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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회사에서 '고졸'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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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기후원

"그 회사에서 '고졸'은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학력시대, 고졸이 사는 법·③] 한국은 왜 대졸사회가 됐나

지난달 대우조선해양이 고졸 관리직 100명을 공개 채용하기로 했다. 공채에는 내신 1, 2등급 고등학생만 500여 명이 몰렸다. 주요 대기업에서도 생산직 등 고졸 인력 채용을 지난해보다 13% 늘리기로 했다. 일부 언론에서는 "학력시대가 끝났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고졸자들의 반응은 달랐다. 한 고졸자는 "학력시대는 전혀 끝나지 않았다"면서 "여전히 대다수 기업은 고졸자를 잘 대우해주지 않는다. 대졸자라면 정규직으로 뽑을 자리도 고졸자는 계약직으로 뽑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취업이나 대학 입시 커뮤니티에는 "고졸 지원도 1등급만 보는 세상"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한국의 대학 진학률은 83%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대학 가야 사람 대접 받는다'는 통념 아닌 통념도 여전히 강고하다. <프레시안>은 고졸 이하 학력으로 살아가는 20대들을 만났다. 이들이 취업과 일상생활에서 겪는 차별은 무엇인지, 한국은 왜 대학 만능주의 사회가 됐는지를 살피는 기사를 3회에 걸쳐 싣는다. <편집자>

- 학력시대, 고졸이 사는 법
인력사무소에서 시작한 '고졸 인생', 그들은 지금…
② "남자친구한테 고졸이라고 거짓말했더니…"

"고졸 채용이요? 시도 자체는 좋게 볼 수 있지만 결국엔 기업 생색내기용이라고 생각해요. 그냥 자신의 회사는 실력만 보고 뽑는다고 하면 될 것을 굳이 고졸 출신을 뽑는다고 크게 떠들면서, 우리는 이만큼 열려있는 회사고, 차별하지 않는다는 걸 홍보하는 수단에 불과하다고 생각해요. 이번에 뽑히는 고졸들이 과연 얼마나 그 회사에서 버틸 수 있을까요. 그리고 그들은 회사에서 대졸자와 차별을 받지 않을까요?"

대우해양조선이 고졸 출신을 100명 채용하겠다는 발표를 두고 이선미(가명·25) 씨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고졸 출신 직장인이다.

대우해양조선이 조금 색다른 채용 공고를 냈다. 올해부터 고졸자를 뽑아 4년간 사내 양성교육을 실시한 뒤 대졸 사원들과 똑같이 대우하는 신(新)인사제도를 도입한 것. 이들이 4년간 사내 '중공업사관학교'에서 교육과 현장 실습, 외국어 교육을 이수하고 병역을 마치는 약 7년 후, 대졸 신입사원과 같은 대우를 받게 된다.

이번 공고는 여러 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학력 위주의 한국사회에서 대기업이 학력을 보지 않고 실력으로만 직원을 뽑겠다는 건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도 목청을 높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직접 나서 고졸 취업문호를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지난 21일 기술-기능인을 청와대 오찬에 초대한 자리에서 "특성화고 교수와 재계간 고졸채용 협약을 맺도록 하겠다"고 밝히는가 하면 지난 30일 라디오인터넷 연설에서는 "정부는 무엇보다 고교 졸업자와 일자리를 만드는데 중점적으로 대책을 수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선미 씨의 우려처럼 일부 기업과 정부의 고졸 채용 바람은 말 그대로 '홍보'나 '바람'에 그칠 수 있다. 학력 차별은 몇 번의 채용이나 소수의 협약으로 해결되기 어려운, 한국 사회에 뿌리깊게 박힌 문제이기 때문이다.

ⓒ연합뉴스

대한민국=학력민국

통계청에 따르면 2009년 기준으로 고등학교 졸업생의 83%가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 자료를 보면 대학졸업자수는 해마다 늘어 2009년에는 1100만 명을 넘겼다. 이는 OECD 국가 중 1위로 미국과 일본의 두 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그렇다보니 대졸 취업준비생 문제는 심각하다. 올해 1분기 비경제활동 인구 1639만2000명 가운데 대졸 이상 고학력자는 295만2000명에 달했다. 이중 4년제 대학 이상 졸업자만 201만4000명에 이른다. 또 지난해 전국 185개 4년제 대학을 졸업한 취업 대상자 24만8660명 중 취업자는 12만9130명으로 취업률은 51.9%에 그쳤다.

