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는 그다음부터였다. 조사를 받던 문 씨가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고 반 혼수상태에 빠졌다. 당시 문 씨를 폭행한 형사계 최모 순경은 문 씨를 인근 외과병원에서 응급치료를 받게 하고 광주적십자병원에 행려병자(거처 없이 떠돌아다니는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로 문 씨를 입원시켰다.
하지만 입원한 이틀 뒤, 문 씨는 사망했다. 검찰에서는 '시신을 검시하고 사인을 규명한 후 유족에게 인도하고, 불구속수사를 할 것'이라고 수사지휘를 내렸지만 문 씨의 시신은 최모 순경에 의해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 인계됐다.
이후 문 씨의 시신은 1983년 5월께부터 그해 12월까지 해부학실습용 시신으로 사용됐다. 그리곤 1984년 1월께 다른 해부용 시신 약 10구와 함께 공동 화장됐다. 화장하고 남은 유골은 학교 추모관에 안치됐다. 그때까지도 문 씨의 가족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 자식이 해부학실습용 시신으로 사용된 지도 모르고 연락이 안 되는 문 씨 걱정으로 하루도 제대로 잠을 자지 못했다.
그러다 1987년 5월께, 문 씨의 유가족은 치안본부(현 경찰청)의 '헤어진 가족 찾기 캠페인'을 통해 문 씨의 사망사실을 확인했다. 문 씨 가족은 문 씨가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던 중 사망했다는 사실을 알고 사인규명을 요구하며 치안본부, 광주지검 등에 진정했다. 당시 전남경찰국과 광주지검이 사건을 수사했다.
"고인의 원혼 앞에 사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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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람을 죽여 놓고도 집행유예로 풀려날 수 있다는 게 견디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경찰 조사 과정에서 죽었는데, 정부는 아무런 책임을 지지 않는 태도도 견디기 어려웠다.
김대중 정부 시절, 1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고인의 부당한 죽음을 조사해달라고 진정했으나 피해자의 사망원인이 민주화운동과 관련돼 있다고 볼 수 없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2기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는 피해자 문 씨가 광주 서부경찰서 형사에 의해 광주적십자병원에 행려병자로 입원된 점, 같은 병원에서 사망해 행려사망자로 처리된 점, 검사의 시신처리 지휘 이전에 시신이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해부학교실에 인계된 점 등은 피해자 사후에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이 같은 진실위 조사 결과에도 관련 국가 기관은 유가족에게 사과와 책임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더구나 고인의 유골은 전남대 의대에 그대로 보관되어 있다.
유가족과 시민단체로 구성된 '반인륜적 경찰폭력·시신훼손 희생자 고 문영수 대책위원회'는 "경찰은 고 문영수 씨의 사망 이후 경찰 내부의 고의적인 은폐 및 사망 원인 조작 그리고 시신 유기의 범죄성에 대한 의혹에 대해 철저한 조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또한 경찰 등 국가 기관은 진실위의 결정과 권고 사항에 따라 책임 규명과 유가족에게 사과를 해야 하며 재발방지를 위해 구체적인 개선책을 마련, 준수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들은 "전남대 의과대학은 규정을 벗어난 시신 인수 및 해부 실습용으로 사용했던 과정을 조사해 법 위반 사실을 공개하고, 유가족들에게 사과 및 응당한 조처를 해야 한다"며 "또한 경찰과 전남대 병원 등 국가기관은 29년째 유골로 보관된 고 문영수의 원혼에 사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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