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씨의 가게는 상수역 인근에 위치해 손님들의 눈에 잘 띄지 않는 단점이 있다. 가게를 연지 6개월이 지났지만 주말조차도 가게 테이블을 다 채우지 못했다. 박 씨는 고심 끝에 가게 홍보를 위해 할인쿠폰 잡지에 광고도 내고, 가게 홈페이지도 개설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그러던 중 소셜커머스 사이트를 알게 됐다. 박 씨는 이 사이트에 하루에도 엄청난 수의 사람들이 음식점 등에 관한 정보를 얻으려고 방문한다는 소식을 듣고 등록했다. 하지만 소셜커머스 서비스 사이트에서 요구하는 등록 조건은 상당히 까다로웠다. 상당량의 '반값 할인 쿠폰'을 발행해야 하고 적지 않은 수수료를 내야했다. 박 씨는 일종의 광고비라 생각하고 수용했다.
등록한 이후, 4만 원 상당의 세트 메뉴 요리를 2만 원에 먹을 수 있는 쿠폰을 들고 오는 손님으로 가게는 늘 북적거렸다. 주말은 물론이고 평일에도 손님들도 붐볐다. 손님이 많아져 좋긴 했지만 쿠폰 손님 때문에 예약 손님도 받기가 어려워졌다. 이전에 있던 단골손님들의 불평이 쏟아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순이익도 줄었다. 손님이 들어 서빙을 보는 아르바이트생도 한 명 더 뽑았고, 식자재도 더 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반값만 받고, 수수료도 떼야 하니 이익은 줄 수밖에 없는 노릇.
그나마 이렇게 쿠폰을 이용한 손님들이 이후 가게를 찾을 거라 생각했지만 그게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박 씨는 "쿠폰을 이용한 손님에게 물어보니 반값으로 먹은 음식을 제 값을 내고 먹자니 아무래도 돈이 아깝지 않겠냐는 답하더라"고 전했다.
박 씨는 "가게에 테이블도 몇 안 되는데 엄청난 양의 쿠폰을 발행했다. 과부하가 걸릴 수밖에 없다"며 "다시는 소셜커미스 서비스 사이트에 쿠폰을 발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 모 쇼설커머스 서비스 업체에서 다이아몬드 목걸이를 반값으로 할인해주는 쿠폰을 발행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뉴시스 |
유행이 된 반값 할인 소셜커머스
소셜커머스가 작년부터 이슈가 되고 있다.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 Social Network Service)를 활용해 이루어지는 전자상거래의 일종으로 일정 수 이상의 구매자가 모일 경우 파격적인 할인가로 상품을 제공하는 판매 방식이다. '소셜쇼핑'이라고도 한다. 상품의 구매를 원하는 사람들이 할인을 성사시키기 위해 공동구매자를 모으는 과정에서 주로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현재 소셜커머스 비지니스 모델은 직접적인 영업을 하는 사이트, 그리고 이런 사이트들을 한 곳에 모아놓은 메타 사이트 등 두 가지 모델이 있다. 한국에는 작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셜커머스 서비스 업체가 운영되고 있는데 티켓몬스터, 쿠팡, 위폰 등이 대표적인 업체다. 이들은 음식점, 주점 등에서 상품, 예를 들면 런치 세트 등을 유치해 이들에게 일정부분 수수료를 받고 할인을 원하는 공동구매자들에게 연결해준다.
소셜커머스 업체가 등록한 상품은 일정 수 이상이 구매해야 한다는 조건 하에 대개 50~90%까지의 높은 할인율이 적용된다. 예를 들면 1000명 이상이 구매할 경우 정가의 50%가 할인된다는 식이다.
일반 자영업자가 운영하는 소규모 식당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할인율이지만 앞서 박 씨의 사례에서 보듯 대부분의 판매 업체는 홍보 효과를 기대하고 이를 수용한다. 소셜커머스는 소비자들이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를 통해 자발적으로 상품을 홍보하거나 구매자를 모으기 때문에 실제 마케팅에 드는 비용이 거의 없다.
실제로 상당수 업체는 소셜커머스 자체를 통해 수익을 얻는다기 보다는 장기적 고객을 확보하는 홍보 마케팅 수단으로 활용한다. 실제 작년 9월께 소셜커머스를 이용한 박한성(가명-39) 씨는 "반값 할인 쿠폰으로 당시엔 손해를 봤지만 그로 인해 가게에 대한 인지도가 높아져 이후 많은 손님들이 가게를 찾는다"고 말했다. 그는 논현역 부근에서 아로마 마사지 가게를 운영하고 있었다.
