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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3차 재앙…"돼지 씨가 말랐다" 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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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3차 재앙…"돼지 씨가 말랐다" 비명

퇴비·사료업체, 피해 대책서 철저 외면…결국 소비자 부담으로

전대미문의 구제역 사태. 축산농가 피해 보상과 방역비에만 2월 말까지 3조 원의 국가 재정이 투입됐다. 끝이 아니다. 매몰지 환경 피해를 막기 위한 추가 관리 비용까지 더하면 4조 원 이상이 들어갈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다. 2001년 650만 마리의 가축을 살처분한 영국은 방역 비용만 4조 원이 들었고, 농업·관광 손실액은 9조 원이 넘는다는 보고도 있었다. 피해가 2차, 3차로 진행될 때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것이다.

2011년 한국에서도 현실화될 전망이다. 무엇보다 당장 퇴비업계와 사료업계들이 '악' 소리를 내고 있다. 전국에서 1/3의 돼지가 생매장됐다. 원료로 쓸 축산 분뇨가 사라졌고, 사료를 먹일 돼지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이들은 축산농가처럼 살처분 실비 보상을 받지도 못 한다. 구제역 살처분을 1차 피해, 대량 매몰에 의한 환경오염을 2차 피해라고 한다면, 이들 업계의 피해는 3차 피해라고 할 수 있다. 정부의 대책은 2차에서 끝이다.

문제가 더 심각한 것은 악순환이 여기에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퇴비 공급이 원활치 못 하거나 가격이 상승하면 채소류 등 농산물 수익이 악화되거나 가격이 오르는 4차 피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사료값 인상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영국의 '9조 원 손실' 경험이 예사롭지 않은 이유다. 현장의 '악' 소리를 들어봤다.<편집자>


▲ 텅 빈 축사. 여기서 나올 퇴비도 없고, 사료를 먹일 가축도 없다. ⓒ김흥구

"상황이 뭐가 있겠나. 구제역 때문에 만들어 놓은 퇴비도 팔지 못하고 있다. 벌써 석달째다. 구제역 지역 농가는 보상이라도 받지만 우리는 그러지도 못한다. 이건 그냥 죽으라는 것이다."

경기도 모 지역에서 퇴비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김영기(가명·68) 씨는 이렇게 말하며 한 숨을 내쉬었다. 그의 비료 공장에는 돼지 배설물로 만든 퇴비가 수북이 쌓여있었다. 김 씨의 사업장은 구제역 발생지역으로, 그간 퇴비 이동이 금지돼왔었다.

김 씨는 인터뷰에 응하면서 자신의 회사 상호명과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줄 것을 요구했다. 자신의 회사가 구제역이 발생한 지역에 있다는 소문이 나면 퇴비를 받는 농가는 물론, 분뇨를 받으러 가는 농가에서도 자기 회사의 차량 진입을 허용하지 않는다고 했다.

"언제까지 이런 상황 지속될지 모르겠다"

농림부에서는 퇴비 관련, '반숙(반쯤 썩힌 퇴비)은 이동이 가능하다'고 공문을 내렸지만 일선 시와 군에서는 구제역 발생 지역에서 온 퇴비는 받을 수 없다며 이를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 씨는 "대체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모르겠다"며 "언제까지 이런 상황이 지속될지 모르겠다"고 답답함을 호소했다.

그나마 3월 1일부터는 통제가 약간 풀려 퇴비 운송 작업을 조금씩 하고 있다. 김 씨는 "하지만 아직까지 해제가 됐다고 공문이 내려오지 않아 주위 비료 업체에서 (운송을 하는지) 동태를 보면서 일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김 씨의 퇴비공장은 돼지 농장 안에 세워져 있었다. 그렇기에 구제역으로 지역 자체가 통제가 되니 옴짝달싹하지도 못하는 상황이 오게 된 셈. 김 씨는 "나처럼 농장을 끼고 퇴비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곳이 전체 퇴비업체의 60~70%를 차지한다"고 설명했다.

