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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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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서

[한윤수의 '오랑캐꽃']<206>

1호실 터줏대감 한국인 G과장은 술버릇이 겹으로 안 좋다. 밤새도록 마시고 밤새도록 떠든다.
문제는 기숙사 동료들이 피해를 보는 것.

기숙사에는 방이 다섯 있다.
1호실에서 그와 같이 기거하는 한국인 주임은 같은 술꾼이고 가끔은 같이 떠드는 편이라 그다지 심한 피해를 본다고 볼 수 없다.
2호실에 사는 중국인이 가장 피해가 크다. 매일 밤잠을 설치니까.

2월 24일 새벽 2시 중국인이 벽을 두드리며 또 한 차례 항의했다.
"좀 조용히 하라니까."

저 중국놈 확 쌔려줄까? G과장은 화가 났다. 하지만 참았다. 중국인은 자신과 나이가 비슷한 40대일 뿐 아니라 덩치가 크고 좀 무섭게 생겼기 때문이다.

담배가 피고 싶다, 하지만 담배가 보이지 않는다.
복도로 나왔다. 2호실 중국인을 피해 3호실 문을 두드렸으나 아무도 없다. 아, 참. 3호실 베트남 애들은 지금 야근 중이지.
술이 아무리 취했어도 4호실은 통과다. 베트남 여자 혼자 있으니까.
5호실로 갔다. 이 방이 제일 만만하고 좋다. 담배 피는 동(가명)이 있으니까. 담배 피는 사람끼리는 잘 통하지 않는가.
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대답이 없다. 다시 문을 두드렸다. 또 대답이 없다. 이놈의 자식 봐라! 부아가 나서
"문 열어!"
하며 더 세게 두들겼다.
한참만에야 꾸무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겨우 문이 열린다.
"담배 없냐?"
"담배가 어딨어요?"
벽을 한 손으로 짚고 엉거주춤 G과장을 쳐다보는 얼굴엔 불평이 가득하다.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문도 늦게 열었지, 더군다나 담배도 없지,
"임마, 담배도 없는 놈이 엇따 대고 눈을 부라려?"
주먹이 나갔다.
퍽 퍽 퍽. 베트남 인은 금방 죽는다고 소리를 지른다. G과장은 순간 더 화가 나서 연신 주먹을 휘둘렀다. 종로에서 뺨 맞고 한강에서 눈 흘긴다고, 그는 중국인에게 욕을 먹고 베트남인에게 화풀이 한 것이다.
정신을 차려서 보니 맞은 건 동이 아니다.
동은 자고 있고, 엉뚱하게 잠을 먼저 깬 썬(가명)이 대신 맞은 것이다.
썬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담배가 없다고 한 것뿐인데!
▲ ⓒ한윤수

썬이 입원했다.
겁이 난 G과장이 L부장에게 보고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좀 때렸는데요."
L부장은 병원으로 달려갔다.
기막힌 건 L부장이 폭행을 당한 썬에게 주의를 준 것이다.
"맞았다고 하면 안 돼. 폭행은 보험이 안 되니까."
덕분에 썬은 병원에서 맞았다는 소리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하지만 말 못하는 것처럼 비참한 게 어디 있으랴!

썬의 친구들이 나를 찾아왔다.
"어떡하면 좋아요?"
"어떡하긴? 진단서 떼어서 고소해야지!"
"폭행은 의료보험 안 된다면서요."
"보험이 되건 안 되건 왜 맞은 사람이 걱정해? 때린 사람이 걱정해야지!"
"그럼 맞았다고 해도 되죠?"
"물론이지."

3주 진단이 나왔다.
진단서를 근거로 폭행한 G과장을 경찰에 고소했다.
나는 가해자를 처벌하고 썬의 직장을 옮겨줄 작정이었다. 한 번 폭행한 자는 상습적으로 폭행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회사 옮길 거지?"
"예."
썬의 마음은 확고해 보였다.

G과장은 병원으로 찾아와서 사과했다.
"잘못했어. 내가 죽일 놈이야."
그 말은 진심인 것 같았다. 술만 안 먹으면 그는 천하에 없는 호인이기 때문이다. 진심어린 사과를 받고 썬의 마음이 풀어졌다.

치료비가 130만원 나왔다. 치료비를 계산한 G과장은
"미안해. 얼마 안 돼."
하며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속에는 50만원이 들어 있었다.
그러나 썬은 봉투를 받지 않았다.
"사과했으니 됐어요."
썬은 다 용서했다.
그리고 그날 즉시 고소를 취하했다.
▲ ⓒ한윤수

썬은 내가 걱정할까봐 일부러 발안으로 찾아왔다.
"저, 회사에 그냥 남을래요."
내가 물었다.
"정말 괜찮겠어?"
"괜찮아요."
그의 표정은 무서울 정도로 평온해 보였다.
(내가 이래서 베트남 사람 무섭다고 하는 것이다.)

썬은 그 대신, 한 달 휴가를 신청했다.
사장님은 흔쾌히 허락했다.

그는 지금 베트남에 가고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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