결국 대학을 졸업해도 절반이 취업을 못하는 셈이다. 경제적으로만 따지면 한 학기당 평균 750만 원(2011년 기준)의 등록금을 내고 받은 4년제 대학 졸업증이 손해라는 이야기다. 그럼에도 여전히 '그래도 대학은 가야지!'라는 인식은 강고하다.

한때. 대학생이 '신분'인 때가 있었다. 1960년~1970년대에는 중등교육은 '중학교 의무시험제'나 '고등학교 평준화'와 같은 정책을 통해 확대된 반면 고등교육은 '대학 정원 제한' 등으로 억제됐다. 이러한 정책은 중등교육 확대를 통해 노동자는 늘이고 대학생 수는 억제해 정치적 통제를 쉽게 하려는 것으로 해석됐다.

어쨌든 이 때문에 희소가치가 큰 대학생과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고졸 간 임금격차는 심화됐고 '사회적 불평등'은 제도화 됐다. 이러한 불평등은 '대학생이 된다'는 건 신분상승을 할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했으며 '우골탑'이나 '너만은 대학을 가야지'라는 식의 '대학 뒷바라지' 이야기가 계속 생겨났다.

그러다 1995년 김영삼 정권 때, 대학 설립 자유화가 발표됐다. 고급인력을 원하는 기업의 요구와 고등교육에 대한 국민의 수요를 함께 해결하겠다는 의도였다. 우후죽순 전국에 대학교가 설립됐고, 엄청난 수의 학생들이 대학생이 됐다. 동시에 대학 진학은 새로운 신분 질서에서 요구되는 교양인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증 정도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손우정 새세상연구소 상임연구원은 "한국 사회는 압축적 근대화를 경험했다"며 "그 과정에서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건 극히 한정돼 있었다"고 설명했다. 손 연구원은 "그나마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길은 대학교에 진학하는 것"이었다며 "하지만 김영삼 정부 때 대학 설립을 자유화하면서 대학생이라는 사회적 인정 메리트는 사라졌다"고 말했다.

손 연구원은 "그럼에도 수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며 "이는 예전처럼 신분 상승을 위해서라는 의도보다는 제대로 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고, 사회적 패배자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 게 크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대졸과 고졸간 경제적 격차

'제대로 된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실제로 경제적 차별로 드러난다. '대학을 가야한다'는 인식은 사회에 팽배한 고졸과 대졸간 차별과 경제적 격차를 통해 더욱 강화되고 확산된다.

지난 4월 한국노동연구원에서 발표한 '학력별노동시장 미스매치 분석과 교육제도 개선 과제'를 보면 기업 취업인사 담당자 150명 중 56명이 '대학 인원이 줄지 않는 이유'에 대해 '대졸 및 고졸 노동자간 초임 격차 및 승진 기회의 박탈 등 경제적 격차'때문이라고 응답했다. 실제 고졸과 대졸 간 임금격차는 약 1.5배 정도다.

실업계 고등학교 관계자는 "학생들은 전문대나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하는 게 나중을 생각하면 더 낫다는 생각을 한다"며 "상식적으로 고등학교 졸업 후 입사 4년차가 되면 대졸자 임금 대비 90% 정도는 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연령변화에 따른 학력별 임금 수준. 고졸 노동자의 급여가 대졸이나 전문대졸 노동자에 비해 낮을 뿐더러 인상율도 매우 낮음을 알 수 있다.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실

고졸 출신으로는 안정된 일자리를 찾기도 어렵다. 한국노동연구원이 서울 시내 75개 전문계 고등학교 중 14개교에서 취업담당 교사를 인터뷰한 결과, 이들 다수는 학생이 원하는 수준의 일자리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답했다.

