아오더라. 그래서 조합원들이 '해고만 안 되면 된다(징계는 감수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 저보다 아기도 어리고 한 그런 부인들이 특히 굉장히 학습이 돼 있더라.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하면서 정보들을 취합하고, 이번에 밀리면 세상이 조각나겠다는 생각이 드는, 그런 상황이라 가족들이 남편에게 절대 지지 말라고, 이기고 돌아오라고 했다. 그런 게 작용했지 않았을까."

이런 '철도 가족'들의 후원과 함께, 대학생들의 지지 대자보 운동, 이른바 '안녕들하십니까' 열풍도 만만치 않은 반향을 일으켰다. 고려대 출신인 김예찬 씨는 "막 대학을 졸업하고 일을 하고 있다가 웬 대자보가 학내에 붙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처음 대자보 쓴 분과 같은 학교 출신이어서 학교에 가 봤다. 그런데 너무 말도 안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더라. 대학 새내기들, 게다가 평소에 정치에 관심 없다고 이야기되는 의대생이 대자보를 붙여서 깜짝 놀랐다. 제가 학교를 7년 다녔는데 의대생이 대자보 붙이는 것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규율이 센 전국의 고등학교에서도 학생들의 '대자보 안부 묻기'는 이어졌다.

시민들의 지지도 철도 파업의 동력이었다. 인터넷 카페 '소울드레서'에서 활동하는 이진숙 씨는 "카페에서는 철도 민영화 반대에 공감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파업에 대해서는 언론을 통해 접하고 있는데, 직접 행동할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고민하다가 카페 내에서 성금을 모금해 드리기로 했다. 그것으로도 부족한 것 같아서 초코파이랑 핫팩을 챙겨 (파업 현장에 나가) 드리는 일을 했다"고 말했다. 쌍코(쌍화차 코코아), 화장발 등 다른 인터넷 여성 커뮤니티의 활약도 만만치 않았다. 김예찬 씨는 "저는 놀랐던 게, 집회 때 '학생 동지들', '노동자 동지들' 이런 얘기는 많이 들어봤는데, 화장발 동지들, 쌍코 동지들, 소울드레서 동지들, 이런 말이 나오는 게 신기했다"고 말했다.

김기태 전 철도노조위원장은 "2009년 파업을 이끌어봤지만, 그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돌'을 던졌는데, 지금은 '돈'을 던져서 놀랐다"고 했다

파업을 진행하던 철도노조 일반 조합원들은 어떤 생각이었을까. 파업에 참여했던 조합원 신동호 씨는 "파업은 사람이 바뀌는, 조합원들이 바뀌는 과정이었다. 처음 파업할 때 '우리가 박근혜 정부에서 한번 맞아 보자'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런 중에도 해고는 얼마나 될지, 걱정도 됐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안녕들 하십니까' 대자보 열풍이 분 이후, 사람들의 얼굴 색이 바뀌었다. 파업 중인데 기분 좋아서 들뜬 표정을 짓고, '아, 내가 뭔가 하고 있는 사람이구나' 하는 것을 느끼는 것 같았다. 2만여 명이 파업을 했고, 우리들이 (대한민국을) 살짝 들었다 놓았나 보다 하는 느낌이 들었다"고 했다.

이와 함께 파업이 유지될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 중 하나는 밴드, 트위터, 페이스북, 카카오톡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였다. 청량리기관차 승무지부장 박세증 씨는 "파업할 때, 보통 문제가 생기면 전화를 해서 확인을 하거나 그러는데, 요즘에는 철도노조 사람들이 SNS를 열심히 한다. 파업할 때, 여러 사람들이 전국을 돌아다니며 산해진미를 먹는데, 그게 실시간으로 올라오고, 다른 데서 어떤 헛소문이 돌면 임원, 지부장이 바로 확인 시켜주고 하는 부분들, 그런 것들이 조합원들을 평온한 상태로 만들고, 안정적으로 (파업을 이끌어) 가게 했다. 국민적 지지가 넓게 퍼져 있는 것을 조합원들 모두가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이런 부분을 통해 서로를 안심시키기도 했다. 그게 큰 힘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박흥수 객원연구위원은 "파업에 참여한 분들은 집회 끝나고 술과 산해진미를 먹었으면서 서로를 안심시켰다고 하는데, 필공(필수공익사업장) 유지자들은 더 힘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 분들은 필수공익사업장 근무가 끝나면 파업 현장에 나와 유인물을 돌리고, 다시 근무 시간이 되면 출근을 하는데, 그러면서도 연대 기금까지 낸다. 파업에 참여하지 않고 일해서 나온 월급을 파업에 참여한 사람들과 고르게 나누는 것이다. 일도 하고, 파업도 하고, 연대기금도 내는 '이중고', '삼중고'를 겪은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 전국철도노조 서울기관차지부 '사랑방' 모습 ⓒ프레시안(박세열)

