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이 자중지란에 빠졌다.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장기 지연되면서 야당과 갈등을 빚던 새누리당이 이젠 국회 선진화법을 두고 내부 혼선에 빠졌다. '여당 지도부의 정치력 부재'를 질타하는 목소리와 '국회 선진화법이 발목을 잡고 있다'는 비판이 오가는 모양새다.
새누리당 유기준 최고위원은 14일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당은 의원총회를 열어 국회 선진화법 개정을 당론으로 채택한 뒤 추진해야 한다"며 "이 법은 위헌 소지도 있기 때문에 위헌 법률 신청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국회 선진화법은 폭력 국회를 막기 위함이지 선진화라는 미명아래 소수자의 국회 지배를 보장하면 안 된다"며 "이는 국민이 뽑아준 뜻에도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그는 "선진화법은 첨예하게 대립하는 사항에 대해 안건조정위원회를 구성할 수 있고 3분의 2 이상의 찬성으로 이를 의결할 수 있게 돼 있는데 과연 이것이 가능할지 의문"이라며 "의결되지 않으면 소위원회에 회부돼 논의하는데 이 역시 통과가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앞서 12일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다수결 기준을 50%에서 60%로 올린 국회선진화법이 헌법이 규정한 다수결 표결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에 따라 헌법소원 제기를 위한 법률 검토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서로 불편한 이한구-황우여
헌법소원 제기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처리가 난항을 겪는데 따른 출구전략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이한구 원내대표와 함께 새누리당 투톱인 황우여 대표는 국회선진화법 관련 언급을 전혀 하지 않고 있다. 14일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국회선진화법 관련 언급은 없었다.
그는 지난 7일 최고위원회의에서 선진화법에 대해 "날치기와 몸싸움이라는 후진적 정치에서 벗어나고 '폭력국회'의 오명이 국회에 발을 딛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국민이 바라는 품위 있는 국회로 격상시키는 법"이라며 옹호했다.
황 대표는 이 원내대표와는 달리 협상으로 정부조직법 개정안 문제를 다뤄야 한다고 판단한다. 실제 지난 8일, 협상이 진척되지 않자 황 대표와 민주당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은 종합유선방송(SO) 업무를 미래창조과학부로 넘기는 대신 방송 공정성 담보를 위한 장치를 만드는 데 의견을 모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당 대표가 뒷짐만 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 속에서 협상에 물꼬를 트려고 양측이 나선 것. 하지만 협상은 무위로 돌아갔다. 협상을 총괄한 이한구 원내대표가 양측의 협상 내용을 부인했을 뿐 아니라 더는 원내 사안에 간섭하지 말라고 불만을 제기했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황 대표와 이 원내대표 측에서는 서로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고 있다. 이 원내대표가 황 대표가 주도해 만들었던 국회 선진화법 위헌 소송 검토 카드를 꺼낸 이유다.
조선일보도 반발하는 위헌 소송
하지만 국회 선진화법 위헌 소송은 새누리당 내부와 보수진영에서도 반발이 크다. <조선일보>는 14일자 사설을 통해 "여당이 이름도 그럴싸한 국회 선진화법을 주도한 것은 대선을 앞두고 당의 이미지를 띄우기 위해서였다"며 "그랬던 여당이 이제 와서 자신들 뜻대로 정부조직법 개정안이 통과되지 않으니 국회 선진화법을 위헌 제소하겠다는 건 국민을 실소하게 만든다"고 비판했다.
사설은 위헌 소송을 밀어붙이고 있는 이 원내대표에 대해 "대통령의 지침만 받들어 모시면서 야당을 무조건 여당안을 수락하라고 밀어붙이기만 했다"며 "당대표가 내놓은 협상안을 원내대표가 이끄는 협상 실무팀이 거들떠보지도 않는 자중지란까지 노출했다"고 질타했다.
사설은 "여당 지도부가 때론 대통령의 생각도 바꿀 수 있는 설득력을 발휘해야 야당에 대한 설득력과 힘을 얻게 된다"며 "대통령의 지침을 신줏단지처럼 떠받들며 일자일획도 바꾸지 못하는 여당 지도부의 말이 야당에 먹힐 리가 없다"고 비판했다.
김경재 전 인수위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도 이날 교통방송 <열린아침 송정애입니다>에 출연해 "(국회 선진화법을) 자기들이 만들어놓고 바꾸고 그러면 되겠느냐"라며 "스스로 반성해 중간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새누리당 남경필 의원도 이날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정부조직법이 타결되지 않아 국정이 마비된 상황은 선진화법과 무관하다"며 "정부조직법은 야당의 지나친 발목잡기 주장과 여당의 정치적 부재가 맞물렸기 때문인데 엉뚱하게 국회 선진화법 때문에 안 된다고 희생양을 삼고 있다"고 비판했다.
특히 그는 당 지도부가 국회 선진화법에 대한 위헌 여부를 검토한 데 대해서 "자기가 낳은 자식을 좀 어눌하다고 해서 의사에게 내 자식인지 아닌지 판정을 해 달라고 하는 꼴"이라며 "도의상 맞지 않는 일"이라고 질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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