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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말할 자유'…박근혜 '신념'은 스며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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빼앗긴 '말할 자유'…박근혜 '신념'은 스며든다

[대선 1년] <현대문학> 필화사건, 그리고 '언어'를 잃어버린 1년

참담하다. 문학마저 누더기가 되나. 2013년 백주에 마주한 월간 <현대문학> 필화 사건. 문예지로서 <현대문학>이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구구한 역사를 장황하게 늘어놓을 필요도 없다. 박정희 유신 시대를 소설의 소재로 사용했다는 이유 때문에 소설 연재를 거부당한 사건은 박근혜 정권 1년을 그 자체로 상징한다.

과거에 권력은 언어를 통제하기 위해 폭력을 동원했다. 한대수의 <행복의 나라로>가 박정희 유신 정권 하의 불행을 연상킨다며, 김추자의 <거짓말이야>가 국민총화에 도움되지 않는다며 그들의 말과 가락을 빼앗아 갔다. 물론 지금은 폭력을 직접 동원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언어는 통제된다. 우리 스스로 말과 이미지를 훼손시키고 있다.

<멋진 신세계>에서 올더스 헉슬리는 '수면시 교육법'을 통해 주입된 말을 내뱉는 사회, 즉 '언어가 죽은 사회'를 그렸다. 소설 속에서 총통이 "당신의 행복을 위해서 하는 것이야"라고 말하자 주인공은 "저는 안락을 원치 않습니다. 저는 신을 원합니다. 시(詩)와 진정한 위험과 자유와 선을 원합니다. 저는 죄를 원합니다"라고 답한다. <1984>에서 조지 오웰은 '뉴스피크(New Speak)'를 설정해 언어가 통제된 사회를 그렸다. 언어를 규정하는 것은 오직 '빅브러더'여야만 한다.

<현대문학> 사건은 이 정부에서 언어를 선택할 자유가 사라지고 있는 것을 상징한다. 그것을 누가 하는가. 우리 모두가 한다. 우리 모두가 언어를 선택할 자유를 옥죄고 있는 것이다. 집단적 정신 문화나, 집단 무의식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우리의 머리 속에서는 지난 1년동안 과연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 지난 17일 팝아티스트 이하 씨가 광화문 등 서울 도심에 게시한 박근혜 대통령 풍자 그림 ⓒ이하

박근혜의 '신념'은 이미 공기처럼 스며들고 있다?

2007년 공당의 대선 후보가 되기 위 대중 앞에 선 후 처음 맞닥뜨린 검증 절차에서 '박정희 평가'문제는 박근혜 캠프에서도 골치아픈 주제였다. 박근혜 대통령의 측근이 사석에서 내놓은 얘기다.

"2007년 대선 경선때 5.16은 (박근혜 당시 후보가) '구국의 혁명'이라고 했던 것, 그거 참 난감했었다. 그 때 역사 관련 질문은 매뉴얼이 있었다. '세계 2차 대전 이후 아프리카 등지에서 85개 국가가 독립을 했다. 모두 군사 독재를 겪었다. 그런데 그 중에 우리나라만 유일하게 경제적으로 성공을 이뤘다. 박정희 대통령은 다른 나라 지도자와 달랐다.' 이런 식의 매뉴얼을 박근혜 후보에게 계속 암기시켰는데, 그날 검증 청문회에서 질문이 아주 세게 나오더라.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면 쿠데타를 복원시킬까 우려스럽다' 운운하는 질문이 나오니까, 박근혜 후보가 얼떨결에 '구국의 혁명입니다'라고 해버린 거다. 그 때 어안이 벙벙해서, 박근혜 후보에게 매뉴얼이 적힌 종이를 건넸다. 그랬더니 박근혜 후보도 당황했다. 그래서 '구국의 혁명입니다' 라고 말한 뒤, 정신을 다시 차리고서는 '세계 2차 대전…' 하는 식의 매뉴얼로 말을 이어갔다. '구국의 혁명'이라는 것은, 얼떨결에 자기 본심이 나온 거지."

그리고 지난 2012년 대선. 캠프 공보단장이 "박근혜 후보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치를 한다"고 말했다가 결국 직에서 물러났다. '본심을 말한 죄'인가. 당시 대선 과정에서 "박근혜는 아버지를 넘어서야 한다"는 수많은 지적들이 나왔지만, 박 대통령에게 여전히 아버지는 '신성 불가침'의 존재였다. 그것은 기괴한 방식으로 사회에서 표출되기 시작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신념'은 이미 사회 곳곳에 관철되고 있다. 바로 언어를 통해서다. 인과 관계를 따져볼 틈도 없이 공기처럼 스며들고 있다.

박정희의 통치 수단이었던 '유신'과 '반공'은 박근혜 시대를 맞아 민영화 됐다. '일베(인터넷 커뮤니티 일간베스트의 준말) 현상'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민주화'에 부정을 덧씌우고 '산업화'에 긍정을 덧씌운다. 박정희를 숭배함과 동시에, 그들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는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각종 막말로 경멸한다.

