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통 삶아먹은 것 같다.
그가 뜨면,
조용하던 사무실이
기차가 막 도착한 시골 역처럼 소란해진다.
그는 프레스에 오른손 중지가 절단되어 근처 병원에 입원한 환자였다.
하지만 아무도 산재 신청을 해주지 않아서 찾아온 것이다. .
그의 일성(一聲)은 우렁찼다.
"나 산재 해줘요!"
안 해주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얼른 신청해주었다.
한 달 후 두 번째로 찾아왔다.
"나 왜 월급 없어요?"
안 주면 박살날 것 같아서, 바로 휴업 급여를 받게 해주었다.
세 번째로 찾아온 것은 장해 급여 때문이었다. "손가락 짤린 돈 왜 안 줘요?"
마치 장비가 장판교(長坂橋)에 선 것 같은 기세다.
놀란 건 나뿐이 아니었다. 의사선생님과 근로복지공단에서도 재빠르게 움직여 240만 원을 받게 해주었다.
마지막으로 찾아온 것은 귀국 직전이었고 퇴직금 때문이었다.
"나 퇴직금 왜 쪼끔이야?"
소리가 어찌나 큰지, 기적(汽笛)처럼 들렸다.
두 가지 문제가 있었다.
그는 퇴직금이 없는 4인 이하 사업장에서 일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그를 붙잡을 욕심에 퇴직금은 아니지만 그에 맞먹는 적금을 들어주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적금 붓는 걸 중단해 버렸다. 생각해보시라. 산재를 당해 일도 못하는 놈한테 무슨 지극 정성이라고 적금을 계속 부어주겠나?
▲ 유팡코. ⓒ한윤수 |
이 문제만큼은 나도 손댈 수 없었다. 사장님이 법에 어긋난 짓을 한 게 아니니까.
그 대신 (사장님이) 국민연금을 과다 공제한 게 있어서, 국민연금공단에 부탁해 20만 원을 돌려받게 해주었다.
유팡코는 어제 떠났다.
이제 기차는 사라지고
다시 조용한 사무실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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