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법안 싸움이 코 앞으로 다가왔다. 민주당은 6월 임시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반드시 통과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갑을 논란'이 사회적 이슈로 등장한데다 '야당본색'을 되찾겠다는 의지가 6월 국회로 모아져 있다. 여기에 새로 선출된 여야 원내대표들의 첫번째 경합장이라는 면에서 6월 국회의 각오가 남다르다.
지난 4일 출범한 김한길 대표체제는 '을(乙)을 위한 정당'을 자처하고 있다. 갑을 관계의 불균형 해소는 경제민주화의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민주당이 을(乙) 방점을 찍었다는 건 경제민주화에 '올인'하겠다는 의미다.
김한길 대표는 취임 이후 하루가 멀다하고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의 조속한 통과를 새누리당에 요구하고 있다. 22일에도 김한길 대표는 최고위원회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대선후보로서 가장 앞세운 공약이 경제민주화였지만 정작 대통령이 되자 가장 먼저 버린 것도 경제민주화인 것 같다"고 비판했다.
그는 최경환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속도조절론'에 대해서도 "'속도조절론'과 '갑(甲)에게 부담되는 경제민주화는 더 신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새누리당에서 나오고 있다"며 "새누리당과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에 대한 진정성을 국민 앞에 보여주기를 요구한다"고 말했다.
전병헌 민주당 원내대표도 "'속도조절', '경제 살리는 경제민주화'라는 수식어를 가져다 붙이는데 경제민주화 법안을 추진하는 데 있어 제동장치를 자꾸 부착하려는 건 아닌지 매우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경제민주화 이슈 선점에 애쓰는 민주당
민주당은 새누리당을 향한 공세 외에도 경제민주화 이슈 선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지난 20일 출범한 '을(乙)지키기 경제민주화 추진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추진위는 홍종학 의원 중심으로 입법 분과를 설치해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의 우선순위를 점검키로 했다. 신문고(유은혜 의원), 법률지원(박범계 의원) 등으로 현장의 목소리도 챙기기로 했다.
추진위 첫 회의에서 우원식 경제민주화추진위원회 위원장은 "모든 다른 횡포로부터 고통받는 을의 권리를 지켜나가는 데 앞서나가겠다"며 "우선 노동이 차별받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겠다"고 위원회 출범 배경을 설명했다.
김한길 대표도 "6월 국회에서 우리가 경제민주화 관련 법안을 제대로 처리한다면 국민이 '민주당이 이제 변했구나, 제대로 필요한 일을 하는구나'라고 평가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뿐만 아니라 지난 16일에는 김 대표와 현역의원 72명이 광주로 내려가 "광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은 정치민주화를 넘어 '갑'(甲)인 경제권력에 아파하는 '을'을 위한 경제민주화라고 우리는 믿는다"는 내용의 '을을 위한 광주 선언'을 발표하기도 했다.
법안 발의도 진행 중이다. 민병두 민주당 의원은 이른바 '을지로법'('을'을 '지'키는 'Law') 발의한다고 밝혔다. 현재 공정위의 업무영역 네 가지 중 불공정거래행위 규제와 관련된 '갑을관계 3법'에 한해서만 기존 공정위만이 가지고 있었던 조사, 고발, 조정 권한을 17개 광역지자체장에게 분권화하자는 게 주요골자다.
민주당 견제에 나선 새누리당
이렇듯 민주당이 경제민주화 법안과 관련해서 공격적이라면 새누리당은 방어에 가깝다. 치고 나가기보단 야당 공세를 견제하는 모양새다. 6월 국회에서 경제민주화 관련 입법을 동시다발적으로 추진하려는 민주당의 공세를 사전 차단하겠다는 포석으로 풀이된다.
민주당이 '을을 위한 정당'을 내세웠다면 새누리당은 '갑을 상생'을 내세우고 있다.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는 이날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당 정책위에서는 6월 임시국회에서 '갑을 상생' 도모 법안을 우선 처리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고,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도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한쪽이 힘의 논리를 악용해 횡포를 부리면 갑을 모두 공멸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상생'을 강조한 뒤 "갑을 논란은 경제민주화의 범위이고, 경제민주화는 새누리당의 총선과 대선 주요 공약인 만큼 당이 빈틈없이 준비해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현재 상법과 공정거래법이 있는데도 관련법의 빈틈을 노려 이런 '갑을' 사태가 야기되는 만큼 새로운 법보다는 기존 법을 보완하는 방향이 옳을 것"이라며 개정안에 힘을 실어줬다. 새누리당은 기존 공정거래법을 개정한다는 입장이지만, 민주당은 대리점에 관한 법률을 새로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날 황 대표의 발언은 민주당이 '을을 위한 정당'을 자처하며 경제민주화 관련법안의 주도권을 잡아가는 상황에서 프레임 싸움에 밀리지 않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경실모, 공정거래법 개정안 발의 예정
경실모 대표인 남경필 의원도 "현재 민주당에서 추진하고 있는 갑을관계 법안은 단편적이고 현상적인 것만 해결하는 방안"이라며 "새누리당은 문제의 원인을 구조적인 측면에서 파헤치고 입체적으로 다루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종훈 의원이 발의를 준비하고 있는 '공정거래법 개정안' 내용 가운데 논란이 되고 있는 '집단 소송제 도입'과 관련, "물론 논란의 여지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반드시 필요한 사안"이라고 밝혔다.
집단 소송제는 피해자의 일부가 소송을 걸어 이기면 같은 피해를 본 다른 사람들은 따로 소송을 걸지 않아도 똑같은 보상을 받을 수 있게 하는 제도다.
그는 "부작용이 있다고 한다면 기존의 국정과제에 집단소송 대상으로 포함된 담합에다가 불공정거래와 독과점에 대해서까지 집단소송제 확대 도입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며 "집단소송제는 6월 임시국회에서 쟁점이 될 가장 큰 이슈로 보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입장 정리를 해 나가는 토론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새누리당 내 전·현직 의원 모임인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이 논의한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대기업과 영업점 간 불공정거래 근절방안을 담고 있다. 일반적인 불공정행위에 대해서는 손해액의 3배, 고의적이거나 반복적인 불공정거래에 대해서는 최대 10배를 보상토록 하는 게 주요골자다.
새누리당은 다음 주 초 개정안을 발의하고, 당 원내지도부와 협의한 후 정책의총 등을 통해 당론화하는 과정을 거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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