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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마장동이 '패션 1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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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마장동이 '패션 1번지'?

[김경민의 도시이야기]<24> 구로공단이 벤치마킹할 뉴욕 도축장 지역

미국 뉴욕 맨해튼 서남부에는 고기도축장이 밀집한 '미트패킹' 지구가 있다. 과거 이곳에는 250여 개의 도축장과 정육업체들이 있었다. 그러다 1960년대 이후 지역이 침체기에 접어들자 임대료가 저렴하게 책정됐고, 이에 따라 소호와 웨스트 빌리지에서 쫓겨난 가난한 예술가들이 1990년대부터 이곳으로 서서히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이후 미트 패킹지구는 도축업과 패션업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업종이 공존하는 지역으로 변화했다. 이곳을 가면 한편에서는 육류를 나르는 상인을 볼 수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뉴욕 최첨단 패션 아이콘들이 운영하는 상점과 갤러리를 볼 수 있다. 2004년 <뉴욕타임스>는 이런 미트패킹지구를 뉴욕에서 가장 '패셔너블'한 지역으로 선정한다.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다 보니, 이 지역은 변화무쌍하다. 새벽부터 오전까지는 도축과 관련한 활동이 이루어지고, 오후에는 패션, 그리고 저녁에는 유흥을 즐기는 곳이 된다. 하루에만 3번 모습을 바꾸는 장소성을 갖춘 것이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지역의 역사가 담겨 있는 도축업이다 뉴욕 정부는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도축업을 후세에 남길 중요한 지역 유산으로 바라봤다. 이에 2003년 미트패킹 지구를 역사 보존 지구로 지정하였다.

▲ 미국 뉴욕 맨해튼 '미트패킹' 지구. ⓒ박호근
ⓒ김경민
ⓒ곽수정

문화예술 관련 업종들이 이 지역에 들어서기 시작한 1990년대, 당시 부동산 개발업자들과 투자 은행업 종사자들은 도저히 이 지역에 투자를 할 수 없다고 봤다. 주변 환경이 매우 지저분(disgusting)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상은 빗나갔다. 오랜 역사를 지닌 건물의 노후한 벽돌과 철골을 있는 그대로 노출한 패션 매장과 카페, 음식점 등은 외려 굉장히 많은 사람들들의 관심을 끌었다. 그 독특한 분위기 덕분에 이 지역은 뉴욕 패션의 새로운 메가로 성장하게 됐다.

구로공단 낡은 건물 활용해 색다른 카페·사무실로

우리 눈에 지금 서울 구로공단의 벽돌 건물들은 누추하고 지붕들은 빨리 뜯어내서 새것으로 바꾸어야 할 대상일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누추함마저도 새 기능과 만난다면 지역 전체가 활성화할 수 있다는 사실을 미국 미트패킹 지구가 보여준다.

비록 구로공단 많은 건물이 사라지고 있고 가리봉동 일부 지역도 철거 위협 위에 놓여 있지만, 최근 과거의 흔적을 보존하고 이를 재활용하려는 노력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어 매우 고무적이다.

▲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3번 출구 인근에 있는 카페 mayB 부지. 사진은 2005년. ⓒ김경민
▲ 2013년 2월 mayB 카페 전경. ⓒ김경민
▲ 카페 mayB 의 내부 모습. ⓒ김경민

지하철 2호선 구로디지털단지역 3번 출구에 나오면 빈티지한 분위기의 브런치 카페를 만날 수 있다. 이곳은 과거 방직 공장으로 쓰인 건물로, 사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낡은 창고였다. 그러던 것을 지금은 건물 원형은 그대로 남기고 카페로 활용하고 있다. 과거 방직 공장에서 쓰던 가구들도 그대로 배치해 시간의 흔적을 느낄 수 있기도 하다. 이 카페 콘셉트은 '편안함과 추억'이다. 창고가 가진 건축적 특징과 낡은 창고가 주는 분위기의 가치를 반영한 것이다.

"사람들에게 추억을 선물하는 공간으로 운영하고 싶다" (<스포츠서울> 2011년 7월 5일. 카페 사장 인터뷰 중)

누구도 의미있게 생각하지 않았던 낡은 공장 건물을 활용하여 새로운 상업 공간으로 만들고, 이를 통해 사람들에게 향수를 제공하고 있다. 이는 신축한 현대적 건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친숙함이자 편안함이다.

