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날 오후 1시 독일 프랑크푸르트발 비행기를 타고 인천공항에 도착한 정동영 전 의장은 이용희 국회부의장과 정동채 전 문화관광부 장관, 이계안 당의장 비서실장 등 여당 의원 20여 명과 개인 지지자 300여 명의 환영을 받으며 입국했다.
"신중도라는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
정동영 전 의장은 귀국 인사말을 통해 최근 자신이 키워드로 내건 '새로운 중도(신중도)'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정 전 의장은 "신중도는 일류국가를 만드는 꿈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질서나 변화가 필요하다는 뜻"이라며 "독일에서의 작은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의 미래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지난 29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고 새로운 질서가 필요하다"며 "새로운 질서는 양극단의 논쟁에서 벗어나 가운데로 모아지는 힘을 키우는 일이라고 본다. 아직 명확하게 내용을 다 채우지는 못했지만 그것을 신중도라고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최초로 신중도를 언급한 바 있다.
신중도는 슈뢰더 집권 무기였던 노이에 미테(Neue Mitte)의 한국판? 정 전 의장이 독일에서 들고 돌아온 '신중도'라는 깃발은 독일 사민당의 게르하르트 슈뢰더 전 총리가 1998년 집권하면서 들었던 '노이에 미테(Neue Mitte: 신중도)'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68혁명 세대 출신이긴 하되 사민당 내의 정치 지형에서는 우파에 해당했던 게르하르트 슈뢰더는 지난 1998년 사민당 고유의 좌파 노선에 우파노선을 가미한 '노이에 미테'를 슬로건으로 헬무트 콜의 16년 장기 집권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이는 지난 1997년 토니 블레어가 사회학자 기든스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3의 길'이라는 신중도 노선으로 마거릿 대처-존 메이저로 이어지는 보수당의 18년 장기집권에 종지부를 찍고 장기 집권의 길을 연 것과 매우 유사하다. 블레어와 슈뢰더의 집권으로 유럽에서는 한 동안 '제3의 길-신중도' 바람이 거세게 몰아쳤다. 하지만 정 전 의장의 '신중도'가 블레어나 슈뢰더의 그것처럼 성공의 열쇠가 될지는 미지수다. 두 사람의 집권에는 '신중도' 자체의 매력뿐만 아니라 우파 정권의 장기집권에 대한 염증으로 '젊은 피'에 대한 양국 국민들의 뜨거운 호응도 한 몫 했던 것.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민당 당시 지도부는 집권을 위해 블레어(집권 당시 44세)와 슈뢰더(집권 당시 53세)라는, 당시의 고답적인 정치권 분위기에서는 '애송이'로 보일 위험도 있는 연부역강한 인물들을 간판으로 내세우는 모험을 감행했다. 하지만 한국은 이와 반대로 이른바 '민주정부'에 대한 피로감이 더 큰 상황이다. 또한 지난 17대 총선을 치룰 당시 '몽골기병론'을 외치던 정 전 의장의 모습이면 두 사람과 비슷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은 이야기가 다르다는 것이 정치권 안팎의 분석이다. 게다가 노동당, 사민당의 확고한 철학과 지지층이라는 '집토끼'를 온전히 묶어 둔 가운데 중도라는 '산토끼'를 잡았던 두 당의 경우와 달리 현재 열린우리당은 무엇이 집토끼인지에 대한 의견조차 분분한 상황이다. 한편 독일의 경우 슈뢰더가 집권 이후 "조금 더 오른쪽으로"를 외치자 오스카 라퐁텐, 프란츠 뮌터페링 같은 사민당 내의 중도 및 좌파들과 갈등이 빚어졌고 급기야 라퐁텐은 탈당해 새로운 좌파 정당을 만들기도 했다. 결국 사민당의 분열과 "신자유주의 개혁을 할 바에야 우파가 더 전문가"라는 독일 국민들의 인식은 지난 해 총선에서 기민당 앙엘라 메르켈의 손을 들어줘 버렸다. 메르켈이 콜 전 수상에 의해 정치권에 입문한 동독 출신이라는 점에서 독일 현지 호사가들은 "슈뢰더의 패배는 콜의 복수"라고 말하기도 했다. 김근태 당의장의 역작이라는 '뉴딜'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정 전 의장이 두 달 반 만에 독일에서 '신중도'라는 깃발을 들고 온 셈이다. 그리 새롭지 않은 이 깃발이 열린우리당이나 정 전 의장 자신에게 새로운 돌파구를 열어줄지는 두고 볼 일이다. |
"통일과 경제가 양대 축"
'신중도'와 함께 정 전 의장이 내세우는 모토는 '통일과 경제'다. 정 전 의장은 이날 귀국 인사말에서도 "통일의 길을 먼저 간 독일에서 많은 것을 배우는 등 나름대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독일에 있으면서 대한민국이 세계 어떤 나라보다 희망이 있고 역동적인 국가라는 확신을 갖게 됐다"며 "다만 미래를 위해서는 정치·경제·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조금 느긋한 마음으로 숲을 보듯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에 앞서 정 전 의장은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우리 국민이 보다 윤택한 삶의 질을 누리기 위해서 경제의 성장과 발전이 필요하고 이것을 흔들림 없이 뒷받침하기 위해 평화가 필요하다"며 "평화를 위한 경제, 경제를 위한 평화가 우리가 공통으로 추구해야 할 가치이자 전략"이라며 '통일과 경제'를 '정동영표 컨텐츠'의 양대 축으로 내걸었다.
측근 "내년 봄까지는 정중동의 행보 할 것"
정 전 의장은 일단 연말까지는 당내 정치와는 거리를 두고 지역 순회나 대학 강연에 치중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정 전 의장은 최근 당에서 결정한 '완전개방형 국민경선제'나 논란이 되고 있는 '노무현 대통령을 제외한 중도세력 대통합론' 등 정치 현안에 대해서는 구체적 언급을 피했다.
정 전 의장은 향후 활동계획에 대해서는 "당 원로와 당 밖의 전문가 등으로부터 지혜를 구한 뒤 결정할 예정"이라며 "며칠 간 서울에서 머물다 추석기간 동안에는 고향인 순창에 내려가 성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정 전 의장의 한 측근은 "차기대권주자로서 두각을 드러내기 위해 '정치적인 쇼'를 하지는 않을 예정"이라며 "일단 지역순회와 대학 강연 등을 통해 바닥을 다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향후의 대권 경쟁 구도와 관련해서는 "어차피 내년 봄이 지나야 대체적인 윤곽이 나올 것 아니냐"며 "시기가 무르익을 때까지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릴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정 전 의장이 귀국하자마자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인 전북을 찾아가는 것에 대해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것 아니냐는 정치적 해석도 나오고 있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4%에도 못 미치는 낮은 지지율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정 전 의장이 전북에 대한 애정 표현을 통해 같은 지역을 지지기반으로 갖고 있는 고건 전 총리부터 견제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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