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를 앞둔 박지성에겐 K리그에서의 은퇴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다. 2000년대 한국 축구를 대표했던 최고 스타이니 마지막 무대는 당연히 K리그여야 한다는 것이 축구팬의 논리이다. 그럴 듯하다. 국민적인 사랑을 받았으니 의례적일지라도 K리그에서 은퇴하는 것이 인간적인 도리인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그랬다. 금의환향(錦衣還鄕. 출세해 고향으로 돌아옴)은 보은이자 효도이고 도리였다. 이웃집 자식일지라도 금의환향하는 날엔 마을 잔치를 열어 축하해주던 것이 한국적 정서이고 정이었다. 성공한 뒤에 고향을 등지기라도 한다면 집안 어르신들은 온 마을 사람들의 쑥덕거림에 얼굴을 들지 못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각종 국제대회서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을 유난히 환영한다. 어머니의 나라에서 버림받은 한국계 입양아의 성공 스토리라도 전해지면 어김없이 금의환향의 무대를 만들었다. 미국프로풋볼, NFL 스타 하인스 워드가 그랬고 프랑스에서 장관직에 오른 플뢰르 펠르랭이 그랬다. 금의환향은 성공한 이에겐 보은이자 출세 선언의 의식이었고 고향사람들에겐 한 핏줄임을 확인하는 신성한 제례이기도 했다. 그래서 한국인은 금의환향에 매달리고 금의환향을 꿈꿔왔다. 금의환향 콤플렉스다.
이영표의 꿈은 스포츠 행정가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스포츠 행정가가 되겠다고 밝혔다. 스포츠 행정가가 목표라면 이론과 경험을 제대로 쌓아야 한다. 소속팀이었던 밴쿠버도 좋고 축구선진국인 유럽이라면 더 좋을 듯하다. 배우는 시간이 끝나면 이영표가 한국으로 돌아와야 할까? 굳이 그럴 필요는 없다. 축구선수로서 유럽진출이란 목표를 세우고 달성했듯이 행정가로서 세계도전이란 꿈을 세우고 도전해야 된다. 10년, 20년 뒤 이영표가 소속팀이었던 밴쿠버 화이트캡스의 단장이 돼있길 기대한다. 밴쿠버가 아니라면 한국인 최초의 유럽리그 축구팀의 단장으로 변신해 있길 기대한다. 축구 본고장인 유럽과 북미리그에 정통한 축구전문가로 성장해 국제축구연맹, FIFA로 진출하길 소망한다.
박지성도 마찬가지다. 지도자가 꿈이라면 국내가 아닌 유럽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고 코치생활을 시작했으면 한다. 스포츠 외교관이 인생설계라면 더더욱 국내서 정착할 필요가 없다. 은퇴 후 축구 본고장에서 자신의 인맥과 명성을 활용해 다양한 경험을 쌓아가야 한다. 10년, 20년 뒤 박지성이 유럽리그의 감독이 돼있으면 어떨까? 박지성, 이영표는 유럽과 북미에서의 활약을 바탕으로 세계 축구계의 거물로 성장할 잠재력을 충분히 갖고 있다. 한국 축구로선 박지성, 이영표가 국제 스포츠계의 거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한다. 국내 팬들 앞에서 은퇴경기를 하고 K리그 감독으로 주목을 받는 것도 의미 있다. 그러나 박지성, 이영표가 행정가, 외교관, 감독으로 세계 축구계를 누빈다면 한국축구는 한층 더 발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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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한국 스포츠는 세계 정상의 선수를 길러내는 것이 과제였다. 그러나 미처 신경 쓰지 못했다. 스포츠에도 외교가 필요하고 체계적인 행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뒤늦게 깨달았다. 그래서 21세기 한국 스포츠의 과제는 스포츠 외교와 스포츠 행정이다. 세계무대에서 활약했던 선수들의 인맥과 경험은 개인뿐만이 아니라 한국 스포츠의 자산이다. 세계 무대를 누볐던 선수라면, 현역 시절의 경험과 인맥이 은퇴 후의 삶과 단절되지 말아야 한다. 흔히 제2의 인생이라고 말하지만 제2의 인생은 제1의 인생에서 쌓은 성과를 바탕으로 시작된다. 한국 축구의 미래를 위한다면 박지성, 이영표의 금의환향은 미뤄져야한다. 한국 축구, 한국 스포츠의 외교와 행정이 경기력에 비해 한참이나 뒤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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