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올해 6월께 더는 참기 어려워 현재 집을 세놓고, 규모를 줄여 인근 지역에 전세를 얻기로 했다. 차액은 집 사느라 빌린 대출액을 갚는 데 쓰기로 했다.
7월 초, 살고 살던 집을 전세로 내놓고 그 다음 날부터 전세를 구하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를 돌아다녔다. 처음엔 금방 전세를 얻을 줄 알았다. 전세대란이라고 신문지상에서는 떠들었지만 자기 동네와는 상관없는 강남 지역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김 씨가 사는 동네도 전셋값이 요동치는 강남 지역과 다를 바 없었다. 내놓은 전세는 하루 만에 나갔지만 구하려는 전세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개업소에서는 "전셋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며 "물량이 없어 요즘은 부르는 게 값이 됐다"고 설명했다. 실제 김 씨는 전세를 내놓은 집 몇 군데를 둘러보았지만, 전셋값이 예상보다 너무 올라 계약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며칠 동안 부동산중개업소를 돌아보니 상황의 심각성을 깨달았다.
김 씨는 "전날은 1억1000만 원하던 집이 다음날엔 1억3000만 원으로 올라 있었다"며 "그나마도 며칠 지나면 없어졌다"고 설명했다. 다른 부동산집도 마찬가지였다. 전세대란을 몸소 체감한 김 씨는 가격만 적당히 맞으면 아무 집이나 계약하려 마음을 고쳐먹었다.
그래도 쉽지 않았다. 어렵게 시세에 비해 싼 집을 발견했지만, 계약서에 찍을 도장을 가지러 집에 간 사이 다른 사람이 계약한 일도 있었다. 또한, 부동산 사이트 중개업자가 전화 상담에서 "1억 원이면 계약을 할 수 있다"고 해, 부리나케 달려갔지만, 그 사이 전셋값이 2000만 원이나 오르기도 했다.
결국, 아이들 학교에서 먼 거리에 있는 전셋집을 찾기로 마음먹었다. 사실상 외곽으로 빠지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쉽지 않았다. 마음에 드는 전세가 있어 계약하러 갔더니 그새 집주인 마음이 변해 월세로 전환하겠다며 계약을 거부하기도 했다.
이자 부담 때문에 이사를 하는 건데 월세를 낼 수는 없었다. 김 씨는 다른 곳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한 달 이내에 지금 사는 집을 비워줘야 하는데 그게 가능할지도 의문이다. 천정부지로 오르는 전셋값을 생각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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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대란, 예외는 없다
영화 '방가방가'로 유명한 영화배우 김인권 씨가 최근 언론과 인터뷰에서 전셋값을 언급해 화제가 됐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 30평대 아파트에서 사는 김인권 씨는 "내년 1월에 전세계약 만료인데 벌써 주인이 전셋값을 올려달라고 말한다"며 "집 주변도 전셋값이 천정부지로 뛰어 (아내와) 서로 얼굴만 쳐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유명 연예인도 전셋값 걱정에선 예외가 아니다. 전셋값이 하루를 멀다 하고 오르고 있기 때문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6월, 전국 전셋값 상승률은 4.6%로 2003년 5월 4.8% 이후 최고치를 찍었다. 올 2분기 전셋값은 지난해 같은 분기보다 4.3% 올랐다. 이는 2003년 2분기(4.7%) 이후 가장 큰 상승폭이다.
상승폭도 문제지만 그보단 전셋값이 최근 꾸준히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 더 큰 문제다. 전셋값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여파로 그 해 10월부터 2009년 2월까지 15주 연속 떨어졌지만 이후 2009년 1월부터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부동산정보업체 부동산1번지가 28일 발표한 서울 시내 전세 아파트의 평균 가격을 조사 내용을 보면 3.3㎡당 1000만 원 이상 가구 수가 17만9458가구로 전세 오름세가 시작된 2009년 1월(3만2107가구)보다 5.6배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서울에서 고가 전세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도 2009년 3.2%에서 현재 15.4%로 급증했다. 구별 평균 전셋값이 1000만 원을 넘는 지역도 9개구에서 17개구로 약 2배 늘어나는 등 전세 오름세가 서울 전역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2010년 한 해 동안, 전셋값은 7.1%나 올랐다. 최저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경우, 월급을 한 푼도 쓰지 않고 꼬박 11년11개월을 모아야 서울에 소형 아파트 전세를 계약할 수 있게 됐다. 이런 현상은 왜 일어나게 됐을까.
과거 전셋값 대란은?
따지고 보면, 전세대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0여 년 전인 1999년에도 전세대란은 있었다. 당시 전세대란은 구제금융 IMF 사태에서 비롯됐다. 1998년 급락했던 전셋값은 1999년 각종 규제 완화와 금리 하향 안정화, 그리고 경기회복 기대 심리로 매매 및 전세 수요가 늘어나면서 급등으로 반전됐다.
1999년 봄 강남권에서 시작된 전세 물량 품귀 현상은 가을 이사철을 앞두고 수요자들이 대거 전셋집을 찾으며 시작됐다. 당시 전셋값은 천정부지로 올랐다. 1998년 25%나 폭락한 전셋값이 1999년에는 30% 이상 급등했다.
다행히 전셋값 급등은 그해 가을 이사철이 지난 뒤 진정추세로 들어갔다. 하지만 2001년, 또다시 전세대란이 발생했다. IMF 후폭풍이었다. IMF 사태 직후 98~99년 주택공급이 급감함에 따라 2~3년 뒤 주택공급 부족 문제는 전셋값 급등으로 이어졌다.
