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화가 꽃망울을 머금은 초당에 울려 퍼지는 천자문 읽는 소리를 들으면 많은 사람들이 사극에서 보았던 서당을 떠올릴 것이다. 고려 때부터 조선시대까지 마을마다 울려 퍼졌을 이 소리는 서당의 몰락과 함께 쇠퇴하여 옛 서당의 흔적이 남아있는 고가나 벽촌 산간지역에서나 그 청아한 울림을 상상할 수 있게 되었다.
서구의 학제가 근간을 이루고 있는 2010년 우리나라의 교육현실에서 서당얘기를 서두로 꺼낸 것은 서당의 계절별 수업이 이 가을에 딱 어울리는 자연과학과 낭만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서당에서는 책읽기에 좋은 봄과 가을에 사기(史記)나 고문(古文)같은 고서를 읽게 하여 선조들의 지혜와 문학적 향취에 흠뻑 취하게 하였다. 또한, 학습 능률이 떨어지는 여름에는 시율(詩律)처럼 흥미 본위의 학습을 통해 운율 있는 언어로 학동들의 자유분방한 습작을 유도했다. 추운 겨울에는 경서(經書)처럼 어렵고 딱딱한 과목을 공부하여 사시사철 계절의 운항과 양생법에 맞는 커리큘럼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자연의 문리를 터득하고 체력과 건강을 도모할 수 있도록 안배한 것이다.
이러한 선조들의 삶의 지혜가 고스란히 담겨있는 대표적인 의서를 들라면 나는 허준의 《동의보감》을 꼽는다. 동의보감은 조선시대의 양생, 신체, 질병 등 문화 전반을 해독하는 열쇠이면서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현대인의 지친 몸과 마음을 달래는 훌륭한 건강지침서로도 손색이 없다.
특히, 요즘 같은 환절기에는 서쪽에서 불어오는 소슬한 바람과 극심한 일교차, 가을장마로 습기와 건기가 수시로 교차하여 피부와 모발, 코와 같은 호흡기를 주관하는 폐장(肺臟)에 이상이 생겨 각종 콧병에 시달릴 수 있다. 이런 때일수록 선조들의 계절 운행 원리에 맞는 생활철학을 익혀 실천한다면 비염이나 축농증, 천식 같은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지 않고 건강한 가을나기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의학의 경전(經典)으로 추앙받는《황제내경》에서는 '폐주비(肺主鼻)'라 하여 코를 폐와 연결된 구멍으로 보고, 가을철 건강관리를 폐기(肺氣)와 관련짓고 있다. 《동의보감》 외형편의 '코(鼻)' 문(門)에서도 '코를 잘 통하게 해야 코로 드나드는 기운이 단전으로 들어간다'는 도가의 경문《황정경(黃庭經)》을 인용하여 코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코에 물을 대어 폐를 윤택하게 하는 것을 코의 양생법의 하나로 들고 있다. 또한, 알레르기 비염과 축농증 같은 각종 콧병으로부터 코의 기능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해 가운뎃손가락으로 콧마루 양쪽을 20~30회 정도, 코 안팎이 다 뜨거워 질 때까지 문질러주라고 권한다.
보통 콧물, 코막힘 때문에 괴로움을 겪는 알레르기성 비염은 과도한 음주나 스트레스 등으로 인체의 면역력이 저하되었을 때 풍사가 인체에 침입하여 폐가 찬 기운을 입었거나, 폐에 열이 오랫동안 몰려있어 수분대사가 원활하지 못할 때 나타난다. 따라서 폐를 맑게 정화하고 벌집처럼 생긴 폐포 곳곳에 쌓인 열을 내려 엉긴 피를 돌게 하는 심폐 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춰 치료를 해야 한다.
필자가 사삼, 길경, 금은화, 맥문동 등 10여 가지 약재를 황금 비율로 배합하여 40여년의 연구 끝에 완성시킨 편강탕도 사실은 이러한 한의학 고전에서 공통적으로 강조하는 심폐 기능 강화에 초점을 맞춘 것이다. 한약요법과 더불어 평소 등산이나 자전거 타기 등의 유산소 운동을 통해 폐활량을 늘리고 혈맥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여 피돌기가 좋아지면 인체의 면역식별력이 강화되면서 만성적으로 나타나는 알레르기 비염뿐만 아니라 아토피 피부염, 천식 등 각종 알레르기 질환으로부터 벗어나 가을이 주는 대기의 맑은 기운을 마음껏 수렴할 수 있을 것이다.
- 칼럼: 편강한의원 서효석 대표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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