철도노조의 10년 민영화 반대 투쟁은 노조운동의 '대안'

"대한민국 노동운동, 그리고 '노조운동'의 역사에서 철도노조는 주목해야 한다. '87년 체제' 이후 민주노조 운동이 생겨났고, 지금은 이를(변화된 사회에서 민주노조 운동의 한계 등을) 극복해야 하는 상황이다. 2013년의 투쟁이 갑자기 한순간에 이뤄진 게 아니다. 철도노조는 지난 2002년 김대중 정부 때부터 파업을 했다. 많은 노조들이 파업을 할 때, 임단협 관련 사안들과 함게 사회적이고 공익적인 가치를 내세우지만, 장식용 구호들이 많았다.

그런데 철도노조는 밖에서 이해하기 불가능할 정도로 자신들의 이익을 다지지 않아왔다. 임단협은 오히려 부차적이고, 수백명 씩 해고를 당하더라도 철도의 공공성을 지키는 운동을 계속 해왔다. 내가 일하는 이 현장, 이 사업, 이것을 이용하는 시민들과의 관계 등 속에서 철도 조합원들은 어떤 알맹이 같은 것을 형성하고 있다. 이제, (노동운동이) 민주노조 운동에서 사회적 노조운동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 시작이 철도노조라고 본다. 철도노조는 다른 노조와 달리 그간 (10년 이상) 새로운 노동 운동을 해왔던 것이고, 그 성과가 박근혜 정부에 와서 나오게 된 것이다."

오건호 위원장은 이같이 말하며 23일간의 파업을 평가했다. 오 위원장의 지적대로 철도노조는 여러모로 독특한 모습을 보여줬다. 김기태 전 철도노조 위원장은 "철도노조에는 '굳건한 신뢰'가 있다"고 했다. 노조 위원장 등 고위 간부를 지낸 후 '백수'가 되거나 정치권으로 흘러들어가는 일부 관행에서 보면, 철도노조만큼은 예외인 조직이다.

"철도노조 위원장을 하면 노동운동 판에서는 '방귀' 깨나 뀐다고 할수 있다. 그러나 철도노조는 확실히 다른 게, 이를테면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냈던 사람이 이번 철도노조 집행부의 간부를 하고 있다. 직전 철도노조 위원장이 (경찰의 민주노총 건물 습격 사건 당시) 일반 조합원들과 함께, 경찰을 앞에 두고 위원장 사수대를 기꺼이 맡는다. 과거에는 지부장이 해고된 적이 없는데, 최근에는 지부장들까지 해고 대상이 된 상황에서도 전국 지부에 지부장들이 다 채워진다. 굳건한 신뢰가 있다. 이것이 무엇보다 큰 자랑이 아닌가. 굳건한 믿음, 신뢰가 아니면 (철도노조의 승리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제는 '과제'가 남았다. 오 위원장은 "앞으로 저는 국회에 꾸려진 철도발전소위원회를 통해 국민에게 철도 민영화에 대한 진실을 더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일단 현재 철도 면허가 발부됐는데, 위법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막연히 경쟁하면 어떤 효과가 날 것 같은 기대를 하는 시민들도 있을텐데, 수서발KTX(수서고속철도주식회사) 운영과 관련해 여러 시뮬레이션을 돌려서 중복 조직을 만들게 된 데 대한 문제점들을 지적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수서발KTX가 2016년에 개통 예정이다. 그러나 2016년에는 총선이 있다. 총선 이후로 미뤄질 수도 있다고 본다. 수서발KTX는 다시 (코레일 직영으로) 되돌리면 된다. 되돌리면 국민들에게 (박근혜 정부의 결정이) 잘못된 결정이었다는 게 알려지게 될 것이다. 수서발KTX 문제, 철도 민영화 문제는 아직 진행형이다. 박근혜 정부가 끝나지 않는 한 이 정책이 바뀌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2016년 총선 전후에는 원상회복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철도 파업 당시 나타났던 열기를 이어갈 수 있어야 한다. 대학생 강태영 씨는 "(파업) 이후에도 연대가 이어져야 할 것 같다. 어떤 방식으로 연대를 계속 만들수 있을까 하는 지점들을 같이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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