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릿이 다닌 회사는 그럴듯한 미끼를 내세워 퇴직금을 주지 않는 특이한 회사다. 역설적이게도 회사 이름이 '클린 00' 인데 전혀 클린(clean)하지가 않다.
보릿에게 내민 미끼는 재입국이었다.
"퇴직금 안 받으면 다시 들어오게 해줄게."
새빨간 거짓말이다.
오로지 퇴직금을 떼어먹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
재입국 수속을 전혀 밟지 않았으니까.
보릿은 뭔가 미심쩍어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회사에서 재입국 수속 안 밟았어. 보릿 절대로 못 들어와."
"못 들어와요?"
"그럼! 퇴직금 받고 천천히 가는 게 좋겠어."
그러나 보릿은 *빨리 가겠다고 우겼다.
할 수 없이 필요한 서류를 받아놓고 그를 보냈다.
▲ ⓒ한윤수 |
노동부에 진정서를 보냈다.
감독관은 회사 경리 담당자를 불러 퇴직금 체불 여부를 조사했다.
경리 담당자는 상당히 당황한 것 같았다.
발안에도 몇 번 찾아왔으니까.
"우리 회사 역사상 퇴직금 준 적이 없다니까요."
"한국 사람한테도?"
"예. 한국 사람한테도요!"
그 동네는 바보만 사나? 실소가 나왔지만, 짐짓 모른 체하고 물었다.
"그럼 이 부장님 퇴직할 때도 퇴직금 안 받을 겁니까?" ,
"그야 다르지요."
한 달 후.
감독관은 보릿의 퇴직금으로 364만원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기막힌 일이 발생했다.
캄보디아에서 보릿이 진정취하서를 보낸 것이다.
왜 취하서를 보냈을까?
364만원은 적은 돈이 아닌데!
보릿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이에 싸인했어?"
"예."
"아이구, 이 바보야."
"그럼 돈 못 받아요?"
"못 받지!"
*방법이 없다.
알고 보니 회사에서 국제전화를 걸어 보릿을 꼬신 것이다.
취하서에 싸인해 보내면 다시 들어오게 해주겠다고!
회사 이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퇴직금 안 줘서 살림 쫌 나아지셨습니까?"
"예?"
"취하서를 받아내셨던데?"
"아! 예."
"재주 좋으시군. 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보릿이 다시 들어올 방법이 정말 있습니까?"
이 부장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솔직히 방법은 없는데, 일말의 가능성은 있다네요."
<없는데 있다!>
말장난이다.
하지만 이런 말장난에도 속는 것이 인간의 미련이다.
*빨리 가겠다고 우겨 :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혹시 빨리 가면 빨리 올 줄 알고 조바심을 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방법이 없다 : 당사자가 돈을 안 받겠다면 도와줄 방법이 없다. 내가 도와주려 해도 회사측에서 "본인이 안 받겠다는데 왜 제 3자가 나섭니까?"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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