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옥심(71) 씨는 주저앉아 관을 부여잡고 한참을 오열했다. 23년 동안 자식이 돌아오기만을 기다리며 대문 한 번 제대로 잠가 본 적 없는 백 씨였다. 그런 백 씨의 새까맣게 탄 마음을 누가 알 수 있을까. 용산 참사로 남편을 잃은 고 이상림 씨 부인 전재숙 씨는 백 씨의 오열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이내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23년 전 실종된 고 안치웅 씨의 초혼장이 29일 '민주열사 안치웅 장례위원회' 주최로 열렸다. 서울대학교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영결식을 진행한 뒤 마석 민주열사모역에서 하관식을 치른다. 안치웅 씨는 지난해 7월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및보상심의위원회에서 민주화운동 사실이 인정됐다. (☞ 관련기사 : "23년 동안 아들 기다리며 열어놓은 대문, 이제 닫습니다")
▲ 고 안치웅 씨의 어머니인 백은심 여사가 아들의 유품을 넣은 관을 부여잡고 오열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
"눈이 맑고 선한 얼굴의 대학생을 기억합니다"
이날 영결식에는 박원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 배은심 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회장 등이 참석했다. 안치웅 씨가 1985년 대우어패럴 농성 관련 구속될 당시 변호를 맡기도 한 박원순 상임이사는 그를 "눈이 맑고 선한 얼굴의 대학생이었다"고 회상했다.
박원순 상임이사는 "1985년 6월, 영등포구치소에서 만난 안치웅 씨는 세상의 불의를 보고는 참을 수 없었던 용기 있는 젊은이"였다며 "똑똑한 청년이었다"고 설명했다. 박 상임이사는 "아무 일이 없었더라면 지금쯤은 어떤 처녀와 결혼해 아이를 둘 정도는 낳고 돈도 벌고 부모님께 효도도 할 40대 장년이 되어 있었을 그였다"고 말했다.
박 상임이사는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그를 볼 수 없다. 아니 지난 23년 동안 우리는 그를 보지 못했다"며 "도대체 누가 그를 데려갔을까"라고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박 상임이사는 "그 비겁하고 잔혹한 자의 얼굴을 우리는 보지 못한다"며 "또한 언제 어디서 그가 우리 곁을 떠났는지도 우리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박 상임이사는 "그렇기에 우리는 참으로 부끄럽다"며 "그토록 긴 세월 동안 우리는 억울한 진실을 밝혀내지도 못했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박 상임이사는 "그러나 우리가 그를 다시 볼 수 없어도 그가 이 땅에 남긴 거대한 희생과 헌신을 볼 수 있다"며 "그를 다시 만날 수 없어도 그가 이루고자 했던 민주주의와 사람답게 사는 세상의 거대한 변화의 흐름은 만날 수 있다"고 밝혔다.
박 상임이사는 "우리는 그가 없는 이 세상에서 편히 잠자고 편히 놀 수 없다"며 "다시 옷깃을 여미고 좀 더 많은 민주주의, 좀 더 높은 자유와 평등, 좀 더 나은 사회를 향해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 박원순 상임이사가 조사를 낭독하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
▲ 김미선 무용가가 추도무를 추고 있다. ⓒ프레시안(허환주) |
"마음 속에 묻었던 아들을 이제야 땅 속에 묻습니다"
배은심 회장은 지난 23년 동안 자식을 가슴에 품고 살았던 안치웅 씨의 부모들을 걱정했다. 배 회장은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는 자식을 땅에 묻는 부모의 심정은 이루 헤아릴 길이 없다"며 "행여 자식이 집으로 찾아올까 매일 밤 형광등을 켜놓고 지낸 세월이 자그마치 23년이다"고 말했다.
배 회장은 "마음 속에 묻었던 아들을 이제야 땅 속에 묻는다"며 "이것이 이 나라 독재정권의 실체를 그대로 보여주는 현실"이라고 비판했다.
지윤 서울대학교 총학생회장은 "독재정권이 물러갔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나아진 게 없다"며 "쌍용자동차 노동자, 용산 참사, 그리고 최근 유성기업 노동자 등을 보아도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지윤 총학생회장은 "고인의 뜨거운 열정과 부단히 올바른 사회를 만들려 했던 노력을 이어 받겠다"며 "고인에게 부끄럽지 않도록, 그가 바랬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민주열사 안치웅 장례위원회'는 '안치웅 동지는 행방불명이 아닙니다'라는 글을 통해 "역사가 진실을 안다면 안치웅은 행방불명이 아니다. 의문사가 아니다"라며 "독재자들에 의한 타살이다"라고 밝혔다.
이들은 "독재자들은 안치웅을 사회와 역사로부터 은폐하려 했지만 결코 은폐되지 않을 것"이라며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와 같은 죽음들이 형태만 달리해 반복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전체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