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아 씨는 이른바 '신정아 사건' 전후의 이야기를 소상해 해명한 책 <4001>(사월의책 펴냄)을 펴내는 소회를 이렇게 밝혔다. '4001'은 신 씨가 2007년 10월부터 2009년 4월까지 1년 6개월간 복역하며 불렸던 수인(囚人) 번호.
22일 서울 중구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 등장한 신정아 씨는 옅은 화장에 단정한 차림새로 4년 전 검찰 수사를 받으며 언론에 노출됐던 당시의 초췌한 맨얼굴과 대조적인 모습이었다. 다만 다소 긴장한 듯한 굳은 표정은 간담회 끝까지 풀지 못했다. 이날 기자 간담회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몰려 취재 경쟁을 펼쳤다.
신정아 씨는 "그저께부터 몸에 열꽃도 피고. 출소했을 때 열이 나고 퉁퉁 붓던 것처럼 그런 상태가 됐다"며 "세상에 나오는 것이 참 힘든 것 같다. 여러분이 보시기에는 고생했던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 보일지 모르나 개인적으로 죽을 힘을 다해서 버텼다"고 말했다. 그는 "서운함, 누군가에 대한 원망, 섭섭함, 후회도 다 쓸어내려고 노력했고 지금은 비교적 건강해진 상태"라고 덧붙였다.
신정아 씨는 "지금도 가장 고민스러운 부분은 '내가 무슨 일을 하면서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이라며 미술계에 복귀하고 싶은 마음을 내비쳤다. 그는 '미술계로 복귀하느냐'는 질문에 "미술계에는 사건의 파장이 더 컸기 때문에 미술계로 돌아간다는 생각은 여태까지 해본 적이 없다"면서도 "좋은 곳에서 연락을 주시면 최선을 다해서 일하겠다"고 말했다.
▲ 책 <4001>을 낸 신정아 씨 ⓒ프레시안(최형락) |
"일기에는 더 많은 이야기가 있다"
언론의 관심은 정운찬 전 총리, 노무현 전 대통령,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 전 <조선일보> C 기자 등 이 책에 등장하는 여러 유명 인사들에게 쏠렸다. 신정아 씨는 이 책에서 이들의 이름을 대부분 실명으로 쓰면서 이들과의 관계 역시 적나라하게 밝혔다.
예를 들어, 신정아 씨는 <조선일보> C 기자가 회식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택시에 동승해 자신을 성추행한 사실을 이렇게 적나라하게 밝혔다.
C 기자는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달려들어 나를 껴안으면서 운전기사가 있건 없건 윗옷 단추를 풀려고 난리를 피웠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다. 그날 내가 입은 재킷은 감색 정장으로 단추가 다섯 개나 달려 있었고 안에 입은 와이셔츠도 단추가 목 위까지 잠겨 있어 풀기가 아주 어려운 복장이었다. (…) C 기자는 그 와중에도 왜 그렇게 답답하게 단추를 꼭꼭 잠그고 있느냐는 소리를 했다. (94쪽)
신정아 씨는 이들의 이름을 밝힌 이유를 놓고 "사실을 밝히는 입장에서 일부를 감추는 것은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런 부분이 다 숨겨지게 되면 지난 4년간의 시간이 설명되지 않았다"면서 "최소한으로 표현했음에도 당사자들에게는 아픔이 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신정아 씨는 이 책에서 자신에게 지분거렸다고 밝힌 정운찬 전 총리가 명예 훼손 소송 등을 걸어 반발할 가능성을 놓고 "저희 변호사가 법률적 검토를 해서 그 선 내에서 최대한 말할 수 있는 내용을 담았다"며 "일기에는 더 많은 내용이 있는데 삭제가 된 것은 맞다"고 말했다.
신정아 씨는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의 이야기가 다시 상처를 키우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말씀드리기 어려운 부분이고 이 책에 들어가는 것이 바람직한지에 대해서도 심사숙고하고 고민했다"며 "그러나 당시에도 저희 두 사람을 두고 너무 많은 이야기가 있었기 때문에' 사실은 이랬다. 이부분에는 지혜롭지 못했다'라고 밝히고 싶었다"고 말했다.
