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인 2007년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에서는 다섯 팀이 출마해 경쟁률이 5대 1이었고, 결선투표까지 벌어졌다. 현대차를 비롯해 자동차 4사가 합류하면서 14만 명의 조합원을 가진 거대 노조에 대한 기대가 컸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올해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에는 단일 후보가 출마해 24일부터 사흘간 찬반 투표로 위원장을 뽑는다.
금속노조 위원장 선거와 달리 금속노조 산하 최대 사업장인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 선거는 인기가 높다. 현대차는 9월 25일 확대운영위원회를 열어 선거관리위원회를 구성하고 후보 등록을 받아 10월 중하순에 선거가 진행될 예정인데, 이경훈 전 지부장을 포함해 5명이 출마할 전망이다.
기아차 노조 지부장 선거에는 전직 위원장과 지부장 출신 4명을 포함해 7명이 출마했다. 1차 투표일은 10월 8일이며 1차 선거에서 50%를 넘지 못하면 1, 2위 후보가 10월 17일 결선을 치른다. 금속노조 선거는 썰렁하지만 대기업노조 선거는 뜨겁다.
금속노조 선거 썰렁, 현대·기아차지부 후끈
하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싸늘하고, 사회운동 진영도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대기업 노조 이기주의'라는 정권과 자본의 왜곡을 감안하더라도 900만 비정규직을 끌어안고 노동운동의 중심이 되어야 할 대기업 노조가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해 임금 교섭에서 현대차와 기아차는 기본급 9만7000원 인상, 성과격려금 500%+850만 원, 각종 수당과 포인트 등 1인당 평균 2879만 원의 임금 인상 효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현대차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10년 넘게 싸우고 있는 핵심적인 요구인 '사내 생산 공정 및 상시 업무 하도급 금지 및 2013년 내 정규직 전환'이라는 요구는 불법 파견 특별 교섭을 이유로 조용히 철회했다.
기아차 정규직 노조의 올해 1번 요구안은 신규 채용 강행에 항의해 온몸에 시너를 끼얹고 분신했던 광주공장 사내 하청 김학종 조직부장의 뜻에 따라 '사내 하청 정규직화'였다. 그러나 사내 하청 정규직 전환의 요구는 "채용 기준에 적합한 인원의 일부에 대하여 신규 인원 소요 시 채용을 추진한다"라는 기약 없는 약속으로 바뀌었다.
1997년 구제금융 사태 이후 한국의 노동시장은 정규직 중심의 안정된 일자리에서 비정규직 중심의 비정규직 일자리로 급속히 바뀌어갔고, 2000년 현대차 정규직 노조가 회사와 사내 하청 노동자를 16.9% 사용하기로 합의하면서 사내 하청 노동자들이 불법 파견임에도 불구하고 제조업 생산 현장에 들어와 정규직 고용의 방패막이가 됐다.
그러나 현대차, 기아차, 한국지엠 등 대공장 정규직 노조는 조합원 정서를 이유로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요구와 차별 해소에 대해 소극적인 태도를 취해왔고, 이로 인해 대기업 노조에 대한 사회적 여론은 싸늘해졌다. 현대차와 한국지엠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 노조의 조합원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대기업 노조는 절반도 되지 않는 임금을 받으면서 더 힘들게 일하고 있는 비정규직 사내 하청 노동자들을 외면한 채 정규직 조합원들의 일시금을 더 받기 위해 목을 맸다. 시민사회운동을 하는 사람들조차 대기업 노조에 싸늘해진 이유는 온건파에서 강경파까지 조금도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다.
대기업 노조에 대해 사회운동조차 싸늘한 이유
이런 와중에 현대차 울산공장에 이어 두 번째로 큰 기아차 화성공장의 노조 지회장 선거에 노동자들, 특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관심과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상 처음으로 비정규직 노동자가 대기업 정규직 노조의 지회장 후보로 나섰기 때문이다.
금속노조 기아차지부는 현대차, 한국지엠 등과 달리 2008년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가 통합해 1사1노조를 만들었기 때문에 비정규직 조합원이 정규직 노조 선거에 출마가 가능하지만 실제로 비정규직이 정규직 노조 선거의 후보로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인공은 기아차 화성공장에서 사내 하청 노동자로 13년째 일하고 있는 김영성 조합원이다. 그는 야학에서 노동운동을 배웠고, 서울의 한 금형 공장에서 노동자의 삶을 시작해 여러 공장을 다니며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싸웠다. 2001년 기아차 화성공장의 사내 하청업체인 신성물류에 들어와 2005년 기아차 비정규직 노조를 만들고 초대 지회장을 맡았다.
당시 그는 비정규직 노조 파업, 한미FTA 반대 파업, 지역 연대 파업 등으로 2006년과 2007년 두 차례 구속됐고 공장 안에서 2년이 넘는 수배 생활을 했다. 당시 기아차 비정규직 노조는 전국 사내 하청 노동자들의 모범이었고, 전국적인 연대 파업의 중심이었다.
김영성 후보는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가 통합된 후 비정규직 노동자로는 처음으로 2010년 정규직 노조의 조직실장을 맡기도 했고, 화성공장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가 함께 만든 현장 조직 '노동 해방을 향한 전진'의 의장이었다. 그는 정규직 조합원인 정찬남 수석부지회장 후보, 정현성 사무장 후보와 함께 출마했다.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노조 임원 후보에 동반 출마
김영성 후보조는 "비정규직·정규직이 함께 나섰습니다"라며 '지긋지긋하다 노사 협조! 민주노조 복원! 비정규직 없는 공장!'을 캐치프레이즈로 걸었다. 누구나 입버릇처럼 외치지만 실천하지 않는 '비정규직 철폐'가 아니라 임기인 2년 내에 비정규직 없는 기아차 화성공장을 만들겠다는 약속이다.
그는 핵심 공약으로 노동시간 단축, 생활임금 쟁취와 함께 △비정규직 자녀 학자금 지원 정규직과 동일 적용(2014년 내 즉각 시행) △모든 사내 하청의 정규직 전환(임기 내 전환) △계약직 및 2·3차 하청 노동자 조합원 인정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전환시키고 차별을 해소하는 공약을 전면에 내세웠다.
기아차지부 화성지회장 선거에는 비정규직 후보인 김영성 후보조를 포함해 8팀이 출마했으며 투표일은 10월 8일이다. 기아차 화성지회는 정규직 조합원 1만 명, 비정규직 조합원 1800명 등 1만200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김영성 후보조는 2200명의 정규직과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추천서를 받아 출마했다.
정규직이 압도적으로 많은 공장에서 비정규직 지회장 후보가 의미 있는 득표를 보일지는 미지수다. 하지만 사상 처음으로 비정규직과 정규직이 함께 노조 임원으로 출마하는 것은 회사가 만들어놓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분열을 넘어서고, 비정규직이 정규직 고용 안정의 방패막이가 아니라 함께 손잡고 싸워야 할 동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강경파와 온건파를 막론하고 노사 협조주의를 통해 비정규직을 외면하고 정규직의 일시금에 매달려왔던 대기업의 노동운동이 900만 비정규직을 껴안은 연대와 실천의 운동으로 재편되어야 하며, 재편의 속도가 더욱 빨라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 <레디앙>, <참세상>에도 송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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