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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밑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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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밑이 어둡다

[한윤수의 '오랑캐꽃']<158>

물에 빠진 사람 지푸라기라도 잡듯이, 곤경에 빠진 외국인들은 아무나 붙잡고 도와달라고 한다. 이런 상황을 기막히게 잘 이용하는 것이 브로커다.
태국인들이 잘 모이는 태국 식품가게 주위에는 먹잇감을 노리는 브로커도 서성거린다고 보면 된다.
월급을 못 받은 태국인 노동자 솜바트(가명)는 식품가게에 들린 한국인 브로커에게 돈을 받아달라고 부탁했다. 브로커는 솜바트를 데리고 두 번 노동부에 갔다. 한 번 가주는데 10만원씩을 받았으니 그 브로커는 노동부에 두 번 가주고 20만원을 번 것이다. 돈 벌기 참 쉽다.
하지만 솜바트는 노동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모르니 헛돈만 쓴 셈이다. 결국 그는 우리 센터를 찾아와 다시 도움을 청했다.
노동자들은 이처럼 한국인 브로커에게만 당하는 것이 아니다. 기가 막힌 것은 동족인 브로커에게 더 잘 당한다는 점이다.

태국인 티낫다(가명)와 남편은 불법체류자로 퇴직금을 못 받았다. 합해서 약 360만원.
불법체류자가 퇴직금을 받는 것은 상당히 어렵고 까다롭다, 근무기록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이 돈을 받아주기 위하여 무진 애를 썼다. 회사에 하도 전화를 많이 하는 바람에 불안해진 사장님과 경리사원이 우리 센터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어쨌든 그래서 티낫다 부부는 퇴직금을 받았고 그것으로 사건은 종료되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뒤늦게 티낫다 부부가 태국인 브로커에게 커미션으로 퇴직금의 10프로를 주었고 그 브로커가 바로 나와 친한 태국인이라는 게 밝혀진 것이다. 내 친구가 브로커였다는 사실에 나는 경악했다.

티낫다 부부를 센터로 데려온 것은 동(가명)이다. 동은 원래 고용허가제로 입국한 비전문(E-9) 노동자였다. 하지만 지금은 기업투자(D-8)로 비자를 바꾸었고 어엿한 태국 식당 주인이 되었으니 상당한 재주꾼이다. 그는 인정이 있어서 월급이나 퇴직금을 못 받은 태국인들을 데려와 도와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하루는 출입국 직원에 쫓기던 여성들을 택시로 데려오기도 했다. 아마 그가 데려온 사람이 100명은 안되어도 50명은 넘을 것 같다. 그런 그가 체불금의 10프로씩을 받는 브로커였다니 얼마나 많은 돈을 태국인 동족에게서 뜯어냈단 말인가? 1인당 받은 체불금을 평균 150만원씩만 잡아보자. 그중 10프로면 15만원이고 여기에다 50명을 곱하면 750만원!
나는 동을 당장 오라고 했고, 오지 않으면 경찰을 부르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다음날 오후 동은 눈치를 슬금슬금 보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동, 돈 받았어요?"
"예."
"왜 돈을 받아?"
"기름값 받았어요. 태국 사람 내 차로 데려와서."
동은 지금 거짓말을 하고 있다. 기름값은 기름값대로 받고, 기름값과 별도로 커미션을 받았다는 것을 내가 알기 때문이다. 나는 계속 물었다.
"목사님이 태국 사람 도와주고 돈 받아요? 안 받아요?"
"안 받아요."
"목사님은 다른 나라 사람인데도 돈 안 받는데, 동은 같은 태국 사람이면서 태국 사람 돈 받아?"
"돈 받는 한국사람 많아요."
전혀 반성의 기색이 없다. 인연을 끊기로 결심했다.
"한 번 더 돈 받으면 경찰에 얘기해서 동 감옥 가고, 감옥에서 나오면 태국으로 보내버릴 거야. 알았어요?"
"예. 알았어요. 이제 돈 안 받을 게요."
하지만 나는 선을 그었다.
"동, 이제 우리 센터 오지 마."
그는 당황해 하면서도 어디서 부탁을 받았는지 *체불금품확인원 3장을 내밀었다.
"이렇게 도와줄 거 많은데 발안센터 안 도와줘요?"
"안 도와줘. 나가!"
그는 복도로 나가 담배를 뻑뻑 피웠다.
하지만 나는 그를 더 이상 보지 않았다.

*체불금품확인원 : 노동자들이 체불금품확인원만 갖고 있어 보았자 아무 소용이 없다. 이 확인원을 가지고 회사를 상대로 민사소송을 해서 이겨야 체불금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외국인 노동자의 소송을 도와주는 곳이 많지 않다는 게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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