김 씨의 한 달 생산량은 20kg 포대 4만 개 정도다. 1년에 40~50만 포 정도를 생산한다. 하지만 그 생산량의 80~90%는 1~3월 사이에 팔린다.

"농민들 대부분이 퇴비를 1~3월에 구매한다. 3~4월에 파종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과수 농가라든지, 하우스 농가 등은 미리 퇴비를 구매한다. 그렇다보니 1~3월이 퇴비 사업은 가장 피크다. 올해는 구제역 때문에 이런 시기를 놓쳤으니 답답할 수밖에."

김 씨는 "농민들은 퇴비가 모자라면 결국 없는 대로 농사를 짓는다"며 "결국 일정 시기가 지나면 퇴비를 생산, 운반할 수는 있어도 농민들은 이를 사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김 씨는 "정부는 이런 상황임에도 영세 퇴비 업체 사정을 나몰라라하고 있다"며 "축산농가만 챙기면 끝인가"라고 반문했다.

김 씨는 "82년부터 퇴비 사업을 시작했으나 이렇게 힘든 적은 없었다"며 "과거엔 이런 일(구제역)이 발생하면 부분적으로나마 보상을 해줬는데, 지금은 전국적으로 일이 터지니깐 정부도 속수무책인 듯싶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돼지 살처분으로 분뇨도 줄어 퇴비 생산에 영향줄 것"

한국유기비료공업협동조합이 퇴비업체 대표 등 78명을 대상으로 지난 1월 11~15일 설문조사를 한 결과, 절반 이상인 55%가 지자체로부터 분뇨 수거활동을 통제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또한 퇴비 공급활동을 통제받고 있는 곳도 45%에 달했다.

퇴비업계는 이대로 가다간 축산분뇨 등 원료 조달이나 퇴비 공급에 큰 차질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 안성에 위치한 A업체는 운송통제로 인해 2개월 째 생산이 중단됐다. 시설비 등으로 투자한 10억 원이 넘는 대출에 대한 이자부담에 허덕이고 있다. 또한 업체에서 생산하는 비료의 80%는 전라도 지역으로 공급됐으나 구제역 발생 지역에서 생산한 비료라는 이유로 반입이 금지 당했다.

이동통제야 구제역 확산 방지를 위해 어쩔 수 없다지만 앞으로가 더 문제다. 급감한 돼지 수로 인해 퇴비의 원료인 분뇨도 원활히 제공 받기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 이번 구제역 피해로 인해 경기도 내에서는 돼지의 경우 1월 21일 기준으로 포천 96.9%, 파주97.4%, 양주 94.4%, 연천 95.1%, 동두천 99.8%가 살처분 매몰됐다. 경기도내 돼지 사육 두수 1위, 전국 2위 규모인 이천도 2월 15일까지 전체 돼지의 98.4%를 매몰했다. 경기도에서 돼지 씨가 말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실제 경기도 용인에서 축분 비료공장을 운영하는 B업체는 인근 40여 개 농가에서 발생하는 월 평균 8000여 톤의 분뇨를 원료로 퇴비를 생산했으나 이번 구제역으로 농가들이 피해를 입으며 원료가 제대로 들어오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유기비료공업협동조합 관계자는 "현재는 막혀 있는 이동제한이 풀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전국적으로 돼지의 30%가 살처분 된 관계로 분뇨도 그만큼 감소될 것으로 예상돼 퇴비 공급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흥구

"구제역 예측 못한 사료업체들, 난리났다"

소와 돼지 사육용 배합사료를 생산하는 사료업체도 구제역으로 휘청거리고 있다. 구제역 사태로 살처분 한 돼지의 수만큼 배합사료 수요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홍순찬 한국사료협회 기획조사부장은 "배합사료업체들은 자신들이 거래하는 농가 돼지 수를 감안해 분기별로 미리 사료 원료를 다 계약해놓는다"며 "옥수수 같은 경우는 100%로 수입이기에 배를 통해 들어오는 시간이 있어 짧게는 3개월, 길게는 6개월 전에 미리 계약을 한다"고 설명했다.

