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도 공동으로 노동상을 수상했다. 주최 측은 재능교육지부에 상을 수여하는 배경을 "사측이 용역을 동원해 폭언과 폭행을 일삼고 농성자에게 손해배상, 압류 등 탄압을 일삼는데도 투쟁을 이어가고 있다"며" "이는 비단 재능교육만의 투쟁이 아니라 비정규직과 특수고용노동자 전체와 맥이 닿아 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투쟁"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농성을 진행하는 내내, 언론은 물론 상급단체인 민주노총도 주요현안으로 다루지 못했던 재능지부다. 언론과 국회 등에서 집중포화를 맞은 한진중공업 사태는 이미 일단락됐지만 재능지부 조합원들은 여전히 일터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재능교육 학습지 교사들은 1999년 노조를 결성한 뒤 임금단체협상을 이어왔다. 하지만 지난 2008년 임금 삭감에 맞서 파업을 벌이다 노조 간부 등 12명이 해고됐다. 결국, 노조는 와해했고 해고자 11명만이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28일로 농성을 시작한 지 1500일이 됐다. 재능교육 아웃(out) 국민운동본부와 민주노총 서울본부 활동가 등 300여 명은 서울시청 앞 재능교육 빌딩 앞에서 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 재능교육 아웃(out) 국민운동본부와 민주노총 서울본부 활동가 등 300여 명은 서울시청 앞 재능교육 빌딩 앞에서 노동자 결의대회를 열었다. ⓒ프레시안(허환주) |
"이렇게 모인 걸 보니 1500일 투쟁이 헛된 건 아니었네요"
재능지부는 원직 복직과 단체협약 체결을 내걸고 농성을 이어오고 있다.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안으로 내세우는 이유는 특수고용노동자로 불리는 학습지 교사를 '진짜 노동자'로 인정받겠다는 의지 때문이다. 지난해 4월, 노조가 조합원 복직 및 민형사상 소송 취하 등을 주요 골자로 하는 조정안을 거부한 이유도 이 때문이다.
회사는 노조의 다른 요구안은 대부분 받아들였으나 단체협약 체결 건만은 거부했다. 노조 역시 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결국 합의안은 도출되지 못하고 노사 관계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이렇게 모든 분야의 활동가들이 한곳에 모인 걸 보면 1500일의 투쟁이 헛되진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여기까지 와서야 이만큼의 사람들이 모인 게 안타깝다."
강종숙 전국학습지산업노조 위원장은 이렇게 말하고 한숨을 쉬었다. 시청 앞 재능지부 천막 농성장은 여러 차례 철거됐다. 회사가 고용한 용역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하기도 했다. 그간 연대의 손길이 안타까운 이유다.
홀로 싸운 날이 1500일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날 참석자들은 재능지부 농성에 여러 의미를 부여했다. 강규혁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위원장은 "그간 재능지부 조합원은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위해 싸워왔다"며 "이들은 단순히 원직복직을 위해, 단체협약을 맺기 위해 싸운 게 아니다"고 말했다.
정의헌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도 "특수고용노동자는 노동자로 인정도 받지 못하고 살고 있다"며 "이걸 깨기 위해 그간 재능지부 노동자들은 싸워왔다"고 동의했다.
안효상 사회당 대표는 재능지부 조합원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표현했다. 안 대표는 "노동자의 권리가 조금도 인정되지 않는 게 특수고용노동자"라며 "하지만 이들은 이에 굴복하지 않고 스스로 노동자의 권리를 찾기 위해 지속해서 싸우고 있다"고 말했다.
안 대표는 "인간이란 존재는 남에게 영향을 받을 수 없는 존재라는 걸 생각한다면 우리는 이들에게 끊임없이 빚을 지고 있는 셈"이라며 "그들의 싸움이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고 우리를 고무시키고 있다"고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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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문제가 소수 노동자 문제로 취급된 게 안타깝다"
하지만 그동안의 싸움이 쉽지만은 않았다. 대로 옆에 세워진 천막 농성장에서 잠을 잘 때면 육중한 물건 지나가는 소리에, 행여나 용역이 오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에 잠을 이루지 못한 밤이 헤아릴 수 없다.
노동 현안에서 외면되는 현실도 답답할 수밖에 없다. 유명자 학습지노조 재능지부장은 "그간 조명받지 못한 것은 괜찮다"고 했지만 이어 "투쟁 사업장의 현안 요구에 가려 우리 문제가 소수 노동자 문제로 취급된 게 안타깝다"고 에둘러 안타까움을 표현했다.
그러면서 유 지부장은 "사업장마다 서로 다른 요구에 부응하기보단 이들이 연대해 함께 투쟁하게 하는 게 상급단체의 몫"이라며 민주노총의 역할을 주문했다.
물론, 민주노총만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니다. 장투사업장 중심으로 30일부터 '희망 뚜벅이' 행사가 시작된다. 13일간 장기투쟁 사업장을 찾아다니는 '희망 뚜벅이'는 코오롱, 대우자판, 콜트-콜텍, 쌍용자동차, KEC, 풍산마이크로텍, 한국3M 등 정리해고 노동자들과 재능교육,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해고자들,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등 비정규직 노동자들, 세종호텔과 유성기업 등 현재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참여한다.
이들은 오는 30일, 서울 대학로 재능교육 본사에서 출발해 과천-안양-인천-안산-수원-둔포를 거쳐 2월 11일 평택 쌍용차 희망텐트 농성장에 도착한다. 이들 지역을 모두 도보로 간다는 계획이다.
유 지부장은 "오랜 기간 회사에 맞서 싸워온 사업장들이 다 모여 비정규직 문제를 공론화시키려고 하는 것"이라면서 "큰 관심을 끌기는 어렵겠지만 힘을 함께 모여보자는 취지에서 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재능교육 측은 기존 입장을 되풀이 했다. 대법원, 대검찰청, 행정법원, 고용노동부, 노동위원회에서 모두 학습지 교사는 근로자가 아닌 개인사업자로 판단하고 있다는 게다. 또 해고에 대해서는 회사 제품 불매 운동을 벌여 부득이하게 계약해지를 했다고 재능교육 측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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