구매자의 반응도 좋다. 대학생인 박숙경(23) 씨는 "하루에 두 번씩은 소셜커머스 업체 사이트에 꼭 들어간다"며 "원하는 상품을 절반 가격에 살 수 있으니 누가 이것을 싫어하겠냐"고 반문했다.
높은 수수료 등 부작용도 만만치 않아
이런 장점으로 소셜커머스 시장은 대중화된지 불과 1년도 지나지 않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2010년 말까지 약 500개의 소셜커머스 서비스 업체가 등장했고 올해 말까지 약 1400개가 새로 생길 거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소셜커머스의 2011년 시장규모는 600억 원으로. 2012년에는 3000억 원 규모로 늘어날 것으로 추산된다. 소셜커머스가 새로운 소비문화로 자리 잡은 셈이다.
특히 트위터나 페이스북 등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에 친숙한 젊은 층의 이용도가 높다. 8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소셜커머스 활용 실태와 만족도'를 보면 20대 응답자의 59.6%가, 30대의 48.7%가 '소셜커머스를 통해 할인쿠폰이나 제품을 구매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고 40대는 26.5%로 나타났다.
만족도도 높다. 소셜커머스를 이용해본 응답자의 84.4%는 만족한다(대체로 만족 67.2%, 매우 만족 17.2%)고 답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소비자에게 저가 구매의 기회를, 판매자에게는 홍보효과의 극대화를 줄 수 있어 앞으로 더욱 활용도가 높아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소셜커머스의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무엇보다 소셜커머스 서비스 사이트에 상품을 등록한 업체들의 불만은 적지 않다. 홍대에서 막걸리점을 운영하고 있는 박인서(46) 씨는 "소셜커머스 서비스 사이트에서는 우리 가게 능력보다도 더 많은 반값 쿠폰을 내놓기를 요구한다"며 "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구매하고는 사용하지 않은 쿠폰, 소위 '낙전'은 서비스 사이트에서 100% 이익을 가져간다"고 말했다.
보통 쿠폰 사용 기간은 3개월로 이 기간에 사용되지 않은 '낙전'은 전체 쿠폰의 10% 안팎인 것으로 알려졌다. 가령 한 가게가 발행한 2만원짜리 쿠폰을 고객이 구매하고 사용하지 않을 경우 이 2만 원은 소셜커머스 사이트가 갖는다. 박 씨는 "그나마 규모가 큰 업체들의 경우 낙전 수입을 소셜커머스 서비스 사이트와 협의한 뒤 나누지만 우리 같은 소규모 업체들은 낙전 수입에 관한 권리는 주장도 못 한다"고 밝혔다.
박 씨는 "게다가 어느 정도 알려진 소셜커머스 서비스 사이트의 경우 수수료는 쿠폰금액의 25%"며 "50% 할인에 수수료까지 붙으니 이건 소비자를 볼모로 자영업자를 착취하는 구조라고 볼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현재 소셜커머스 시장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는 상위 3개 사이트는 등록 업체에게서 쿠폰금액의 약 20~30%의 수수료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외 신생 사이트의 수수료는 약 10% 정도 수준이다. <프레시안>은 수수료가 25%로 알려진 모 업체에 현 수수료 비율을 문의했으나 "영업비밀이라 알려줄 수 없다"는 답변만 돌아왔다.
▲ 모 쇼설커머스 사이트. ⓒ뉴시스 |
소비자 불만도 곳곳에서 나와
업체들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쿠폰을 사용하는 소비자들의 볼멘소리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적지않은 소비자들이 기간 내에 사용하지 못한 쿠폰을 환불해달라고 요청하지만 '낙전' 수입을 사이트가 고스란히 가져간 상황에서 각 등록 업체들이 이에 응하기는 어렵다. 홍보도 홍보지만 손해를 보면서 장사를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소셜커머스 사이트를 통해 50% 할인된 가격으로 음식점 쿠폰을 구매한 직장인 박수영(33) 씨는 쿠폰을 사용할 수 있는 인원과 날짜가 정해져 있어 번번이 사용을 하지 못했다. 결국 쿠폰 사용 기한을 넘기게 돼 환불을 요청했으나 업체 측은 "환불기간이 끝나 불가능하다"며 거부했다.
