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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몰래 시신 해부, 29년째 장례도 못한 사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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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몰래 시신 해부, 29년째 장례도 못한 사연은?

故 문영수 씨 유가족 "국가가 아무런 책임지지 않고 있다"

1982년 당시 29살이었던 문영수 씨는 서울에서 버스 운전사로 일하다 그해 3월께, 해고를 당했다. 일자리를 찾아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전라남도 광주까지 내려갔다. 거기서는 여인숙 생활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른 방에 투숙 중이던 사람과 사소한 말다툼이 벌어졌다. 결국 주먹다짐으로까지 일이 커졌고 다음날 문 씨는 광주 서부경찰서 형사계로 끌려갔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조사를 받던 문 씨가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고 반 혼수상태에 빠졌다. 당시 문 씨를 폭행한 형사계 최모 순경은 문 씨를 인근 외과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게 하고 광주적십자병원에 행려병자(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로 문 씨를 입원시켰다.

하지만 입원한 이틀 뒤, 문 씨는 사망했다. 검찰에서는 '시신을 검시하고 사인을 규명한 후 유족에게 인도하고, 불구속수사를 할 것'이라고 수사지휘를 내렸지만 문 씨의 시신은 최모 순경에 의해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 인계됐다.

이후 문 씨의 시신은 1983년 5월께부터 그해 12월까지 해부학실습용 시신으로 사용됐다. 그리곤 1984년 1월께 다른 해부용 시신 약 10구와 함께 공동 화장됐다. 화장하고 남은 유골은 학교 추모관에 안치됐다. 그때까지도 문 씨의 가족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자식이 해부학실습용 시신으로 사용된 지도 모르고 연락이 안 되는 문 씨 걱정으로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러다 1987년 5월께, 문 씨의 유가족은 치안본부(현 경찰청)의 '헤어진 가족 찾기 캠페인'을 통해 문 씨의 사망사실을 확인했다. 문 씨 가족은 문 씨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사인규명을 요구하며 치안본부, 광주지검 등에 진정했다. 당시 전남경찰국과 광주지검이 사건을 수사했다.

"고인의 원혼 앞에 사죄해야 한다"

ⓒ프레시안
광주지검은 1987년 8월께 문 씨 가족의 진정에 따라 내사를 하던 중 최모 순경이 문 씨 사건 관련, 허위로 보고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광주지검은 곧바로 최모 순경을 허위문서 작성 및 사체은닉 등으로 구속 수사했다. 이후 광주지방법원은 최모 순경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의 판결을 선고했다. 유가족은 항소하고 싶었지만, 항소기간이 지났다는 이유로 그 판결은 확정됐다.

유가족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다는 게 견디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죽었는데, 정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도 견디기 어려웠다.

김대중 정부 시절, 1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고인의 부당한 죽음을 조사해달라고 진정했으나 피해자의 사망원인이 민주화운동과 관련돼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피해자 문 씨가 광주 서부경찰서 형사에 의해 광주적십자병원에 행려병자로 입원된 점, 같은 병원에서 사망해 행려사망자로 처리된 점, 검사의 시신처리 지휘 이전에 시신이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 인계된 점 등은 피해자 사후에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진실위 조사 결과에도 관련 국가 기관은 유가족에게 사과와 책임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고인의 유골은 전남대 의대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반인륜적 경찰폭력·시신훼손 희생자 고 문영수 대책위원회'는 "경찰은 고 문영수 씨의 사망 이후 경찰 내부의 고의적인 은폐 및 사망 원인 조작 그리고 시신 유기의 범죄성에 대한 의혹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경찰 등 국가 기관은 진실위의 결정과 권고 사항에 따라 책임 규명과 유가족에게 사과를 해야 하며 재발방지를 위해 구체적인 개선책을 마련, 준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전남대 의과대학은 규정을 벗어난 시신 인수 및 해부 실습용으로 사용했던 과정을 조사해 법 위반 사실을 공개하고, 유가족들에게 사과 및 응당한 조처를 해야 한다"며 "또한 경찰과 전남대 병원 등 국가기관은 29년째 유골로 보관된 고 문영수의 원혼에 사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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