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내 기류가 묘하다. 박근혜 대통령이 경제민주화 입법에 제동을 걸면서부터다. 이한구 원내대표 등은 대통령 발언 이후, 기다렸다는 듯이 경제민주화에 대한 우려를 쏟아내고 있다. 반면, 당내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 소속 의원 중심으로는 경제민주화 후퇴 불가론이 터져 나오고 있다.
경실모를 이끌고 있는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은 17일 국회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해 "경제 민주화는 인기영합적인 것도 아니고 경제활동을 위축시키는 것도 일자리를 줄이는 것도 아니다"라며 "지도부가 미리 선을 긋거나 경제민주화를 부정해선 안 된다"고 이한구 원내대표를 겨냥했다.
앞서 이 원내대표는 16일 회의에서 "단기적인 시각으로 대중 인기에 영합하는 식의 접근으론 경제를 살려내기 힘들다"며 "기업의 정상적 경제 활동을 신나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경필 "경제민주화, 기업 죽인다는 건 본질 왜곡"
남 의원은 "경제민주화의 본질은 기업이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있도록 시장 산업 환경을 조성하자는데 목표가 있다"며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 등은 대기업의 지배력을 부당하게 확장시켜 협력업체 등에게는 거래 불공정을 가져온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렇게 되면 사회적 비용과 갈등이 증폭되는 악순환이 커진다"며 "결국 대기업 스스로의 경제능력, 안정성도 위기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에 "경제민주화를 논의하자는 것이 기업을 죽이고 경제를 약화시킨다는 건 본질을 왜곡시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당 지도부에게도 "경제민주화가 너무 많이 나가고 적게 나가고 식의 강도 조절식 접근보다는 근본적인 구조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인식으로 함께 가야 한다"며 "당 지도부는 이 법안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이견을 줄여가도록 보장하는 방향으로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열린 회의에서 경실모 소속 김세연 의원도 "경제민주화의 필요성을 부인하는 듯한 논의가 지속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며 "대기업 행태의 문제는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고 어떤 식으로든 구조 문제에 손을 대지 않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반면, 이한구 원내대표는 이날 기업 옹호 발언을 이어갔다. 그는 지하경제 양성화와 관련해서 "지하경제의 개념이나 범주, 경계선에는 상당히 의견이 다를 수 있다"며 "지하경제는 자연스럽게 지상에 올라와서 정상적인 경제활동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가장 좋은 정책 방향"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지하경제는 이미 이뤄진 것에 대한 제재를 위해 필요한 것이라기 보단 지하경제가 생기지 않도록 예방하는 게 더 중요하다"며 "불필요하게 소비심리를 자극하거나 재산 증식 활동에 지장을 줘서 금융시장이 동요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경제민주화 논란, 당내 역학구조 바꾸나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새누리당 내에서는 주류, 즉 친박계 이외의 세력이 집단적인 목소리를 낸 적은 드물다. 이번 경제민주화 논란은 이와 사뭇 다른 양상으로 흐르면서 새누리당 내부 갈등의 중심으로 떠오를지 주목된다.
경제민주화 관련, 이한구 원내대표, 최경환 의원 등 친박계 인사 주축으로 수위조절에 나섰고, 남경필 의원, 이주영 의원 등을 중심으로 원안 고수 입장을 나타내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친박계 인사로 꼽히는 이혜훈 최고위원이 원안 고수 입장을, 비박계 인사인 김용태 의원이 수정 필요 입장을 나타내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두고 계파 구분없이 움직이고 있는 셈이다.
이에 5월에 진행되는 원내대표 경선이 다시금 주목되고 있다. 원내대표 선거는 경제민주화와 묘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현재 원내대표 경선에는 친박 중의 친박인 최경환 의원과 친박이긴 하나 중도파인 이주영 의원이 출마 의사를 밝혔다. 당내 소장파인 남경필 의원은 이달 말까지 출마 여부를 확정할 계획이다.
현재까진 최경환 의원이 우위에 서 있다. 새누리당 재선 의원은 "최 의원으로 의견이 몰리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친박 중의 친박이 원내대표가 되면 그래도 이정현 수석 등에게 당내 불만을 말할 수 있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중론"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결과는 미지수다. 최근 이주영 의원이 남경필 의원을 만나 경제민주화 등에서 정책 연대를 추진키로 한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우위에 선 최 의원에게 맞서 경제민주화라는 정책 공조로 상황을 역전하겠다는 것이다.
경제민주화 논란이 원내대표 선거의 쟁점으로 떠오를 경우, 새누리당에 새로운 주류-비주류 갈등 지형이 만들어 질 수 있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