학생들은 대기업 취업을 선호하나 대기업에서는 전문계고 졸업자에 대해 잦은 이직이나 병역 문제, 근태관리 불성실 등의 이유로 들며 추천 의뢰가 거의 들어오지 않고 있다는 것. 또 주로 소규모 개인 기업으로부터 의뢰가 들어오지만 중소기업 중엔 특별히 보수가 많은 곳이 없어 학생들의 관심이 낮다. 결국 별다른 일자리가 없는 상황이다.

2010년 10대 기업 신입사원 공채 규정을 보면 4개 기업은 학력제한을 내걸지 않고 있다. 하지만이들도 서류전형을 통해 사실상 학력을 심사하고 있다. 실제 우여곡절 끝에 입사해도 승진 등에서 차별받는다. 이 때문에 취업한 고졸자들 중 상당수가 야간대학 등에 진학해 일종의 '신분세탁'을 한다.

"홍보식 고졸 채용, 저임금 일자리 합리화 되서는 안돼"

그간 정부도 꾸준히 학력 차별 철폐를 위한 정책을 내왔다. 2004년 4월 '학벌주의 극복 종합대책'을 발표하고 대학시설 구조개선, 지방대학 육성, 공공 및 민간분야의 능력중심 인사관리시스템 정착, 사회적 인식개선 등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했다. 2007년에는 국가인권위원회 권고로 공공기관 채용에 학력제한을 철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학력 문제는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 근본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겉만 건드리고 말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손우정 새세상연구소 상임연구원은 "대우해양조선과 같은 채용 방식은 긍정적으로 본다"며 "문제는 고졸의 일자리가 대학 학력이 필요없는 자리일 경우, 대졸과 동등하게 인정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손 연구원은 "현실적으로 우리 산업 기반은 대졸 학력이 굳이 필요가 없다"며 "이걸 깨고 취업 장려를 하는 건 좋지만 자칫 고졸 채용이 저임금 일자리를 합리화하는 걸로 갈 수 있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철호 학벌없는사회 사무처장도 대우해양조선의 고졸 채용과 관련해서 "고졸 취업자를 공정하게 대우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그럼에도 이런 발표를 하는 건, 정부가 고졸 취업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기업 손을 쥐어짜니 나온 사기성 이벤트"라고 말했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과 같은 원칙과 평등한 사내 복지 등이 보장되지 않을 경우 기업들이 '고졸 채용' 바람을 과거 대졸이 하던 일자리에 고졸로 채우면서 임금을 기존 고졸 수준으로 낮추는 꼼수로 쓸 수 있다는 우려다.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게 핵심…정부부터 고쳐라"

보다 근본적으로는 정부 차원에서 좋은 일자리를 창출해야 학력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철호 사무처장은 "대우해양조선과 같은 사기업 이벤트로는 지금의 학력 문제를 해결하는데 한계가 있다"며 "기존 일자리에 고졸을 채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질 나쁜 일자리를 없애고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드는 데 있다"고 주장했다.

ⓒ김기현 한나라당 의원실

이 사무처장은 정부의 솔선수범도 요구했다. 그는 "정부가 자기 개혁은 하지 않으면서 사기업에게만 학력 철폐를 하라고 하면 어느 기업이 따라오겠는가"라며 "의지가 있다면 먼저 공공부분에서부터 학력 철폐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기획재정부가 지난 9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122개 주요 공공기관 정규직에 고졸자가 채용되는 비율은 2008년 6.3%에서 2009년 4.4%로 줄었으며 지난해에는 3.0%로 축소됐다.

또 한 언론사에서 지난 7월, 중앙부처 산하 공기업과 500인 이상 준정부기관 55개 인사팀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한 결과, 공공기관 신규채용 직원 중 전문계고 출신은 1.1%에 그쳤다. 그나마 20명을 선발한 한국가스공사를 빼면 비중은 0.25%로 떨어진다.

학력은 철폐됐으나 여전히 학력은 존재하고 있는 셈이다. 하지만 이것이 학력 중심의 현 구조를 바꾸기엔 부족할 수밖에 없다. 손우정 상임연구원은 "굳이 대학을 가지 않더라도 안정적인 경제생활을 가능하게 하면 학력 문제는 자연히 해결된다"며 "단발성 일자리가 아닌 좀 더 질 높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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