신정아 씨는 "이 사건으로 인해서 아주 슬프게 흘러버렸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인연이라도 서로가 새롭게 시작하는데 있어서 긍정적인 격려의 마음을 가지는 데는 (사실을 밝히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이해해 달라"고 덧붙였다. 신정아 씨는 책에서 변양균 전 정책실장과의 첫만남부터 내밀한 사생활까지 숨기지 않고 공개했다.
신정아 씨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의 관계를 밝힌 것에 대해서는 "지금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에 언급하는 것 자체가 조심스러웠다"며 "그러나 당시 인간적으로 신뢰하고 믿는 사람들을 일일이 다 배후설이라고 하면 어떻게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취지로 말을 아껴서 썼다"고 말했다.
▲ 신정아 씨 기자간담회에 몰린 기자들. ⓒ프레시안(최형락) |
"'성로비' 기사에 사람들을 기피하는 증상 생겼다"
특히 신정아 씨는 <문화일보> 누드 사진 게재처럼 언론에서 자신을 '성로비'와 결부시켜 생각하는 것에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그는 "처음 <문화일보>에 사진이 나왔을 때는 '이런 작품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고 크게 당황하지 않았다"며 "그러나 이 문제는 '성로비'로 확장이 됐고 제가 세상으로 나오는데 가장 힘든 부분이 됐다"고 말했다.
신정아 씨는 "당시 여성으로서 모든 것이 다 까발려지고 창피와 수치를 당한 것이 저한테는 큰 상처였고 지금도 콤플렉스로 있는 것 같다"며 "<문화일보> 성로비 기사가 나오면서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고 누군가 저를 알아보면 기피하고 그런 증상이 생겼다. 가족들과 연락을 하지 못하는 것도, 한번쯤 인사드리고 싶은 가까운 분을 차마 찾아뵙지 못하는 것도 다 이런 부분"이라고 말했다.
신정아 씨는 이 사건을 겪으면서 기자들에 대한 배신감도 토로했다. 그는 "그 전까지 주로 접했던 문화 담당 기자들과 나름 언니 동생처럼 믿고 지냈는데 그런 분들도 다 나에 대한 좋지 않은 기사를 쓴 데 대한 서운함이 있었고 마음에 상처도 입었다"며 "아마도 내가 직업관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신정아 씨는 자신의 아버지를 언급하면서는 울컥했다. 그는 "이 책의 표지에 있는 그림은 미국 캔자스 대학에 다닐 때 그린 것으로 어렸을 때 아버지에게서 받은 첫 선물이었던 핑크 원피스를 소재로 그린 작품"이라고 소개하면서 "4년이나 보낸 힘든 시간을 책으로 내면서 아버지를 소재로 한 이 작품을 표지로 삼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지금은 이 세상에 계시지 않으나 마음 속으로 가장 아프게 생각하고 죄송한 분이 바로 아버지"라고 말하며 눈물을 보였다.
신정아 씨는 사건의 출발점이 된 자신의 학력 위조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무거운 짐으로 속죄해야 하는 부분이다. 브로커를 통했든 어쨌든 전적으로 나의 잘못"이라며 "그러나 섭섭하고 바로잡고 싶은 부분은 학위를 쉽게 생각하고 남의 도움을 받은 것은 잘못이나 내가 위조하지 않았다는 것"라고 항변했다.
그는 "'학위가 없으니 마찬가지 아니냐'고 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나의 도덕심과 관련된 부분이다. 나는 학위가 있다고 위조하거나 거짓말하지 않았다"면서 "그럼에도 내 이름 앞에는 '위조'라는 타이틀이 항상 있어 서운함이 있다. 5월 중에 마무리될 '동국대-예일대' 소송을 통해 많은 사실이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신정아 씨는 마무리 발언에서 "지난 몇 년 동안 여러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고 거듭 말하면서 "오늘 오신 분들은 제가 4001번과 헤어지는 날에 축하하러 오신 것으로 생각하겠다. 앞으로 심려끼친 분들께 보답해드리는 것은 열심히 사는 것밖에 없을 것 같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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