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11일 일본 동북지방에서 세계 사상 4번째로 강력한 규모 9.0의 대지진이 발생했다. 공식 집계된 사망자와 실종자만 해도 모두 2만 8천명 가까이 되며 18만 명의 피난민이 발생했다. 재산피해액은 최대 235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한다. 이는 한국의 1년 총예산에 맞먹는 수준이다. 전 세계 128개국, 33개 국제기구와 일본 정부가 협력하여 대재난을 힘겹게 극복해내는 중이다.
쓰나미주의보가 해제돼 심각한 사태는 일단락되었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방사성 물질의 누출과 여진의 공포가 남아있다. 더욱이 일본 정부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발생 2개월 후 까지도 핵 연료봉이 녹아내리지는 않을 것으로 추정해왔지만, 미 국립연구소의 실험 결과 3시간 30분 만에 거의 대부분의 핵 연료봉이 녹아내렸다는 시뮬레이션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일본 정부가 너무 신중한 끝에 과잉 보안을 하면서 원전사고 관련 정보의 절대량이 부족해지고, 온갖 루머나 억측이 난무하게 되는 등 사회적인 문제까지 발생하고 있다. 일례로 "발전소의 폭발로 전국이 계획정전을 하게 되었다"든지, "방사능에 오염되지 않으려면 양치질한 물을 마셔야 한다"든지 하는 이야기들이 횡행하게 된 것이다. 정부가 국민들의 동요를 우려하여 사람이 쓰나미에 휩쓸려 가는 장면 등의 보도를 자제해주길 원하자 신문이나 방송도 알아서 정확한 피해상황을 알리지 않아 상황의 심각성이 은폐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피해지역의 주민은 어떠했겠는가? 극심한 피해를 입은 지역은 주택이 침수되거나 붕괴되어 '탈출'이 이루어졌다. 당장 어디서 밤을 보내야 할지 무엇을 먹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방사성 물질의 누출로 물조차 마실 수 없는 곳이 많았다. 쓰나미의 직접적인 타격을 입지 않은 지역이라고 하더라도 전기가 끊겨서 불도 들어오지 않고, 인터넷과 전화도 원활하지 않아 친지들과 연락조차 할 수 없는 상황인 곳도 많았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재난 속에서 피난민들은 정보와 소통이 절실했을 것이다.
주목해야할 것은 이 시점에 일본의 공동체 라디오가 큰 활약을 했다는 점이다. 현재 일본 동북부 재해 지역에서 40개 이상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이 활동하는 중이다. 이 방송국들 대부분은 재해 직후 특별 프로그램(이하 재해특별방송)을 편성하여 방송하고 있다. '건강을 위해 수분을 섭취해야 한다', '몸을 움직이고 충분한 숙면을 취하라' 등의 기본적인 생활정보와 '대피소에서 물이 배급되고 식사를 할 수 있으며 외국인도 이용할 수 있다'(외국인은 대피소에서 받아주지 않는다는 유언비어가 한때 퍼졌다고 한다)는, 말 그대로 생명에 직결되는 정보 또한 제공이 되었다.
피난민들은 지진 관련 정보와 지역 재해 대책 본부의 정보, 수도국 급수 복구 작업 정보 등 자신들이 위치한 지역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친지들과 연락이 끊긴 사람들을 위해 안부 방송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시시각각으로 불어나는 유언비어를 믿지 말라는 내용이 반복적으로 방송되었고, 상가, 기업, 단체 등에서 시민들에게 알리고 싶은 내용도 공동체 라디오를 통해 전달되었다. 재난 직후만큼이나 안정을 찾아가는 과도기에 잘 대처하는 것이 필요한데 피난민들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실시간으로 정보를 습득하고 안정을 취할 수 있었다.
▲ 공동체 라디오, 주파수만 맞추면 들을 수 있다. ⓒ미디액트 |
그렇다면 일본 공동체 라디오의 재해방송은 어떻게 효과적으로 기능할 수 있었나? 차근차근 짚고 넘어가보자. 먼저 TV, 인터넷, 전화가 모두 무용지물인 재난 상황에서 라디오는 매우 효과적인 알림 수단이라는 사실을 생각해볼 수 있다. 라디오 수신기를 갖고 있고, 메시지를 전달하는 전파신호만 잡힌다면 언제든지 라디오를 청취할 수 있는 것이다. 어려운 조작도 필요 없다. 그저 전원을 켜고 주파수만 맞추면 된다. 게다가 대피소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 중엔 노인들의 비중도 컸는데, 이 사람들 대다수는 인터넷이 가능한 상황에서도 잘 다루지 못했다. 이때 라디오는 정보를 얻는 거의 유일한 창구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런 재해특별방송은 공동체 라디오 방송이 가진 고유한 특성 때문에 가능했다고 볼 수 있다.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방송 권역이 좁고, 지역 공동체를 기반으로 운영된다. 때문에 주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그에 맞는 방송을 편성하며 지역 상황에 맞는 구체적인 정보를 실시간으로 전달해줄 수 있다. NHK와 같은 전국방송이나 방송권역이 넓은 지역방송의 경우 전국적인 사안을 중심으로 방송 내용을 구성하기 때문에 재해지역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필요한 구체적인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재난 상황에 활약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일본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은 여러 번의 큰 재난 상황을 거치며 경험을 축적해 왔다. 대표적으로 1995년의 한신대지진은 6300여 명이 사망하고 1400억 달러의 피해가 발생한 대재앙이었는데, 이때 지진이 일어난 고베지방에서 여러 공동체 라디오 방송(<FM 사랑>, <FM 여보세요>, <FM유멘> 등)이 맹활약을 펼쳤다. 이 방송국들은 "구원 물자나 식사 공급의 정보, 이재 증명이나 의연금 수속 등의 정보를 담은" 방송을 내보냈다. 