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때인 1975년 미국으로 건너가 40년 가까이 미국인으로 살아온 김 내정자는 인수위의 장관 내정자 발표 사흘 전에야 한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러나 미국 국적은 포기하지 않았다.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다. 국가관 논란이 제기되는 이유다.
게다가 그가 이끌 미래창조과학부는 첨단 국가 과학기술과 기초 R&D를 모두 총괄하는 중요한 자리다. 이런 자리에 과연 이중국적을 가진 사람을 앉히는 게 바람직하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이중국적 논란이 거세지자 김 내정자가 직접 나서서 미국 시민권을 포기하겠다고 밝혔지만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되레 이중국적 이외에도 CIA 연루설 등 그의 국가관과 관련한 의혹이 증폭되고 있다.
▲ 이석기 의원. ⓒ연합뉴스 |
김종훈 저격수 자처한 통합진보당
주목할 점은 김 내정자와 관련한 국가관 의혹 문제제기 중심에는 통합진보당이 있다는 점이다. 통합진보당은 20일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과거 발언을 문제 삼으며 국가 정체성을 의심했다. 민병렬 대변인은 이날 논평에서 "김 후보자는 미 해군이 발행하는 잡지 '프로시딩(Proceedings)' 2011년 12월호의 '부름에 응답하다'란 코너에 '군 복무는 완전한(full-fledged) 미국인이 되는 통과의례였다'는 글을 발표했다"고 폭로했다.
통합진보당은 "이 글에서 김 후보자는 '군 복무를 통해 나는 모두에게,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곳이 진정 조국이며, 나는 정말로 미국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게 됐다'고 밝히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이들은 "김 후보자는 1998년 '볼티모어 선'지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대해 '닳아버린(frayed) 국가, 온통 가난만 지배하던 국가라는 기억만 갖고 있다' '미국이란 나라에서만, 우리는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있다는 정신을 갖고 있다' 등 발언을 했다"고 밝혔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김 내정자 저격수로 나섰다. 1999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설립한 회사 인큐텔 이사로 재직한 경력을 밝힌 것에 이어 2009년에는 CIA 외부 자문위원회에 참가한 사실도 추가로 밝혔다.
이상규 의원도 이날 정홍원 국무총리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과거 김 후보자가 발언한 내용을 언급하며 후보자 내정이 적절한지를 질문했다. 이 의원은 "김종훈 내정자는 미 CIA 자문위원에 자랑스럽게 이름이 올라가 있다"며 "미 정부기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분인데 과학기술, 미래기술 수장을 하기 적법한가"라고 정 후보자를 질타했다.
국가관 입장이 달라진 새누리당
통합진보당은 '친(종)북당'으로 '낙인'이 찍힌 상태다. 국가관과 정체성을 두고 숱하게 공격을 받아왔다. 그런 통합진보당이 김종훈 내정자의 국가관을 언급하며 비판하는 모습은 이채롭다. 자신이 받은 공격을 고스란히 돌려주는 모양새다.
실제 통합진보당의 '친(종)북당' 낙인은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에서 공헌한 바가 크다. 새누리당은 이들의 국가관에 문제를 제기하며 연신 진보당의 핵심 인물인 이석기-김재연 의원의 사퇴를 요구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도 마찬가지다.
박 당선인은 지난 총선이 끝난 뒤 기자들을 만난 자리에서 "국민이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 크게 걱정하고 있다"며 "(두 의원이) 사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국회라는 곳이 국가의 안위가 걸린 문제를 다루는 곳인데, 기본적인 국가관을 의심받고 또 국민도 불안하게 느끼는 이런 사람들이 국회의원이 돼서는 안 된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주목할 점은 이런 태도가 김 내정자를 두고는 180도 달라졌다는 점이다. 기준은 '친북'이냐 '친미'냐에 있다. 통합진보당에게 국가관을 언급하며 소속 의원 제명까지 언급하던 새누리당은 김 내정자에 대해서는 "훌륭한 분"이라며 '김종훈 감싸기'에 나섰다.
새누리당 이한구 원내대표는 20일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와 관련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훌륭한 인물을 미국에서 모셨다"며 "국내 사정을 봤을 때 좋은 일자리를 빨리 만드는 일만큼 중요한 일이 없기에 박 당선인이 훌륭한 인물을,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인물을 미국에서 모셔다가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보겠다는 것이다. 그것의 핵심이 미래창조과학부"라고 말했다.
김 내정자를 두고 언론에서는 과거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해외 과학자들을 대거 영입해 산업화와 과학기술의 토대를 닦았던 것을 연상케 한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그의 국가관이 명확해지지 않는 이상, 청문회에서도 국가관 논란은 지속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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