게다가 공급보다 수요가 크게 늘자 집주인들은 이자가 적게 나오는 은행에 돈을 맡기는 대신, 전세를 월세로 전환해 월세 수입을 받는 방법을 택했다. 전세난은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1999년 당시 소형평형 의무비율 폐지, 분양가 자율화 등의 정책을 펼치면서 중대형 위주로 아파트가 공급됐다. 그러나 소형 전세 부족 현상이 전세대란에 한몫했다. 이에 따라 2001년 전셋값은 서울은 집값 대비 전세비율이 64.9%까지 올랐다.
이번 전세대란의 경우, 상당수 전문가은 앞으로 매매가격 하락을 예상하는 수요자들이 집을 사지 않고 그대로 전세 등에서 살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한다. 대기수요 때문에 주택매매가 감소하면서 전세수요가 증가하는 풍선 효과가 전셋값을 상승시키고 있다는 것.
정부의 분석도 이와 같다. 지난 2월 정부는 '2.11 전·월세 시장 안정 보완대책'을 발표하면서 "최근 전셋값 상승은 집값 안정으로 전세 대기수요가 늘어난 가운데 발생했다"고 밝혔다. 매매 잠재수요가 전세수요로 전환되면서 전세 대기수요가 증가하고 있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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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올라야 전세대란이 해소된다?
이 주장을 정리하면 '집값이 하락하는 추세가 되니 좀 더 집값이 내려가면 집을 사자는 다주택자나 세입자들, 즉 대기수요가 증가한다 → 집을 사지 않으니 주택사업자들이 주택을 건설하지 않을뿐더러 기존 건설한 주택에 미분양이 속출한다 → 재개발·재건축 사업이 중단된다 → 주택이 공급되지 않는다 → 집값이 오르고 전셋값도 오른다'는 도식이 성립된다.
하지만 이 주장대로라면 결국 다주택자나 임대사업자가 주택을 사려면 집값이 오르거나 앞으로 오를 것으로 예상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 결국 '집값이 올라야 전세대란이 해소된다'는 다소 황당한 결과가 나온다.
또한, 이 같은 주장이 근거를 가지려면 매매가격 상승이 둔화한 지역에서 전셋값이 크게 올라야 한다. 하지만 실제 상황은 다르다. 주택산업연구원이 2009년 1월부터 2010년 5월까지 서울시 구별 자료들을 분석한 결과, 전셋값 지수 상승폭이 지역은 큰 광진구(16.3p), 강남구(13.5p), 강동구(15.4p), 관악구(10.7p), 서초구(17.5p), 송파구(17.2p), 양천구(10.8p) 등이다. 모두 10p 이상 크게 상승한 지역이다.
하지만 이 지역 주택매매가격 지수 움직임을 보면 평균상승폭보다 높은 상승폭을 나타내고 있다. 광진구는 5.4p, 강남구는 6.5p, 강동구는 7.3p, 관악구는 5.3p, 서초구는 6.3p, 송파구는 5.4p, 양천구는 6.6p 상승했다.
반면, 동대문구, 중랑구, 금천구 등은 전셋값 지수 상승폭이 각각 5p, 5p, 4.5p로 작게 상승했지만, 매매가격지수 상승폭도 1.6p, 2.2p, 0,4p로 작게 나타났다. 결국, 매매가격 하락기대 때문에 대기수요증가가 전세수요를 증가시킨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중대형급 주택만 공급하는 게 전세대란의 원인
전셋값 급등의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서울지역의 공급 부족현상 심화' 때문이라고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2008년 하반기부터 주거용 주택건설 실적이 악화해, 공급이 부족했을 뿐만 아니라 재개발 정책으로 멸실 가구가 늘었다는 것. 이 주장은 전문가들도 대체로 동의한다.
실제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바로는 서울시 주택건설 인허가실적은 2007년 6만2842호, 2008년 4만8417호였다. 2009년 3만6090호였다. 대략 주택이 지어지고 입주까지 2~3년 정도 걸린다고 하면, 2008년부터 급감한 주택건설이 전세난의 원인이 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부분은 수도권 지역에는 뜻밖에 미분양 된 주택이 많다는 점이다. 2011년 5월 말 기준으로 수도권 내 2만7000가구가 미분양 상태로 있다. 전월 대비 8% 증가한 수치다. 미분양 가구는 2008년 말 이후 2만5000~3만 가구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2006년 말과 비교하면 5.7배 가량 많은 물량이다.
이는 건설사가 수익을 높이기 위해 중대형 중심 주택을 건설한 탓이 크다. 중소형 주택을 원하는 수요자 구미에 맞추는 게 아니라 공급자 수익에 맞춰 주택이 공급되고 있다는 게 크다. 실제 미분양 아파트 물량 대부분은 85㎡를 초과하는 중대형 급이다. 결국, 전체 공급도 줄은 마당에 정작 전세수요층, 즉 서민들이 살 수 있는 중소형 급매물은 부족한 상황이다. 그렇다 보니 미분양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
물론 정부도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국토해양부는 2010년 4만3884호, 2011년(1월~6월) 4만 호의 주택건설 인허가 실적을 내렸지만, 이것이 전세대란을 잠재울지는 미지수다. 단순히 전체 공급량을 늘리는 것만으론 전세대란을 잠재우기 어렵다.
전세 수요자를 위한 맞춤용 주택, 즉 저가 주택이나 임대주택을 공급해야 전세난을 해결할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렇지 않고 일반적인 분양주택, 즉 고가, 중대형 급 주택만 공급하면 부동산시장의 투기적 특성 때문에 집값 상승만을 가져올 뿐이라는 것. 하루를 멀다고 오르는 전셋값에 떨고 있는 서민들은 정부의 주택 대책을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들여다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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