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 중앙대학교 겸임교수가 24일 민주당 '싱크탱크'인 민주정책연구원(원장 민주당 김효석 의원)이 마련한 2차 민주정책포럼 '논객이 민주당을 논한다'에 참석해 쓴소리를 했다.
진 교수는 민주당 의원이 대선에서 패한 뒤 "이번 선거는 참 이상하다. 왜 졌는지조차 모르겠다"고 한 말을 소개하며 "민주당이 상황 인식 자체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쏘아붙였다. 그러면서 민주당 실패의 가장 큰 원인으로 "왼쪽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대중은 김대중-노무현 정권 하에 악화된 경제적 사정의 원인을 '우회전'에서 찾은 것이 아니라 '왼쪽 깜빡이'에서 찾았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사실은 우파적인 (열린우리당) 노선이 대중에게는 '좌파'로 보이는 이념적 착시 현상을 일으켰다"며 결국 열린우리당의 소위 '좌파의 탈을 쓴 우파적 개혁'에 환멸을 느낀 대중은 "'오른쪽 깜빡이를 켜고 확실히 오른쪽으로 가보자'는 전도된 선택을 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이쪽 길이 아니니까 (민주당이) 한나라당을 따라서 보수화하자고 하는데 그런 길은 몰락하는 길"이라며 "그럴 거면 사람들이 한나라당을 찍지 왜 민주당을 찍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또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좌파 신자유주의'가 민주당-열린우리당 지지층의 물적 토대를 붕괴시켰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또 대중의 '욕망'을 방기한 민주당의 책임을 물었다. 그는 "민주주의의 제도화, 남북경협, 대통령이 평검사와 맞장 토론을 하는 수평적 커뮤니케이션의 실현은 긍정적 측면이 있지만 역설적으로 민주당에 대한 대중의 욕망을 약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진 교수는 "노무현 정부는 경제정책에서도 성공했다. 그러나 성공한 결과 서민들은 먹고살기 힘들어졌고 대중은 '배가 고프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이어 "대중들은 쿨하다. 정치인이 10개 얘기하면 두세개 밖에 믿지 않는다. 국민들은 어떤 정책이 실현될 것이라고 믿어서 찍는 게 아니다. 믿고 싶어서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라며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될 때 국민들은 '좌측 깜빡이'를 믿고 싶어서 대중들이 찍었고, 당선이 됐다. 그것이 우회전이라는 것은 나중에 알았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래서 국민들은 열린우리당 정권에 대해 뭔가를 믿고 싶었던 것인데 민주당이 그런 욕망을 사로잡지 못했다"며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의 드라마를 통한 허구적 이미지가 슈퍼맨 같은 영향력을 미친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민주당은 제대로 된 대안을 갖고 대응하지 못했다는 것.
진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권의 가장 큰 문제는 한나라당의 이념과 철학에 전략적으로 투항을 했다는 데 있다"며 "결국 민주당의 경제정책 우경화는 민주당 지지자들까지 한나라당 지지자들이 가진 '이명박식 욕망'으로 무장시켰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중은 외려 한나라당의 적나라한 신자유주의야말로 더 선명하고 일관적이라고 생각한다. 이 욕망에 변화가 생기지 않는 한 민주당은 늘 한나라당의 선명함에 가려지내는 '불철저한 한나라당'이 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신자유주의가 허점 보이는 지금이 기회
진 교수는 미국의 금융위기가 한국 사회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유별나게 '법치'를 강조하는 지금이 민주당에게 기회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의 금융위기는 모든 것을 시장의 자율에 맡겨두는 신자유주의적 정책이 효율적이기는 커녕 외려 경제 전체를 위기로 내몰아 정부의 개입을 부르는 역설을 보여주는 것"이라며 "대중의 정신 속에 유전자처럼 각인된 신자유주의에 대한 맹목적 신앙과 욕망을 상대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이러한 상황에서 "시장이 신뢰를 잃었다는 평가는 시장주의 표방하는 정권에게 치명적"이라며 "아직 집권 초라서 위기의 책임을 묻기 이르지만 이명박 정권의 정책이 결실을 맺을 무렵에는 민심의 이반이 생길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금융위기는 큰 문제가 아니며 더 중요한 것은 미국의 중산층, 일본의 중산층이 붕괴했다는 것"이라며 "레이거노믹스, 대처리즘의 자본주의 사이클이 끝났다는 것은 많은 관측자들이 동의하고 있는데 이명박 정부는 그 낡은 끝자락, 막이 내리는 정책의 끝자락을 붙잡고 허망하게 서있다"고 말했다.
촛불 집회와 관련해서 그는 "빵을 위해서라면 자유를 희생해도 좋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이 자유를 희생했는데 빵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이 분명해지면 정권에 극심한 반감을 느낄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고려대 최장집 교수가 이명박 정권이 더 강해졌다고 하는데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대한민국이 지금 다 죽어가고 활기가 없어지고 있는데 활기차 보이는 단체가 두개 있다. 검찰과 경찰이다"라며 "통치를 하기 위해 검찰과 경찰에 의존하는 것은 약점이지 강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대중이 억압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 모든 것은 스트레스로 고스란히 쌓이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 교수는 "민주당이 치고 나가야 하는 좋은 기회인데 지금 민주당은 부동하고 있다"며 "관망만 하니까 대중이 붙지 않는 것인데 그들을 붙게 해야 한다. 촛불집회 봐라. 대중들은 자기 스스로 동원될 의지가 있다"고 말했다.
"민주-민노-진보신당 좌클릭 해야"
진중권 교수가 민주당에 주문한 것은 '미래의 기획자', '새로운 권위의 리더십', 그리고 '전반적인 좌클릭'이었다. 그는 "'뭔가를 하자'라는 담론과 '하지 말자'라는 담론이 부딪힐때 승산은 전자에 있다"며 "한나라당은 기획(project) 이 아니라 퇴행(retroject)에 불과했지만 민주당은 던지는 것(ject) 자체를 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민주당이 현재의 비판자가 아니라 미래의 기획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진 교수는 "대중은 어떤 정책을 믿어서가 아니라 믿고 싶어서 지지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키며 "그런 의미에서 민주당은 한나라당과 구별되도록 평등을 강조하는 새로운 경제발전 전략, 사회체제의 모델을 제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17대 국회에서 활동했던 열린우리당 의원들 중에 대중의 뇌리에 이름이 남는 사람이 얼마나 되냐"며 "네트워크 시대에 과거와 같은 카리스마형 리더십은 맞지 않지만 네트워크에도 허브라는 것이 존재한다. 새로운 권위주의에 맞는 리더십을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 교수는 한편 "진보신당이나 민주노동당이 안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표심리다"라며 "진보신당이 민주당을 비판하고 있지만 지지율 추이는 늘 같이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민주당은 너무 우클릭됐다"며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민주당은) 싸우면서 지지율이 연동하기 때문에 함께 전반적으로 좌클릭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는 민주당 정세균 대표를 비롯해 원혜영 원내대표, 김효석 민주정책연구원장, 정봉주 민주정책연구원 부원장, 김성권, 양승조, 김희철, 장세환, 김우남, 강기정, 이성남, 오제세, 박은수 의원 등이 참석해 진중권 교수의 의견을 경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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