한국어, 베트남어, 스페인어, 타갈로그어 등의 여러 언어로 이루어진 라디오 방송은 다양한 국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있는 고베지역의 피난민들에게는 '생존을 위한' 메시지였다. 극도의 혼란 속에서 행정 당국도 하지 못했던 일들을 주민 공동체가 직접 해냈다는 여론은 이후 <FM 와이와이>라는 공동체 방송을 탄생시키는 데 결정적인 동력이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큰 필요성을 느끼고 일본 내에서 많은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들이 개국하였다. 이렇게 지진과 해일이 빈번히 발생하는 지역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들에 축적된 경험은 다른 지역의 재난 상황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 ⓒ프레시안 |
이 뿐만이 아니었다. 피해지역을 복구하려면 대단히 많은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역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들은 지속적인 방송을 통해서 자원봉사자들을 모집하였다. <FM 나가오카>는 피해지역의 라디오 방송과 인터넷을 복구하는 것을 돕기 위해 <FM 와이와이>와 함께 인력을 파견하였다. 그리고 많은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들은 발 빠르게 피해지역으로 달려가 피난민들과 자원봉사자들을 인터뷰한 내용, 그리고 피해 상황을 녹음하여 방송하였다. <공동체 미디어 자원(Commuity Media Resource, CMR)>은 괴로워하는 피해지역 아이들을 위해 예능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급하기도 했다.
정보를 최대한 누설하지 않으려는 신중한 일본 정부나 피해상황에 대한 보도를 축소/자제한 대형 언론에 비해, 훨씬 생동감 있고 시기적절한 내용들이 공동체 라디오 방송을 통해 청취자들에게 전달되었다. 이러한 공동체 라디오의 움직임은 결코 '풋내기'나 '아마추어'의 움직임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떤 매체보다도 능숙하고 노련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이는 일본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들의 네트워크가 잘 조직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일본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들은 2011년 현재 총 248개인데, 이중 199개가 일본 커뮤니티 방송 협회 (Japan Community Broadcasting Association, JCBA)에 가입되어있다. JCBA는 지진 발생 당일부터 재해 정보를 가맹국들과 공유하고, NGO와 연합하여 피해지역에 라디오 수신기와 건전지를 보급하는데 앞장섰다. 방송 장비 및 기술 지원으로 임시 재해 방송국을 설립하는 것도 도왔으며 피해가 막대한 가맹국들에게 재해 위로금을 출자하기도 했다. AMARC(세계공동체라디오연합) 일본지부는 일본의 재해 상황을 정리하여 해외 미디어 활동가들에게 전달하고 지원을 요청하였다.
1991년 처음 공동체 라디오 방송이 도입된 이래 많은 논의를 통해 제도적인 보장이 이루어진 일본의 조건에도 주목해야 한다. 도입 초기 일본 우정성(현 총무성)은 공동체 라디오 방송 출력을 1W로 엄격히 제한했었다. 1W면 고작 근방 1km정도 송신을 할 수 있다. 그런데 1995년 고베 대지진 이후 공동체 라디오가 큰 활약을 펼치자 그 제한이 10배나 완화되어 10W로 늘어났다. 1999년에는 다시 20W까지 늘어났다. 처음엔 공동체 라디오 방송에 대한 인식 부족과 사업의 불투명성 때문에 운영도 어려웠고, 방송국 숫자도 적었지만 기준이 완화되자 한 해에 전국적으로 37개의 방송국이 생겨나는 등 크게 발전했다. 이때문에 넓은 권역에서 많은 지역민들이 방송을 청취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40개가 넘는 공동체 라디오가 피해지역에서 활동하고 있지만 해당 지역의 1/4도 커버하지 못한다고 한다. 재난을 당한 지역이 너무나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재해 당시에는 정부가 11개의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에게 20W에서 100W까지 임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허용을 해주기도 하였다.
▲ ⓒ프레시안 |
한국의 경우는 어떠한가? 현재 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은 전국에 7곳이다. 절대적인 숫자도 적은데 이 공동체 라디오 방송국들에 허용된 출력은 1W에 불과하다. 마포 한 지역만을 보더라도 30W는 허가되어야 마포구민이 모두 청취할 수 있다. 1W로는 다수의 청취자들을 확보하기도 힘들고, 광고 수주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방송국 운영하는 데에도 한계가 있다. 이런 조건에서 라디오 밖에 의지할 것이 없을 정도로 심각한 재난 상황이 닥친다면 일본의 경우처럼 공동체 라디오가 활약할 수 있을까? 일본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공동체 라디오가 지역민들에게 꼭 필요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도록 그리고 지역민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정부는 기업에만 탈규제 바람을 불어 넣을 것이 아니라 공동체 라디오의 출력 규제부터 완화해야 할 것이다.
2009년 미디액트 독립다큐멘터리제작과정 13기를 수료하고 2010년에는 이주노동자의 방송(현 이주민 방송 MWTV)에서 뉴스 / 다큐제작 자원활동을 했어요. 2011년에는? 편집위원으로 하나씩 배워가는 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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