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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량

[한윤수의 '오랑캐꽃']<214>

세계적인 그릇 메이커에 OEM(주문자생산방식)으로 플라스틱 용기를 제조해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있다. 연 매출 40억이니 아주 작은 회사도 아니다.

며칠 동안 만들어 보낸 그릇이 모두 불량이라며 반품이 들어왔다. 회사는 발칵 뒤집혔다. 생돈 5, 6천만원을 고스란히 손해 보았을 뿐 아니라 최우량 메이커와의 거래가 끊어졌기 때문이다.
공장은 올 스톱되었다.
누구의 책임이냐?
태국인 노동자를 감독하는 한국인 과장의 책임인가? 아니면 직접 기계를 돌린 태국인 7명의 책임인가?

귀싸다(가명)와 뺨나카(가명) 조(組)가 불량의 원흉으로 가장 의심 받았다.
어쨌든 뺨나카는 사과했다.
"불량 난 거 미안해요."
그러나 귀싸다는 절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나 잘못한 거 없어요."

귀싸다가 사과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기계에서 찍어져 나오는 플라스틱 김치통을 검사하고 스티커를 붙이고 포장하는 작업을 했다. 하지만 너무 빨리 쏟아져 나오는 김치통에 생긴 작은 기포(氣泡)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귀싸다는 지금도 그게 자기 잘못은 아니라고 여긴다. 입사한 지 4개월밖에 안된 초짜한테 검사와 스티커와 포장을 한꺼번에 시킨 회사 잘못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사장님은 귀싸다에게 서운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

▲ ⓒ한윤수

공장이 돌아가지 않을 때 노동자에게 닥친 가장 큰 불행은 월급이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집에 돈을 부칠 수 없게 된 태국인들이 직장 이동을 요구했다.
사장님은 태국인들을 순순히 풀어주었다.

그들이 나를 찾아왔다.
월급을 받아달라고.
급하긴 급할 것이다.
태국에 있는 가족들 생활비가 끊어지면 안 되니까.

회사에 전화를 걸었다.
사장님이 말했다.
"어렵습니다. 주문이 없으니까요. 지금은 돈 나올 데가 없어요."
"어쩌죠? 노동자들도 딸린 식구가 있어서 딱한데."
"딱하지만 일단 공장을 돌려야 돈이 돌 거 아닙니까?"
"그러게요. 노동부에 진정할 수도 없고."
"6월 말까지 넉 달만 기다려주시면 그때까지 해결하겠습니다."
이 사람을 믿어야지, 별다른 방법이 없다.
일단 한 호흡을 쉬고 말했다.
"저희도 노동자의 위탁을 받고 하는 일이라 저희 마음대로는 할 수 없습니다만, 일단 한 번 양해를 구해보겠습니다."

일요일 태국인 7명이 발안에 왔다.
나는 그들에게 상황을 설명하고 이해를 구했다.
"넉 달만 믿고 기다리면 좋겠어요. 회사 부도나는 것보다 낫잖아?"
그들은 이해했다.
다만 돈이 너무 없다고 호소했다.
"반 정도라도 받았으면 좋겠어요."

다음날 사장님에게 다시 전화를 걸어 노동자들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사장님은 잘라 말했다.
"정말로 돈이 없어요. 어렵습니다."

나는 전화를 일단 끊었다. 그리고 사장님 모르게 경리 직원에게 물어보았다. 정말 어려운지? 직원이 말했다.

"기계 두 대 돌리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요. 제품 만드는 게 아니라 거래선 뚫으려고 샘플 만드는 거예요. 메이커와 거래가 끊어진 게 타격이 커요. 한국 사람도 두 달 치 못 받았어요. 사장님이 일부러 돈 없다고 하는 게 아니니까 태국 애들한테도 잘 좀 얘기해주세요."
"잘 알았습니다."

그 다음 일요일.
노동자들을 불러 다시 얘기했다.
"돈 정말 없어."
"그럼 어떻게 해요?"
"어떡하긴? 6월 말까지 기다려야지."

그들은 서로 쳐다보다가
마침내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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