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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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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련

[한윤수의 '오랑캐꽃']<199>

오늘은 미련이 남아서 미련을 떠는 캄보디아인 얘기를 하겠다.

보릿이 다닌 회사는 그럴듯한 미끼를 내세워 퇴직금을 주지 않는 특이한 회사다. 역설적이게도 회사 이름이 '클린 00' 인데 전혀 클린(clean)하지가 않다.
보릿에게 내민 미끼는 재입국이었다.
"퇴직금 안 받으면 다시 들어오게 해줄게."
새빨간 거짓말이다.
오로지 퇴직금을 떼어먹기 위한 술수에 불과하다.
재입국 수속을 전혀 밟지 않았으니까.

보릿은 뭔가 미심쩍어서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에게 주의를 주었다.
"회사에서 재입국 수속 안 밟았어. 보릿 절대로 못 들어와."
"못 들어와요?"
"그럼! 퇴직금 받고 천천히 가는 게 좋겠어."
그러나 보릿은 *빨리 가겠다고 우겼다.
할 수 없이 필요한 서류를 받아놓고 그를 보냈다.

▲ ⓒ한윤수

노동부에 진정서를 보냈다.
감독관은 회사 경리 담당자를 불러 퇴직금 체불 여부를 조사했다.
경리 담당자는 상당히 당황한 것 같았다.
발안에도 몇 번 찾아왔으니까.
"우리 회사 역사상 퇴직금 준 적이 없다니까요."
"한국 사람한테도?"
"예. 한국 사람한테도요!"
그 동네는 바보만 사나? 실소가 나왔지만, 짐짓 모른 체하고 물었다.
"그럼 이 부장님 퇴직할 때도 퇴직금 안 받을 겁니까?" ,
"그야 다르지요."

한 달 후.
감독관은 보릿의 퇴직금으로 364만원을 지급하라는 명령을 내렸다.
이때 기막힌 일이 발생했다.
캄보디아에서 보릿이 진정취하서를 보낸 것이다.
왜 취하서를 보냈을까?
364만원은 적은 돈이 아닌데!

보릿에게 전화를 걸었다.
"종이에 싸인했어?"
"예."
"아이구, 이 바보야."
"그럼 돈 못 받아요?"
"못 받지!"
*방법이 없다.

알고 보니 회사에서 국제전화를 걸어 보릿을 꼬신 것이다.
취하서에 싸인해 보내면 다시 들어오게 해주겠다고!

회사 이 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퇴직금 안 줘서 살림 쫌 나아지셨습니까?"
"예?"
"취하서를 받아내셨던데?"
"아! 예."
"재주 좋으시군. 내 궁금해서 물어보는 건데, 보릿이 다시 들어올 방법이 정말 있습니까?"
이 부장은 천연덕스럽게 대답했다.
"솔직히 방법은 없는데, 일말의 가능성은 있다네요."
<없는데 있다!>
말장난이다.

하지만 이런 말장난에도 속는 것이 인간의 미련이다.

*빨리 가겠다고 우겨 :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혹시 빨리 가면 빨리 올 줄 알고 조바심을 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비로소 든다.

*방법이 없다 : 당사자가 돈을 안 받겠다면 도와줄 방법이 없다. 내가 도와주려 해도 회사측에서 "본인이 안 받겠다는데 왜 제 3자가 나섭니까?"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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