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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씨의 '버릇'은 우국충정에서 온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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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씨의 '버릇'은 우국충정에서 온 것인가?

[기자의 눈] 이회창 씨에 관한 몇 가지 기억들

2002년 대선 다음날인 12월20일 여의도 한나라당사.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끝내 눈물을 보였다. 이 자리에서 그는 "6년 전 정치에 들어온 당시의 꿈을 이루지 못한 회한이 어찌 없겠냐만 깨끗이 물러나겠다"며 정계은퇴를 선언했다.

그가 "저 이회창, 비록 정치를 떠나지만 언제, 어디에 있든지 국민 여러분과 동지 여러분과 늘 함께 하겠다"고 정계은퇴의 변을 이어가자 서청원 당시 한나라당 대표를 비롯한 여러 당직자들도 일제히 눈물을 쏟았다.

'정계은퇴' 선언은 이미 번복

4년이 지났다. 이 전 총재가 다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최근 '너무 자주' 접하게 되는 그의 발언은 4년 전 '눈물의 은퇴선언'마저도 정치 이벤트였나 싶을 정도로 정치적이다. 킹이냐, 킹메이커냐는 해석이 분분하지만, 적어도 "정치를 떠나겠다"던 자신의 말은 이미 번복한 셈이다. 그는 이미 정계은퇴를 번복하고 정치를 재개한 것이다.

거기서 한발짝 더 나아가, 이 전 총재는 5일 '한나라 포럼'이 주최한 강연에서 매우 위험한 말을 했다. "대선이 끝난 후에 '한나라당이나 이회창 후보가 시대 변화를 읽지 못했다'는 등 여러 원인 분석이 나왔다. 이런 분석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추상적인 시대변화 같은 것보다 깜짝쇼나 네거티브 캠페인이 직접적인 패인이 된 것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가볍게 보면 '못내 억울하다'는 항변쯤으로 넘어갈 수 있을 법도 하지만, '정치적'으로 보면 오래 전에 끝난 심판의 판정에 대한 명백한 이의신청이다. 그것도 대선을 1년 앞둔 상황에서…. 스포츠 경기에서 패자가 자신의 패배를 부정하는 것은 통상 재기전을 꿈꾸기 때문이라고 한다.

꼭 앞사람을 밟아야 하나?

'이회창식 정치방식'도 여전한 것 같다. 요즘 그는 어디를 가나 노무현-김대중을 상대로 한 '마녀사냥'이다.

그는 "햇볕정책을 옹호하거나 표를 얻기 위해서 '김대중 주의'에 아첨하고, 호남에서 지지를 얻으려고 하는 것은 정말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김대중 정권이 들어선 이후 친북좌파들이 판을 치고 득세하고 심지어 간첩까지도 활개치고 다니는 사회가 됐다"고도 했다.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선 "능력이 없고, 미숙한 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도대체 성의 있게 진지하게 정치를 하겠다는 의욕조차도 잃어버린 것 같다"고 맹폭했다.

극우적 시각 일색인 내용을 떠나, 또 비판의 대상이 자신에게 두 번의 패배를 안긴 상대였다는 도의적인 문제를 떠나, 이 전 총재가 자신의 앞에 선 사람을 밟는 것에서 자신의 정치적 활로를 모색하는 방식은 꽤 오래 전에 목격했던 일이다.

김영삼 정권의 말기이자 97년 대선 레이스가 한창일 때, 당시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는 한 선거유세장에서 '03 마스코트' 화형식을 가졌다.

이와 관련해 이 전 총재 측은 당시 모 지구당 당원이 저지른 물의였으며, 이에 대해 관계자를 문책했다고 해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은 가장 대표적인 '현직 대통령 때리기'의 일화로 기록됐다. 그 자신이 사전에 알았느냐는 문제와 관계 없이 이 화형식은 당시 '소통령'으로 통하던 김현철 씨 등의 잇단 구속으로 여론이 요동치는 가운데 'YS를 밟아야 대권 전망이 선다'는 이회창 후보 진영의 논리에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행동이었다.

이런 기억들이 사람들 뇌리에 각인돼 있는 이상, 최근 자신의 행보를 두고 "대선과는 상관없다"는 이 전 총재의 해명은 곧이곧대로 들릴 수 없다. 게다가 사람들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간 시간 속에서 '정치인 이회창'과 관련한 또 다른 기억을 가지고 있다.

다시는 공직 맡지 않겠다더니…'자기배반'의 버릇

지난 96년 15대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이 전 총재는 계속됐던 신한국당의 입당 제의와 관련해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입당이나 정치참여 문제에 대해 생각한 바가 없다"며 손사래를 쳤었다. 그러나 10여 일 만에 입장을 번복하며 총선 선대위원장을 맡아 정치활동의 첫 걸음을 내디딘 바 있다.

당시는 이 전 총재가 '대쪽' 감사원장으로 이름을 날린 뒤였고, 국무총리 직을 사퇴하면서 "다시는 공직을 맡지 않겠다"고 천명한 뒤였다.

자신의 말을 손쉽게 뒤집고 남을 짓밟는 이 전 총재의 과거 행태가 이번 대선 국면에선 반복되지 않을까? 아니, 정계은퇴의 발언은 이미 아무런 설명 없이 철회됐고 이제 남은 것은 대통령 후보로 나서느냐 아니냐는 문제뿐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대통령 후보가 되면 어떻고, 안되면 또 어떠랴. 이미 정치행위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자기 말에 대한 배반이자 과거의 버릇을 되풀이하고 있는 마당에.

그것이 혼란한 정국을 틈타 슬그머니 시작된 그의 '정치적 행보'를 단순한 '우국충정'으로만 해석할 수 없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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