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의경 구타 및 가혹행위 피해자' 가족인 박종인 씨는 안경을 벗고 눈물을 닦았다. 먼저 떠나보낸 자식 생각에 시종 목이 메었던 그였다. 박 씨는 지난 2010년 6월 급성 혈액암 판정을 받고 사망한 고 박정수 의무경찰의 아버지다. 박정수 씨는 부대 내 구타 및 가혹행위에 의한 스트레스로 병을 얻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가인권위원회가 6일 연 '전의경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향에 관한 토론회'에 참석한 박종인 씨는 "멀쩡한 아들이 무자비한 폭력으로 22살 꽃 다운 나이에 죽었다"며 "전·의경 내에서 구타와 가혹행위가 영원히 사라지길 바란다"고 운을 뗐다.
고인이 된 박 씨 선임병들은 박 씨가 기동대에 오자마자 인사를 해보라고 지시하고는 잘 하지 못한다면서 2시간가량 때리는가하면 또 다른 선임은 박 씨를 의경 버스에 태워 아무 이유 없이 35분 동안 발로 밟기도 했다고 한다.
또 보일러실로 박 씨를 불러 아무도 없는 가운데 몇 시간을 때리고 움직이지도 못하게 만든 뒤 하루 종일 가둬 놓는가하면 하루 종일 물을 안 먹이기도 했다. 잠을 재우지 않기도 했다.
그러다 2009년 12월 박 씨는 건강검진 결과, 급성 혈액암 판정을 받았다. 의사는 3개월 전에 발병한 것으로 추정했다. 이후 투병 생활을 6개월 정도 했으나 박 씨는 병마를 이기지 못하고 2010년 6월 30일 사망했다.
▲ 지난 1월 26일 서울영등포경찰서 5층 대강당에서 전의경들이 구타나 가혹행위를 당한 적이 있는지에 대한 소원수리를 작성하고 있다. ⓒ연합뉴스 |
"외박으로 집에 와도 옷 갈아입지 않았다. 알고보니 온 몸이 멍자국"
박종인 씨는 "아들이 외박으로 집에 오면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며 "여름 외박 때는 긴 옷을 입고 있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온 몸에 멍이 있어서 못 벗었던 거였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은 병상에서 자신에게 상습적으로 구타를 한 선임병을 두고 '죽이고 싶은 사람'이라고도 했다"며 "그들 때문에 자신이 이런 병에 걸렸다고 한 없이 울었다"고 밝혔다.
그는 "아들은 자신이 도덕적으로 열심히 살았는데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는지 모르겠다며 내게 살려달라고 매일 애원했다"며 "아버지로서 자식에게 무슨 짓을 해서라도 꼭 살려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젠 거짓말이 됐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그는 "부대 내 가혹행위 이유는 국가와 지휘관들의 개선 의지가 없기 때문"이라며 "제2의 박정수, 제3의 박정수가 나오지 않도록 현재의 전·의경 제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전의경 제도 폐지해야"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패널들도 현 전·의경 제도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에 동의했다. 김상균 백석대학교 법정경찰학부 교수는 "기강유지를 이유로 이뤄지는 부대 내 구타, 가혹행위나 선임병에 의한 성추행 등 인권침해와 이로 인한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며 "수면 부족과 열악한 식사 환경, 길고 격심한 노동 강도 등 혹독한 노동 환경이 강요되고 있으며 강제노동의 환경에 처해있다"고 주장했다.
김 교수는 "이러한 전·의경 관련 사건사고들은 경찰 관리자들의 지휘만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대변하고 있다"며 "종합적이고 근원적인 문제의 진단과 대처방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부는 전·의경 제도의 문제점이 곳곳에서 지적되자 오는 2012년까지 전·의경 제도를 폐지한다고 밝힌바 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에서는 기류가 바뀌더니, 각종 문제가 다시 터진 지난달 21일 강제로 차출하는 전경은 폐지하되, 자원입대인 의경은 2015년까지 매년 1만4806명을 배정하는 것으로 대체복무계획을 수정했다.
김 교수는 의경 역시 시위·집회관리, 방범, 교통단속 등의 활동에 동원되고 있음을 이유로 "의경은 제한적인 사무 보조 인력으로만 활용하고 중요한 경찰활동은 정규경찰관이 실시해야 한다"면서 "이미 계획한 전·의경 대체 경찰관사업을 차질 없이 집행해 최소한 2015년 이후엔 전·의경제가 완전히 폐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경제도, 무턱대고 폐지할 수 없다"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전·의경 제도 폐지에 동의했다. 오 교수는 "헌법상 국방의무와 그 내용 중 하나인 병역의무를 엄격하게 구분해 해석해야 한다"며 "의경제도를 폐지하는 게 헌법을 준수하면서 전의경의 인권을 보장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경찰의 순수한 치안업무인 집회 및 시위의 진압 임무는 국방의무에 포함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것. 오 교수는 "병역 의무자를 전투경찰로 전환-배치하는 것은 헌법적 한계를 일탈한 편법"이라며 "법치주의에 위배된다"고 말했다.
반면 경찰청 경비국 이영철 경정은 전·의경 제도의 문제점은 인정하면서도 제도 폐지에는 "무턱대고 할 수 없다"고 반대했다. 이 경정은 "전·의경을 사실상 군인이라고 단정지으며 임무수행 자체를 위헌적 소지가 있는 것처럼 하는 건 국가의 부실한 재정여건으로 인해 직업경찰관을 대신해 부족한 치안력을 보완해온 전·의경들의 명예 차원에서도 매우 위험한 접근이다"고 주장했다.
이 경정은 "국민에게 보다 질 높은 치안서비스 제공 차원에서 전문성이 높은 직업경찰관으로 전·의경을 대체하는 게 원칙적으로 바람직하나 직업경찰관으로의 대체가 전제되지 않고 무작정 전·의경을 폐지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 경정은 "전의경이 치안력의 상당부분을 감당해 오고 있는 현실에 비춰 결국 일반 국민들에게 치안공백의 부담을 고스란히 짊어지게 할 위험성이 농후하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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