홍 부장은 "하지만 구제역을 예측하지 못한 사료 업체들은 사료 원료를 작년 기준으로 주문한 상황"이라며 "결국 농가에 사료를 판돈으로 이 대금을 충당해야 하는데, 사료업체와 거래를 맺던 농가 돼지의 30%가 구제역으로 죽었다"고 말했다.

홍 부장은 "결국 돈 들어오는 게 30%가 줄어든 셈"이라며 "살처분 한 보상금은 농가에서 받았지만 사료를 생산하는 업체는 한 푼의 돈도 보상받지 못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30%가 준 것만큼 돼지 수가 정상화될 때까지 비료 가격을 인상하는 것도 고려의 대상이다. 한국의 사료업계 시장은 2009년도 기준으로 7조4000억 원에 달한다. 여기서 원재료값은 통상 80% 정도 차지한다.

이미 2월초부터 소·돼지 사육용 배합사료 가격이 최고 8.1% 인상됐다. 국내 사료시장의 10% 정도를 차지한 A사는 이달 초 전체 사료 제품을 평균 6.3% 인상했다. 시장 점유율 5%가량인 B사도 최근 사료 가격을 평균 5.6% 인상했다.

물론 가격 인상이 구제역 때문만은 아니다. 업계에서는 배합사료의 원료인 옥수수 대두박(콩깻묵), 소맥 등의 국제가격이 치솟아 원가 압박이 커진 데 따른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지난해 8월부터 배합사료의 주원료인 옥수수와 소맥 등 국제 곡물값이 큰 폭으로 상승하면서 원가 부담이 가중돼 사료업체들도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

문제는 향후 국제 곡물값을 가늠하는 척도로 사용되는 미국의 옥수수 기말재고량 비율이 2월 기준 5.5%로 예년의 30% 수준에 불과해 앞으로 값은 지속적으로 오를 것으로 보여 원가 부담은 더 커질 전망이다. 국제적인 유가 불안도 가격 상승 요인이다.

구제역 재앙, 2차·3차·4차 피해로 가면서 피해 규모는 눈덩이

이런 악순환이 되풀이 되면 안 그래도 오르고 있는 돼지고기 값이 천정부지로 오를 전망이다. 그렇게 된다면 결국 서민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 앉을 수밖에 없게 된다.

퇴비수급 불안도 마찬가지다. 퇴비 공급 부족이 자칫 농작물 수확 감소로 이어질 수 있다. 당장 하우스 고추와 대파, 감자 등 봄철 농작물 수확감소로 이어질 것이란 지적이 제기되고 있고, 원료 공급 부족으로 인해 퇴비 가격이 인상되면 농산물 가격도 덩달아 뛸 수밖에 없다. 안 그래도 최근 가파르게 오르고 있는 농산물 가격이 앞으로도 '인상 요인'만 안고 있는 셈이다.

결국 구제역으로 인한 피해가 3조 원이 넘는 국가재정 투입 외에도 쉬 계산할 수도 없는 가계 부담으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 영국의 '9조 원 피해'가 남의 일이 아닌 이유다. 구제역 재앙은 2차, 3차, 4차 피해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당장은 퇴비·사료 업체의 3차 피해를 목격 중이다.

경기도 용인에서 퇴비 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박경식(가명·52) 씨는 "정부는 농가를 운영하는 사람들만 보상을 해준 뒤, 이후엔 나몰라라식으로 지금의 상황을 모른척하고 있다"며 "결국 가진 사람들만 대우받고, 없는 사람들은 죽어나가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인듯 하다"고 한 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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