연극관람을 위해 50% 할인 쿠폰을 산 이기명(31) 씨도 주중에 시간이 안 돼 몇 차례 주말에 예약을 시도했으나 연극 업체에서는 "주말에는 어렵다"며 난색을 표했다. 결국 그렇게 몇 차례 연기하자 쿠폰 유효기간이 지났다. 이 씨는 업체에 환불을 요구했으나 역시 "환불기간이 끝나 불가능하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녹색소비자연대가 지난 1월과 2월 접수된 소셜커머스 관련 소비자 피해사례 104건을 분석한 결과, 환불거부 사례와 유효기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어 쿠폰을 사고도 이를 사용하지 못한 사례가 가장 많았다. 또한 유효기간 안에 쿠폰을 사용하더라도 가게에 많은 소비자들이 몰려 예약이 어렵거나 서비스가 부실해지는 경우도 나타났다.
소셜성은 잃고 매스 마케팅 홍보만 열중하는 서비스 업체들
이처럼 소셜커머스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소비자와 서비스제공업체가 모두 피해를 입게 되는 것은 소셜커머스 사이트가 본래의 '소셜성'은 잃고 '대중 마케팅 홍보'에만 열중한 탓이라는 게 중론이다.
소셜커머스 메타 서비스업체 '쿠폰잇수다' 박태훈 대표는 "소셜커머스 서비스를 하는 업체 중 상위에 랭크된 업체는 많은 사람들에게 쿠폰을 유출하기 위해 TV광고, 버스 광고 등을 하고 있다"며 "이렇게 하다 보니 수익을 보전하려고 제품 제공 업체들에게 높은 수수료를 강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또한 TV광고를 한다며 업체들에게 쿠폰의 수를 높일 것을 강요한다"며 "쿠폰수가 적을 경우, 소규모 음식점 등에서는 이를 약간의 홍보비로 생각할 수 있겠지만 서비스 업체에서는 몇 천 장을 풀도록 하니 큰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결국 부담을 진 등록 업체의 서비스 질은 낮아지고 고객들의 불만은 커질 수밖에 없다. 가게들로서는 홍보를 위해 소셜커머스에 등록했는데 오히려 홍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박 대표는 "소셜커머스는 자신이 몰랐던 업체를 광고로 방문한 후, 만족했을 때 다시 재방문하도록 하는 역할을 하는 일종의 채널"이라며 "하지만 대부분의 소셜커머스 서비스 사이트는 수익에만 신경을 쓸 뿐 소비자나 등록 업체가 서로 만족하고 계속적인 구매를 이어가도록 하는 고민은 부족한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 대형 외식 업체가 지난 1월, 소셜커머스 서비스 업체에 스테이크 정식 요리를 50% 할인하는 쿠폰을 제공했다. ⓒ뉴시스 |
'구매자와 판매자의 직거래' 등 본래 소셜커머스가 가진 순기능을 되살려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소셜커머스>(블로터앤미디어 펴냄)라는 책을 낸 김철환 <블로터닷넷> 소셜커머스랩장은 "'소셜커머스'가 단순히 반값 구매만을 뜻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는 "현재 소셜커머스 서비스 업체는 반값에만 신경을 쓰지 정작 입소문 등을 통해 상품을 알리고 이야기하는 것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고 있다"며 "결국 껍데기만 놓고 본다면 SNS를 사용하고 있으니 소셜커머스라고 할 수 있겠지만 이게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소셜커머스는 판매자와 구매자의 직거래 유통구조를 만들어줌으로서 유통비용, 마케팅 비용 등을 줄여 판매자도 이익을 얻고 구매자도 이익을 얻도록 하는 게 지향점"이라며 "하지만 현재의 소셜커머스라고 하는 건 소비자도 구매자도 실패하는 구조다. 반값 할인이 일반화되면 그 때는 또 다른 제 살 깎아먹기 경쟁이 시작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철환 랩장은 "중요한 것은 소비자와 판매자간 신뢰를 만들고, 그 후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도록 하는 것"며 "페이스북에 직거래 장터를 만들어 이곳에 가입한 사람끼리 상품 정보를 공유하며 직거래를 한다거나, 판매자들이 트위터 계정을 올리고 소비자와 소통하는 것이 본질적으로 소셜커머스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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