이 카페가 기존 시설을 재활용했다면, 패션 아웃렛 '마리오'는 '굴뚝'을 설치하는 방식으로 과거 구로의 모습을 떠올리게끔 했다. 지금은 비록 철거됐지만, 공단의 상징물인 굴뚝이란 기억의 조각을 이용한 것이다.

그 외에도 현재 서울 금천구 공단 지역 내 패션 아웃렛에서는 기존 창고 시설을 이용하여 창고형 아웃렛을 운영 중인 곳도 있고 그를 사무실로 이용하고도 있다. 장소의 가치와 브랜드 가치를 함께 향상하려는 노력이 민간의 힘으로 구로 지역에서 진행 중이다.

▲ 세계적인 SPA 기업인 포에버21 서울 사무소. ⓒ김경민

세계적인 SPA(제조유통일괄화 의류) 기업인 '포에버21'은 2011년 말 강남구 삼성동에서 구로공단(가산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현재는 구로공단 내 과거 공장 건물을 그대로 활용하고 있다. 포에버21의 가산동 서울 사무소에는 현재 디자인, Textile MD 등 의류 산업의 핵심 기능 및 일반 사무를 담당하는 2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고 있다. 글로벌 패션 기업의 가산동 이주가 시사하는 바는 아주 크다. 과거 공장 이미지가 강한 구로가 패션이라는 새로운 문화를 입고 탈바꿈하며 대한민국 패션 1번지로 성장 중이라는 증거다.

이처럼 민간에서는 한국의 근대 시기 흔적을 적절히 이용하는 데 반해, 삼우창고의 예처럼 공공기관들은 외려 과거를 지우고 있단 사실은 못내 아쉽다. (☞ 관련 글 : 기억의 상실…'삼우창고 유감')

□ 주석
① Renzi, J., 〈The raw and the cooked: From red light to limelight, New York's meatpacking district redesigns for fashion〉, 1 Apr 2003, 《Interior Design》.
② 봉일범, 2009, 미트패킹으로부터의 교훈, 건축, 53(2): 80-81
③ Shockley, Jay 2003, "Gansevoort Market Historic District Designation Report part 1", New York City Landmarks Preservation Commission.
④ Meatpacking District Improvement Association,
http://www.meatpacking-district.com

* 다음 주 수요일 발행될 연재에서 구로공단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김경민의 도시 이야기
<1> 서울, '200년 역사' 상하이보다 못하다…왜?
<2> 휘청휘청 용산 개발, '티엔즈팡'만 미리 알았어도…
<3>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역사 속으로 사라지나
<4> 서울 최고의 한옥 지구 만든 그는 왜 잊혔나
<5> 당신이 몰랐던 피맛골, 아직 살아 있다
<6> 박정희 시대 요정 정치 산실, 꼭 헐어야 했나
<7> MB·오세훈 '뉴타운 광풍'과는 다른 '낙원삘딍' 탄생사
<8> 음악인들의 성지, 기어이 밀어버려야겠나
<9> 동대문, 세계적 패션 도시 뉴욕·밀라노처럼 되려면?
<10> 봉제 공장 외면한 '甲' 동대문, 나홀로 생존 가능할까?
<11> 창신숭의 뉴타운 해제, "동대문 패션 타운 몰락할 뻔"
<12> 동대문에선 왜 자라·유니클로가 탄생 못하나
<13> 5000억 들어간 '오세훈 졸작',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14> 오세훈의 전시행정이 낳은 비극, 동대문디자인플라자
<15> 창신동, 패션과 관광산업 메카 가능성
<16> '슈퍼 갑' 동대문에 대응할 '창신동 FTA' 만들자
<17> "오세훈의 야망, 동조한 건축가…역사 파괴한 新청사"
<18> 오세훈의 천박한 논리 "청사 철거로 일제 잔재 청산"
<19> 벽화마을 프로젝트 성공사례 '동피랑 벽화마을'
<20> 독립선언서 낭독 태화관이 보스턴에 있었다면…
<21> 공단에서 IT와 패션의 '메카'로…구로의 변신
<22> 탄광촌이 세계문화유산으로 탈바꿈, 어떻게?
<23> 옛 흔적도, 새 휴식처도 없는 '팍팍한' 구로공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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