박정희 생가가 있는 구미시의 시장은 박정희를 '반인반신'으로 표현한다. 박정희의 딸은 자연히 "반신반인의 따님"이 된다. 구미시의 박정희 전 대통령 탄생기념행사 예산은 5년새 18배로 껑충 뛰었다. 과 같은 이명박 정권의 비호 하에 탄생한 종합편성채널은 박정희 탄생 96주년 추모식을 전국에 생중계한다. 이전엔 무료로 나눠줄 <월간조선>을 잔뜩 쌓아놓은 채 보수단체 소속 노인들을 대상으로 '박정희 강연'을 해왔던 조갑제 <조갑제닷컴> 대표는 이제 종편을 통해 생중계 되는 추모식에서 그의 언어를 마음껏 말한다.

"'그 분'을 임신한 어머니는 그를 지우려고 했다. 낙태를 5번이나 시도했다고 한다. 오래된 간장 한 사발을 들이키고 높은 데서 뛰어내려도 뱃속 생명이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어머니는 아이를 낳기로 했고 그해 11월 14일 '그 분'이 태어났다. 그 분, 바로 박정희 (전) 대통령은 뱃속에서부터 어머니와 싸워서 살아남은 것이다"

조갑제 대표의 언어 속 '그 분'은 이미 신화였다. 오케스트라는 추모식에서 "새벽종이 울렸네…" 노래를 열창했다. 서울시내에는 곳곳에 '새마을기'가 다시 펄럭이고 있다. 새마을운동중앙회는 200만 조직을 가동해 '새마을 정신'을 주변에 심고 있다. '새마을 정신'의 정점에는 '그 분'이 있다.

장관들은 '5.16에 대한 견해'나 '유신헌법에 대한 견해'만 물어보면 꿀먹은 벙어리가 된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역사적, 정치적으로 다양한 평가가 진행 중"이라고 했고,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은 "답변하기 어렵다"고 했으며, 서남수 교육부 장관은 "답변을 하지 않을 수 있도록 양해를 바란다"고 말했다. 조윤선 여성부 장관은 "(5.16쿠데타에 답변할 정도로) 공부가 안돼 있다"는 창조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지난 7월에는 야당 대변인의 입에서 '귀태(鬼胎)'라는, 언뜻 보면 뜻을 헤아리기 힘든 일본식 조어가 튀어나오자, 한 극우 성향의 종편 채널이 생방송을 통해 문제의 야당 대변인을 하루종일 두들겨댔다. 시청자들에게 생소한 '귀태'의 뜻을 정확하게 설명해가면서 말이다.

최근에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전철을 밟지 말라"는 야당 의원의 고언에 "박 대통령이 암살당해야 한다는 것이냐"는 청와대 홍보수석의 엄포가 나왔다. 이 야당 의원은 졸지에 '암살을 사주'한 인물이 됐다. 이른바 '박근혜 출산' 그림을 전시했다는 이유로 경찰은 평화박물관을 지난 4월 압수수색했고, 평화박물관 전 사무처장을 지난 11월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그림의 언어, 이미지의 언어를 공개리에 전시한 게 죄라면 죄였을까.

정체를 알수 없는 보수단체들은 야권 인사나 시민단체 인사들의 발언을 추적해가며 고소 고발을 일삼고 있다. 그런 와중에 <현대문학> 필화 사건이 터졌다. 생각의 자유, 언어의 자유가 곳곳에서 부정되고 있다. 그 빈자리에 '종북'이라는 말이 광범위하게 자리잡았다. 김수영 시인은 4.19혁명 직후인 1960년 10월, '김일성 만세'라는 시를 썼다. 이 시는 당시 발표되지 못했다. 2013년 누군가 '김정은 만세'라는 시를 쓴다면 역시 발표되지 못할 것이 분명한 시대가 지금이다.

'김일성 만세'

한국의 언론자유의 출발은 이것을
인정하는 데 있는데

이것만 인정하면 되는데

이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한국
정치의 자유라고 장면(張勉)이란
관리가 우겨 대니

나는 잠이 깰 수 밖에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칠레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공산당 대선주자로 선거에 나선 적이 있다. 사회주의자였던 살바도르 아옌데에게 후보직을 양보한 후 고향으로 돌아간 그는 아옌데의 당선 소식을 듣고 기뻐했지만 1973년 미국 CIA와 피노체트 장군이 주도한 쿠데타에 직면한다. 대통령궁이 폭격당하는 상황에서 아옌데가 마지막으로 붙잡은 무기는 총이 아니라 마이크였다. 그는 라디오를 통해 '인민 만세'라는 말을 남기고 죽었다. 파블로 네루다는 그 소식을 듣고 병세가 악화돼 2주 만에 숨을 거둔다. 숨을 거두기 전 아옌데 제거에 성공한 군인들이 파블로 네루다 집을 압수수색하자 병상에 누워있던 파블로 네루다가 말했다.

"여기에서 당신들이 찾을 수 있는 유일한 무기가 하나 있다네, 그것은 시(언어)라네"

언어는 그 사회의 거울이다. 소설가에게마저 언어가 허락되지 않는 사회를 상상할 수 있는가. 그러나 박근혜 당선 1년 만에 그 상상은 현실이 됐다. 정권이 명한 게 아니다. 우리 스스로가 소설가의 언어를 빼앗아간 것이다. 누가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나. 박근혜 정권 1년, 우리 사회는 우리만의 '언어'를 잃어버렸다. 그 자리에 권력의 언어, 신화의 언어, 비이성의 언어가 자리를 잡았다. "공주님은 결국 모험을 마치고 궁으로 돌아갔다"는 식의, 괴상하면서 교훈적이지 않은 동화(Fairy Tale)같은 세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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